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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1930년대 뉴욕의 살기 좋은 동네, 빅맨 플레이스.
빅맨 타워 호텔 21층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43살의 독일인 겝하드, 용의자는 뉴욕 대학을 나온 미모의 여성 베라. 이 사건이 세간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겝하드가 유부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해자는 유명한 사업가이고 용의자는 대학교육까지 받은 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용의자 베라를 ‘장난감, 인간 노리개’로 여긴 겝하드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고, 언론들은 이에 발맞춰 사건을 점점 더 선정적인 내용으로 이끌어간다.
베라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였던 낸시 에반스 티터슨이 욕조 안에 묶인 채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낸시를 강간한 후 목에 줄을 묶어 화장실로 끌고 와 욕조 안에 집어넣는다. 욕조에 옮겨질 때까지 살아있던 낸시는 결국 질식으로 사망한다. 낸시의 몸에서 떨어진 줄이 결국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한편 사건을 접한 지역 언론들은 비극적인 사건을 자극적이며 외설적인 놀잇감으로 바꿔버린다.
부활절 일요일, 아내와 별거 중이던 조셉 게든은 아내, 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자신을 맞이한 것은 아내와 딸의 미소가 아닌 시체로 변한 아내와 둘째 딸, 또한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던 번스의 시신이었다. 이들은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추리 소설의 내용이 아니다. 저자 해럴드 셰터는 주로 연쇄 살인점을 소재로 하는 실제 범죄사건 논픽션 작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위의 사건들은 1930년대 뉴욕에서 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저자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마치 소설 속 한 장면들처럼 거침없으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이 책의 주 사건인 부활절 사건은 관련 인물들의 삶을 철저히 파헤치면서 과연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닿은 곳 중 하나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이다. 1930년대 뉴욕 언론은 자신의 사명은 완전히 잊은 채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선정적인 기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바쁘다. 이런 모습은 1930년대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이 시대의 언론들도 툭 하면 진실과는 관계없는, 혹은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하다.
하나 더. 로버트 어윈의 삶이 어그러진 이유는 그 자신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광적으로 종교에 빠져버린 엄마와 아버지의 삶과 형제들의 깨어져버린 삶 때문일까? 타고난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아주 어렸을 때 경험한 삶의 모습이 결국은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했던 것은 아닐까? 로버트 어윈이 젖꼭지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소설 같은 느낌도 있지만 1930년대 뉴욕에서의 삶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든다. 범죄자와의 인터뷰,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재판 과정 등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소설의 흥미로움과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이 더해진 멋진 작품을 만나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