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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 - 독방에 갇힌 무기수와 영문학 교수의 10년간의 셰익스피어 수업
로라 베이츠 지음, 박진재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이 굉장히 역설적이다. 감옥에서 만난 자유라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감옥이란 곳에서는 제한적인 공간(다섯 발자국만 움직일 수 있었던 래리처럼)에서 제한적인 사람들과 만나며, 제한적인 활동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제한적인 상황에서 만난 자유라니. 자유는 제한이라는 표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가 아니던가. 전혀 상반되는 속성을 가진 이 두 단어를 엮어주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셰익스피어였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조합이다. 단순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다고 해서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자. 감옥에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범죄자일 텐데 그런 범죄자가 셰익스피어를 통해 자유를 느꼈다면 고학력 지능범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유를 만난 사람은 지능범도, 고학력자도 아니다. 오히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여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살인죄로 기소되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사는 무기수이다. 이런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통해 자유를 말한다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기수 래리 뉴턴이 셰익스피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감옥, 특히 슈퍼맥스라 불리는 독방에 갇힌 죄수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영문학 교수 로라 베이츠의 셰익스피어 강의 덕분이다.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폭력적인 범죄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종신직 교수라는 일자리를 얻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대신 재소자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는데 열정을 쏟는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믿음대로 셰익스피어를 만난 래리 뉴턴이 보이는 변화이다. 셰익스피어를 만나기 전의 그는 절망 속에서 매일 매일 죽음에 다가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만난 그는 말 그대로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한다. 또한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래리의 말처럼 자유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의식과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우리도 역시 자기 자신의 감옥에 갇힌 삶을 산다. 로라 베이츠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어떤 이는 욕심이라는 감옥에, 또 다른 이는 분노라는 감옥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참으로 부끄러웠던 일은 과연 재소자들이 제대로 셰익스피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내 마음이었다. 은근히 그들을 무시한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랩으로 개사한 그들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래리 뉴턴이 아닐까 싶다. 본성 대 양육이라는 논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접한 래리 뉴턴의 모습은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살인을 저지른 철부지 망나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생의 자유를 체험한 달관한 철학자의 모습이었다. 이보다 더 교육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달리 어디 있을까?
“아무것도 변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변했을 뿐이죠"(p.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