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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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책이 나오자 눈에 띄는대로 곧 샀다. 사는 마음이 별로 시들했지만 1977 년도 김승옥의 

< 서울의 달빛 0 장 > 1회 작품집 부터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샀으므로 올해로 37 권 째를 또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참으로 가슴 뛰도록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많았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유수의 작가가 모두 여기를 통과하지 않았나 싶다.


근데 언제부터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과 경외가 사라지고 그저 해마다 구색이나 맞춘다고 이 책을 

피상적으로 사게 되었을가.

먼저 상식적인 소설의 정의 부터 정리하고 싶다. 소설은 서사문학이다. 서사문학이라 함은 

리듬을 중시하는 시가문학에 대비하여 줄거리, 즉 스토리를 기둥으로 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스토리 부재의 작품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그러기에 신진들도 그러한 추세에 따라 

뚜렷한 줄거리는 흐지부지로 내면의 모호한 의식 흐름에 집중한다. 

지금 전 세계의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내면보다 오히려 외향적이고

현실 가능한 픽션 속에서 방대한 지식과 예견, 그리고 비젼을 제시해 준다.

근래 내가 심취해 읽었던 작품으로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 밀레니엄 시리즈를 펼쳐 낸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의 연작집이 있다. 너무도 치밀한 구성과  깊고 다양한 인성으로 빚어지는

사회상을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깊이 천착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것이 그냥 대중의

인기 영합적 성공작이었다고 비웃지 마시라. 그는 이 연작을 쓰느라 너무나 골몰했던 나머지 그가 의도한 모든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50 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 만큼이나 한사람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 믿고 있으며 그 보다 더 숭고한 예술혼이 있겠는가.

지금은 깊은 사유와 푹 넓은 지식, 발로 뛰는 팩트의 소설이 대중을 휘어잡는게  대세인 시대다.


나는 이런 작품들을 선별하는 심사위원들의 가치기준을 疑視한다.

세계 1, 2 차 전쟁이 끝나던 전후시절 어둡고 세기말적인 사조가 인류를 휩쓸던 때, 우리나라에도 

긴 일제시대, 그리고 육이오 전란으로 피폐하고 빈곤했던 그 시절 허무와 좌절 독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여 전후문학에서 그려 낸 음울함과 내면으로만 웅크린 소아적인 부정과 혐오, , 그것도 한 시대상의 흐름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전통적인 뽕짝조의 유행가에서

아이돌의 유쾌발랄하고 율동적인 댄스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처럼 소설도 바뀌어야 한다. 작가들 보다 먼저 심사위원들의 구태의연한 가치기준 부터 크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1910 년 박민규의 < 아침의 문 >까지는 희망이 보였다. 박작가는 기상천외한 소재와 상식을 뛰어넘는 재치 넘치는 상상으로 버무려 놀랍지만 유쾌한 정신적 체험을 이끌어 준다.

그러나 2011 년 공지영 작가의 < 맨 발로 글목을 돌다 >에서는 저으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노련한 필력과 폭 넓은 활동상의 영역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그 소설에서는 자신의 주변적인 

 이야기가 소설이기 보다 수필? 또는 자전적 소설, 그런데 이런 자전적 신변 소설이 어떻게 대한민국 

2011 년을 대표하는 우수 소설이 될 수 있는가 란 의문이 강한 불만으로 남는다.

올 대상으로 선정된 김애란의 < 침묵의 미래 >는 아직 읽기도 겁이 난다.

너무 난해하여 내가 수준 낮은 독자가 아닐까, 하며 나를 나무라고 브끄러워 할까봐.. 아니면 이게 

무슨 스토리로 엮인 소설이람. 하고 차갑게 매도할까봐. 사실 둘 다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 다음 지면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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