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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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생의 모습, 혹은 풍속화에 나오는 머리에 모자(?)를 쓴 여성의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엄격한 유교주의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자유분방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이미지, 그것이 어우동이라는 이름이 내게 준 느낌이다. 또한 성적인 시각을 벗어나서 어우동이라는 여성이 살았던 삶은 어떠했는지,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내용 그대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여성으로만 기억했다.

 

고관대작의 딸로 태어나 왕실의 며느리가 되었지만 그녀의 삶이 보통의 여성과는 달라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우동이라는 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유교주의적 남성의 시각이 아닌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어우동이 평범한 한 가정의 아내로서, 어미로서의 삶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삶을 살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의 남편 태강수 이동 때문은 아니었을까? 연경비라는 첩 때문에 남편이라는 작자가 잠깐의 반짝임에 홀린 죄를 핑계로 조강지처인 어우동을 버린 것이 어우동의 삶과 생각을 180도 뒤바뀌게 만든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편 이동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우동이 자유롭기 위해 계집종의 누더기를 빌려 입고 몰래 바깥나들이를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에게 폐쇄적이었던 조선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벌인 그녀의 행동은 시대를 앞섰던 그녀의 생각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남들과는 다른 그녀의 생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영원함은 믿지만 사랑의 대상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믿었던 그녀. 그렇기에 어떤 한 사람에게 결코 얽매일 수 없었다. 이난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던 이도 있지만 자신의 삶에 피해를 주는 그녀를 모른 체 한 이들이 어디 한두 명이었던가?

 

그녀는 여러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점점 더 삶의 본질, 사랑의 본질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환부를 들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는다. 또한 육체에 사랑을 새기는 일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 하나 하나를 통해 사랑을, 삶을 깨달아 간다

 

어우동의 삶은 그저 자신을 찾기 위한 삶이었다. 찰나의 쾌락에 빠졌을 때에도 그것은 그녀 자신을 찾기 위한 순간이었다.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녀처럼 바로 자신을 찾기 위한.

 

그 찰나가 내겐 영원이었어요. [중략] 아무에게도 훼손당할 수 없는 나, 조롱당할 수 없는 나, 학대당할 수 없는 나 ...... 오직 나뿐인 나.”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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