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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까지
송한나 지음 / 학고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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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았습니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많은 한국인들이 놀랍게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적인 박물관에 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아직' 못 가본 사람이 많다. 나 역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 미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뮤지엄, 피츠버그 앤디 워홀 뮤지엄 등 미국을 비롯한 해외여행 시 투어 리스트에 유명 박물관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국립중앙박물관조차 가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지금에서야 아니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던 얼마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발걸음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도. 가야 할 데가 많다!!

 

사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영상 자료, 소장품의 정보화, 박물관 종합정보시스템 등 첨단 유비쿼터스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도 연중 끊이지 않는다. 2010년에는 세계 박물관 중 관람객 수 아시아 1, 세계 10위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p. 106)

이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혹시 나와 같이 안타깝게도 아직 못 가본 분들이 계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꼭 다녀오기를 권한다.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나란 존재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잘 찾아보면 그곳에 숨어 있던 내가 보인다. 세상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연 누가 지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물관은 주인공은 유물이 아닌 인류, 곧 나다.

이 책에 나오는 박물관은 모두 내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걸었던 곳이다. 국가대표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수도박물관 같은 작은 박물관까지 각각의 박물관에 깃든 재밋거리를 찾아 소개하고자 했다. 공공미술작품이 놓인 거리도, 북적이는 시장도 소중한 삶의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박물관은 세상을 담고 세상은 박물관을 닮아간다. (머리말)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는 국내 주요 박물관을 비롯해 작은 박물관, 거리의 공공미술작품, 해외 이색 박물관, 본받을만한 다채로운 박물관들을 소개해 준다.

 

처음 소개되는 박물관은 2012년 5월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다.

몇 년 전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시위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교 과제때문에 고작 한 번 갔던 것이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1992년 1월부터 현재까지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온갖 궂은 날씨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휠체어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라도 모인다. 열다섯,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감당치 못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 진실을 위해, 또 미래 평화를 위해 여전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

큐레이터의 어원인 라틴어 쿠라cura’돌봄, 치유라는 뜻이다. 좀 아득하지만 무척 사랑스럽고매력적인 어원이라고 생각한다. (p. 15)


어렸을 적 <안네의 일기>를 통해 홀로코스트라는 세계 역사 중 가장 끔찍한 그 일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열세 살 안네, 또래인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웃기도 울기도 참 많이 했다.

이후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에 적지 않은 관심이 생겼고 혼자 미국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 이렇게 많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는 줄은 몰랐다.

 

다윗의 방패라는 의미이자 유대인 공동체의 상징인 다비드 별 뒤로 유대인을 기리는 시와 히브리어로 잊지 말아라라는 말이 새겨진 기념관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여러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답사한터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라는 단어에는 나름의 절박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세대가 70여 년 전의 사건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세계 곳곳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2,600개 이상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지를 새기며 관람을 준비했다. (p. 34)

 

박물관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 그대로 화석화된 역사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기억을 넘어 기억하는 행위까지 담기 위해 애쓰는 쇼아 기념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p. 40)


외국인들은 한국을 여행할 때 필수 코스로 판문점과 DMZ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인들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에 대해 더 관심이 지대한 외국인들.

군대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6 25일이면 어김없이 방송되는 6.25전쟁에 대한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도, 북녘 땅의 가족을 찾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도 나는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분단된 땅에서 태어나 일생을 살아온 내게 6.25전쟁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p. 83-85)

 

나 또한 평소 우리나라가 휴전상태이며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때로 외국인이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무서울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한국 관광을 온 외국인들보다 사실은 더 안 가본데 많고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참 가보아야 할 곳이 많다...

 

그렇다고 이 책에 전쟁과 같은 어두운 역사에 대한 박물관만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 꼭지 박물관이나 해외 셜록홈즈 박물관 같은 귀여운 곳도 많고, 공공 예술 작품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일명 ‘1퍼센트 법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조각·공예 등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데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문화예술진흥법 제2 9).

거리의 조형물은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작품이라는 것을 깜빡 잊는 것이다. 하지만 거리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은 거리에 생기와 표정을 불어 넣어주는 일상 속의 예술 작품이다. (p. 113)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는 단순히 박물관 안내서가 아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쩌면 지루한 안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히 얘기하자면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도 상당한 재주가 있다. 에세이 같은 면도 이 책을 읽으며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큰 요소다.

 

박물관은 인류가 남긴 흔적을 모아 공공의 기억을 만드는 공간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순간도 언젠가는 박물관의 한 부분을 이룰 것이다. ‘박물관 같은 삶을 산다는 게 별건가. 나날의 삶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런 박물관 하나쯤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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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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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때때로 발음하기조차 힘든 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고, 밤을 새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건 마음속 깊숙이 잠겨 있는 나의 진짜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아닐까. (p.139)

 

 

"저는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백영옥 작가가 들려주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청춘이야기.

혹은 13년간 신춘문예 낙방에서 시작되는 실패이야기.

그래서 그녀의 진짜 이야기.

 

소설가 김연수가 김천의 빵집 아들이라는 얘기로 시작하여 '단지 바다에 파도가 치듯이, 삶이란 바다에 연애란 파도가 끝도 없이 몰아치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김연수 작가의 최근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떠올리게 하는 오마주인가 싶었다. 실제로 그들은 가까운 사이같았다. 

우연찮게도 지난 여름 참석한 어느 문학캠프에서 첫째날에는 김연수 작가, 둘째날엔 백영옥 작가를 비롯한 여성 작가들과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곧, 어른이 시간이 시작된다>를 읽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청춘을 말하던 작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청춘은 실패의 연대기라며 직전 인터뷰에서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작가들 하나같이 손사레를 쳤단 이야기.

 

오늘 28세를 살고 있는 나의 청춘과 굉장히 부합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수만번 공감했고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섭게 메모해야 했으며, 그녀의 탐나는 경험을 위시리스트에 담으며 바쁘고 빠르게, 그러나 마음은 평온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나의 실패가 나만의 실패가 아니며 성공에는 교훈이 있지만 실패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자기 위로의 문구를 발견한 기쁨과 함께. 이를테면 내가 20대와 30대에 걸쳐 쓴 인생의 오답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세상엔 죽도록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좌절되고 만다.’ (p.318)

나는 아침엔 부화뇌동, 밤엔 전전긍긍 사이를 오가며 방황했다. 섣부른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쉽게 절망에 빠졌다. (p.71) 꼭 나의 마음 같은 그녀의 이야기.

 

 

소설이 아닌 그녀의 진짜 이야기답게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 작가, 물건, 장소, 혹은 그리운 사람, 시간, 장소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그녀의 맛깔나는 문체로 쓰여졌다.

그리운 사람 최진실에게 알뜰히 영덕 게의 살을 발라주며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는 이야기,

오픈 유어 아이즈, 이동우가 슬픔을 눈물이 아닌 미소로 표현해내는 이야기,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윤대녕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

1995 6 29일 목요일 오후 5 55분, 삼풍백화점과 함께 삭제당한 스물 몇 살의 이야기,

젊은 날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묻은 경주,

영화 <봄날은 간다> <북촌방향> <건축학개론> <고양이를 부탁해> <사랑니> <와니와 준하> <멋진 하루>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삼청동'을 비롯한 여러 노래들.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대중적인 소재들이 그녀의 손 끝에서 감성을 툭 건드리는 공감의 힘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 

 

하물며 누구나 가지고 있음직한 아픈 첫사랑 이야기를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내 첫사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스무 살,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 다른 과 선배를 좋아해서 고백했는데 거절당했다’. 조금 덧붙이자면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다가고백했는데 한마디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p.89) 

 

만약 누군가의 말에 깊게 베어 상처 받았다면, 상처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들어 걸을 수 없다면, 길을 걷는데도 시간이 정지한 듯 거리의 풍경이 돌연 멈춰 선다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들끓는 대낮 도로에서 울음을 삼켰다면, 당신은 경주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p. 105)

이 부분를 읽고 나는 경주를 사랑하게 됐고,

 

문득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늑골 깊숙이 살아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흐르는 봄 햇살, 아기 고양이의 등허리 같은 아지랑이, 가볍게 뺨을 스치는 부드럽고 나른한 바람 아래로 흐르는 첫사랑의 얼굴. 문득 바람이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제야 봄이 왔음을 알게 되는 순간. (p.87)

이 부분을 읽고 다시금 온전히 느껴보기 위해 봄을 기다리게 됐고,

 

고전은 지독하게 어렵고 읽기 힘들다. 고전 읽기엔 상당한 유혹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다. 톰 울프, 스티븐 킹 같은 최고의 영미권 작가 125명이 꼽은 최고의 소설 1위 역시 《안나 카레니나》다. 13년간 신춘문예를 낙방했던 내가 거짓말처럼 등단한 건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난 직후였다, 라고. (p.218)

특히 이 부분을 읽고 《안나 카레니나》를 꼭 읽어야지 다짐하게 됐다!!

 

 

인생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자면 나의 리브로 시절은 혜화동 시절이다. 1980년대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그룹 동물원의 <혜화동>. 작사에 작곡, 노래까지 부른 김창기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느덧 10년도 훌쩍 넘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 내려 빨간색 소방차가 보이던 소방서를 지나치던 시절, 소설가 김중혁이 김중혁 과장이고, 시인 강정이 강정 대리이던 시절로. (p.54)

 

이렇게 그리운 시간들을 거쳐 실패 연대기의 청춘을 지나온 그녀의 글을 읽고 무수한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분야의 책보다 훨씬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나에게도 곧, 어른이 시간이 시작된다...될 것이라는 느낌!

 

 

한국처럼 힐링이 필요한 사회도 없다. 만약 누군가 서울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불안이라고 말하겠다. 외국인들에게 물어보시라. 한국 사람들은 참 급하다. 뛰듯이 걷고 달리듯이 먹는다. (P.61-62)

 

 

보인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엔 눈을 부릅뜨고 온 마음을 기울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곧, 어른이 시간이 시작된다.

  

 

*오탈자

218 5번째줄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게으른 ~ -> 노동자를 착취하는 게으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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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라는 착각 - 대한민국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보고서
조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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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죄책감을 씻어주었다.
그 동안 나는 마음은 진보를 향하며 보수의 사회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를테면 대기업의 횡포를 비판하며 대한민국이 몇 개의 대기업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에, 그 대기업이 흔들리면 대한민국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한편, 나 또한 그 대기업에 들어가 사회의 주류가 되고 싶었다. 마음과 머리의 충돌. 지금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스스로는 어느 쪽에서든 비겁했다. 그러나 <중산층이라는 착각>의 저자 조준현은 이런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 주었다.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어떤 이들은 취업을 바라는 청년들을 비롯해 우리 국민 모두가 재벌에 대해 이중적이고 모순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재벌을 비난하면서 중소기업보다 재벌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더 선호하고 본인이든 자녀든 재벌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런 비판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외국으로 이민가라는 말과 똑같다.

우리가 재벌을 비판하는 것은 일부 재벌 오너들의 잘못된 경영 행태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같은 것이다. 많은 재벌 총수들이 탈세나 갖가지 불법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오너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재벌기업들의 경영환경을 개선하여 더욱 발전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잘 만든 상품을 선호하고 그런 회사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p.120-121)

오랜만에 경제 분야의 책을 읽었더니 당연하게도 소설을 읽는 만큼의 속도와 흥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정의 내리는 이 책의 매력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스스로가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점차 틀린 생각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큼 양극화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진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중산층은 급격히 줄어들고 부자와 빈곤자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 현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끔찍한 사회의 탈출구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대선출마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시스템적 구조의 문제로 더 이상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경제가 미래의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과거, 일본은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한다. 일본. 지금의 일본이 우리나라의 미래라면 얼마나 끔찍한가. 오를대로 오르고 치솟을대로 치솟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가 이제 추락할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의 우리나라는 어둡다...
 

시시포스의 노동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무엇일까? 힘들고 괴로운 노동의 가혹함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바로 이 노동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극화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 빈곤층에게는 삶 그 자체가 시시포스의 절망이다. 이런 삶에서 언젠가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빈곤은 불치병일 뿐 아니라 유전병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p.229)

책 속의 여러 관련 자료 중 가장 쉽게 마음에 와닿았던 얀 펜의 난쟁이 행렬.

마지막 몇십 초를 남겨놓고는 수십 미터의 초거인들이 등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60미터고, 대기업 사장은 110센티미터다. 마지막 몇 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키가 너무 커서 얼굴이 구름에 가려있으며, 그들의 키를 재려면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 단위가 필요하다. 맨 나중에 등장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그 키를 알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키는 과연 몇 미터인가. 당신이 이 가장행렬에 등장하는 시간은 과연 언제일까. (p.79)

 

우리나라 국민의 99%는 일해서 먹고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p.200)

폐지를 줍는 노인이 훗날 당신일 수도 (p.42)

 

그러나 저자는 그가 분석한 답을 내놓는다. 분명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의지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인식변화를 통해 마침내는 정책 결정권자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 다수의 올바른 선택으로 현명하고 소통 가능한 지도자가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바로 워크셰어링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 말하자면 내 일자리(job)을 나누는 것이 잡셰어링이고, 내 일(work)를 나누는 것이 워크셰어링이다. 임금 삭감과 비정규직 양산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당연히 잡셰어링이다. (p.224-225)

 

그래서 이제는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소비 증가가 생산과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투자 증가가 소득과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p.334)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일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말이다. 안철수 교수가 그런 사람이고, 오지여행가이자 봉사활동가인 한비야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비야의 글을 읽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청년을 만났더니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한 대 때려줬다는 것이다. 7급 공무원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수는 있어도 어떻게 그것이 꿈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비야가 하고자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7급 공무원이 어떻게 꿈이냐고? 이룰 수 없으니까 꿈인 것이다. (p.59)

 

 

*오탈자

p.73 / 1번째 줄 /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도 눈에 띠게 축소되고 있다. ->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도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다.

p.79 / 7번째 줄 / 마지막 몇십 초를 남겨놓고는 수십 미터의 초거인들이 등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60미터고, 대기업 사장은 110센티미터. -> 마지막 몇십 초를 남겨놓고는 수십 미터의 초거인들이 등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60미터고, 대기업 사장은 110미터.

p.231 / 10번째 줄 / 목사라는 직을 가진 어느 양반은 여자들이 출산을 하면 골반이 내력가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면서, ~ -> 목사라는 직을 가진 어느 양반은 여자들이 출산을 하면 골반이 내려가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면서, ~

p.287 / 15번째 줄 / 전세난 등에 따라 쪽방촌 임대로도 올라 소외된 서민들이 거리로 몰리고 있다. -> 전세난 등에 따라 쪽방촌 임대료도 올라 소외된 서민들이 거리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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