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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수업 -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14년 전에 돌아가신 내게 죽음은 그리 멀리 떨어진 낯선 경험이 아니다. 어찌 보면 지금도 부모님의 죽음이 남긴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있다.
학교 다닐 때 죽음에 관한 수업을 전혀 들은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죽음학 수업이란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죽음에 관한 철학적 정의나 의미 등을 언급하며 그저 이론적인 내용을 나열하는 피상적인 수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열고 알게 된 죽음학 수업은 그저 그런 이론 수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 한 가운데서 죽음과 마주하는 수업,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LA Times 전직 기자인 에리카는 노마 보위 교수의 강좌 ‘긴 안목으로 보는 죽음’에 저널리스트 자격으로 참석하여 그 체험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녀의 수업은 단순한 강의가 아니었다. 작별 편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편지쓰기, 다양한 주제의 토론, 무덤, 교도소, 화장터 등을 방문해서 진행하는 현장수업 등 현실적인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여러 죽음들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들로 이루어진다.
끝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엄마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리는 케이틀린,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가 앓던 정신 질환이 동생에게 유전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동생이 자살하자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조나단, 어린 시절의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빌림스 종양이라는 희귀성 신장암을 이겨냈지만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아이시스 등 책에 나오는 이들은 노마 교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노마 교수는 심리학자 에릭 에리슨이 말한 생애주기 8단계마다 위기가 다가오는데 개인이 각 단계에서 찾아오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고결한 성격적 특성을 갖출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달라지고, 죽음을 올바르게 마주하기 위해서는 앞선 일곱 단계의 덕목들을 성공적으로 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간 중간 알려주는 책 속 인물들이 처한 각 단계의 특성들은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를 사로잡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검시소에서 학생들과 참가자들에게 던진 노마의 한 마디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알겠던가요? 우리에겐 삶을 당연하게 여길 권리가 없답니다.”(p.86)
나 역시 삶을 너무나 당연시했다. 그러기에 너무나 가볍게 여기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당연한 것도 가벼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Be the Change’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실제 행동으로 나서게 한 노마의 죽음학 수업, 기회가 된다면 직접 그녀의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