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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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배들이 주인이 작위를 받았느냐 아니냐, 혹은 유서깊은 가문 출신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졌다면 우리는 주인의 도덕적 지위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내 말은 소위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신사를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그 전 세대의 눈에는 유별나게 보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 출신이라도 클럽이나 골프장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허비하는 신사보다는, 이를테면 출신은 미천했으나 대영제국의 장래 안위에 크나큰 공헌을 했던 조지 케터리지 씨 같은 신사를 섬기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명으로 인식되었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고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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