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설 때면 ‘오늘도 신나게, 미친 듯이 놀다 오자’고 해요.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도움이 되도록 살아야죠”



존재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셰프 에드워드 권(권영민). 이른바 7성급으로 통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호텔 수석 총괄주방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몇 달 전 전격 고국행을 택했다. 요리사 그 이상의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요즘 제2, 제3의 에드워드 권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하다. 오픈 시간을 앞두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인 ‘에드워드 권 한국 1호 레스토랑’ 에디스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편집자 주)



김진세_ 날이 많이 추워졌지요?

에드워드 권_ 네, 평균 기온이 50℃에 육박하는 두바이에 있다가 왔더니 서울이 너무 추워요.

김진세_ 요즘 권 셰프 이야기 많이 들어요. 세계적인 요리사로 권 셰프를 성장시키고 이렇게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궁금했어요.

에드워드 권_ 이거 무서운데요. 심리전 같기도 하고(웃음). 저는 있는 그대로 얘기를 잘해요. 욕도 막 해요(웃음). 성격상 말을 가려가면서 잘 못해요. 박사님께서 잘 알아서 그 힘을 찾아봐주세요.

김진세_ 한창 출연 중인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예스 셰프’를 봤거든요. ‘삐리리’ 처리되는 그 부분 말씀하시는 거죠?(웃음)

에드워드 권_ (웃음) 맞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많이 자제해요. 좋게 말하면 몰입인데, 제가 건성건성 하는 걸 싫어해요. 그렇다 보니 순간적으로 받치면 확 나오는 거예요(웃음). 2, 3회 때까지는 ‘삐리리’ 처리가 정말 많았어요. 시청자 게시판은 별로 신경 안 쓰는데, Q채널 프로그램 중에서는 가장 말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케이블 프로그램치고는 굉장한 시청률이라고도 하고요.

# 에드워드 권을 바꾸는 마법의 흰색 조리복
김진세_ 얼마 전 ‘예스 셰프’가 독립제작사협회로부터 최우수상을 수상하셨죠? 축하드립니다. 예전에 즐겨 보던 ‘헬스 키친’이라는 외국 프로그램보다 훨씬 긴장감이 있더군요.

에드워드 권_ 저희 프로그램은 요리사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에요.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은 집단에 임무를 주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나 실수를 끄집어내는데, ‘예스 셰프’는 완벽한 개인플레이예요. 또 도전자들 철저하게 처음부터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거든요.

김진세_ 제가 보기에도 ‘예스 셰프’는 굉장히 창의적이었어요.

에드워드 권_ 프로그램상에서는 제가 “사막에서 혼자 살아남는 요리사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어느 시청자가 요리 프로그램인데 휴대용 가스레인지 놓고 조리한다고 지적하셨는데, 제 맘 같아서는 장작불을 지피고 싶어요. 그만큼 도전자 스스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제작 여건상 쉽지가 않아요. 일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저변의 뜻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단순히 재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대한 아쉬움도 있고요.

김진세_ 권 셰프가 방송을 통해 지금껏 성장하고 자라온 요리사로서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거 같아요.

에드워드 권_ 네, 그렇죠.

김진세_ 프로그램을 보면 도전자들에게 굉장히 엄하시잖아요?

에드워드 권_ 막말로 ‘지랄’ 맞죠(웃음)

김진세_ 집에서 아이들에게도 엄하게 교육하세요?

에드워드 권_ 혹시 평소에는 온화하던 아빠가 운전대만 잡으면 갑자기 늑대로 변하는 공익광고 기억하세요? 제가 정말 그런 성격이에요(웃음). 사복 입었을 때는 털털하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데, 조리복만 입으면 날카로워져요. 조리복에 뭔가가 있는 거 같아요(웃음). 옷도 옷이겠지만, 직업적인 마인드 때문이겠죠. 집에서 아이들에게는 온화한데, 잘못을 저지르면 굉장히 엄하게 대하죠. 솔직히 말하면 때릴 때도 있어요. 두바이 있을 때는 아들 엉덩이에 멍이 들어서 학교에 끌려갔다온 적도 있어요(웃음).

김진세_ 정신과 의사 아버지도 아들을 때리는데요, 뭘.

에드워드 권_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으면 그 실수를 반복하거든요. 특히 요리가 그런데, 자식 교육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사실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큰아이가 아홉 살, 작은아이가 네 살이거든요. 제가 보통 자정이나 새벽 1시 무렵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자고 있죠. 그럼 저는 책 보고 메뉴 작업하다가 새벽 4시 반쯤 잠이 들어요.

김진세_ 그 시간에 주무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거예요?

에드워드 권_ 보통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요. 두바이 있을 때는 4시간은 잤는데, 한국 오고 나서 2시간 정도로 줄었어요.



김진세_ 그러면 졸리지 않으세요?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에드워드 권_ 예전에는 ‘한약발’을 좀 받았는데 요즘은 약 지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비타민 C 먹는 걸로….

김진세_ 일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으시는군요.

에드워드 권_ 저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에요. 밖에 나가 있어도 하루 스무 통씩 가게로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봐요. 직원들이 전화 좀 그만하라고, 바빠 죽겠다며 전화를 끊죠(웃음).

김진세_ 이번이 긍정의 힘 열두 번째 인터뷰인데,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잠도 못 자고 바쁘게들 사세요. ‘성공하려면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거 같아서 염려될 정도예요. 아까 직원분으로부터 또 다른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더 바빠지실 텐데.

에드워드 권_ 네, 한남동에 비스트로 개념의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The Spice)’를 오픈할 예정이에요. 「레이디경향」을 통해 이름을 처음 공개하네요. 1월 중순 그랜드 오픈에 앞서서 그동안 도움 주신 분들이나 결식아동 등을 초대해서 일주일 정도 무료로 대접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요.

김진세_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어떤 곳이 될지 궁금해요.

에드워드 권_ 이태원이 인접한 곳이니만큼 서양 음식을 기본으로 하되 한국의 식재료를 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참외 하면 우리는 그저 과일로만 알고 먹었잖아요? 그런데 참외에 송로오일이라든가, 버터와 익힌 새우를 넣으면 훌륭한 수프가 될 수 있어요. 메뉴판에도 ‘참외’라고 영문 표기할 거예요. 그럼 이 수프를 맛있게 먹은 외국 관광객들이 대체 참외가 뭐냐고 묻겠죠? 그럼 참외는 ‘코리아 멜론’이라고 가르쳐줄 거예요. 혹시 압니까? 그 사람을 통해 우리의 참외가 수출될 수도 있을지.

# 전문가의 입맛을 가진 아홉 살 아들
김진세_ 한국 음식의 세계화 작업이군요. 내년 1월이 기대되는데요. 권 셰프는 방송에서도 굉장히 멋있어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예쁜 아가씨들이 에디스 카페에 많이 온다는데, 부인께서 걱정 안 하세요?(웃음)



에드워드 권_ (웃음) 집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김진세_ 아니, 왜요?

에드워드 권_ 집사람이 유학파 출신이고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런 데 있어서 굉장히 쿨해요. 대신 “걸리지만 마라. 걸리면 그날로 ‘아작’난다”는 말은 하죠(웃음). 최근 들어서 제가 공인이 되다 보니 오히려 더 안심하는 거 같아요. 더군다나 제가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셔요. 술집에 갈 일이 거의 없고 돌아다니는 곳이 뻔하니까. ‘네가 뛰어봤자 벼룩이지’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웃음).

김진세_ 결혼 후 일주일 만에 미국으로 가셨다면서요?

에드워드 권_ 제가 집사람과 만나 91일째 되는 날 결혼식을 올리고, 100일째 되는 날 미국으로 갔죠. 신혼여행을 아직도 못 갔어요. 미국에 갈 때는 거짓말로 꼬드겼죠.

김진세_ 2000년, 한국에서 특급호텔 잘 다니다가 샌프란시스코행을 결심할 때 얘기죠?

에드워드 권_ 샌프란시스코에 금문교, 피셔맨스 워프, 앨커트래즈 등등 볼거리가 많으니 신혼여행을 거기로 가자고 했죠. 그렇게 가서 첫째가 태어난 거죠(웃음). 둘째는 W호텔 근무할 당시 한국에서 낳았고요.

김진세_ 미국, 중국, 두바이로 이직하는 동안 내내 가족과 함께 움직이셨군요.

에드워드 권_ “왜 한국에 들어왔느냐”는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 교육 때문이에요. 국적 정체성에 시달린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큰아이에게는 9년간 4개국이지만, 작은아이는 네 살이 될 때까지 4개국을 돌다 보니 우리말이 어눌해요. 아이랑 얘기하다 보면 답답하니까, 저도 모르게 영어가 나오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두바이에 살 때 한국인 선생님을 붙여서 가나다라를 가르쳤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안타까웠죠.

김진세_ 아이들이 강한 아빠를 닮았다면 금방 따라올 거예요.

에드워드 권_ 그래주었으면 좋겠어요. 작은애는 저랑 성격이 굉장히 비슷하고 고집도 있는데, 큰애는 너무 착해서 속상할 때가 있어요.

김진세_ 큰아들은 아빠가 만든 음식을 먹고 평가도 제법 한다면서요?

에드워드 권_ 아유, 무서워요 무서워. 왜냐하면 첫째는 갓난쟁이 때부터 음식 먹으러 갈 때 데리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얻어 먹은 게 있다 보니 입맛이 보통이 아니죠. 오리고기도 미디엄 레어로 굽지 않으면 안 먹어요. 한국 와서 몇 군데 식당에 데리고 갔는데 맛이 없대요. 자기 입맛에 안 맞는대요(웃음).

김진세_ 아니, 불과 아홉 살인데요?

에드워드 권_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지적해요. 맛이 없으면 숟가락을 놔요.

김진세_ 큰아이가 아빠처럼 요리사의 길을 걷겠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에드워드 권_ 만약 큰아이가 그러겠다고 하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랑스로 보내겠다고 아내에게도 얘기를 해뒀어요. 현지에 제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셰프들이 많으니까요.

김진세_ 부인은 요리를 하신 분이 아니세요?

에드워드 권_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취미로 특수분장을 배울 정도로 활동적인 사람이에요. 제가 리츠칼튼 호텔에 근무할 때 집사람은 세일즈 마케팅 파트 매니저였어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만나는 일을 한 거죠. 결혼 후 바로 미국에 가서 애 낳고 살다 보니 본인의 색깔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죠.

김진세_ 지금은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 하세요?

에드워드 권_ 무슨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해서 가끔씩 제가 뭘 던져주긴 하는데, 아유 이렇게 얘기하면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쩐지 와이프가 일을 하면 못 미더운 거 있죠?(웃음)

김진세_ 신혼여행을 아직도 못 가셨다니, 가족 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살았겠어요.

에드워드 권_ 집사람이 “어떻게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면서 찍은 사진이 열 장도 채 안 되느냐”고 하는데, 그나마도 ‘어머니의 날’ 같은 때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휩쓸려서 찍은 사진이에요. 제대로 찍은 가족사진이 없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5년 가까이 살았는데, 제가 금문교도 못 가봤어요(웃음). 그러니 집사람한테… 많이 미안하죠.

김진세_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게 사시는데, 에드워드 권을 버티게 하는 건 뭔가요?

에드워드 권_ 뭐랄까, 미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나 할까요. 그 힘이 없으면 벌써 하루아침에 맛이 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처럼 제가 미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딱 끊기면, 아마 폭삭 늙고 아플 거예요.

김진세_ 그런 분들의 특징이 일을 계속 만들죠.

에드워드 권_ 그렇죠!(웃음).

김진세_ 권 셰프에게 일이 주는 의미가 워낙 커서 그럴 거예요.

에드워드 권_ 아마 그럴 거예요. 저한테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아니 어떤 때는 꿈에서도 메뉴를 만들어요. 그래서 항상 두통약을 달고 살아요. 박사님은 아시겠지만, 항상 커다란 돌을 가슴에 얹고 있는 것 같고요. 가끔씩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어젯밤에는 제 블로그에 ‘공인이 되고 난 뒤로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고 썼어요.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또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거든요. 그런데 식당에 가면 저를 연예인 취급하세요. 가게에 붙여놓는다며 사인 요청도 하시고요. 저도 제 이름 걸고 식당 하는 사람인데, 남의 식당에서 사인해달라면 뭐라고 쓰겠어요?(웃음) ‘맛있었습니다. 건승하세요. 에드워드 권’이라고 쓰면서 그럼 내 식당에 내가 사인해서 붙여놔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김진세_ 불편한 점이 있으시군요.



에드워드 권_ 네. 공인이 된다는 건 감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안타까운 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포장하려 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제가 가끔 정부시책 같은 것을 신랄하게 비판할 때가 있어요. 그건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제가 느낀 점이나 필요한 것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건데 저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해요. 문제는 제가 하는 말을 충고로 듣는 게 아니라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에요. 그런 점은 보완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진세_ 공인이 되면 자꾸 덩치가 커지니까 조금 잘못 움직여도 옆에서 깔려 죽는 느낌, 이런 게 있어요.

에드워드 권_ 네. 제가 강해 보이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강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약해요. 그 약한 걸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강해지려고 자꾸 몰아세우는 거죠. 산악인 허영호, 엄홍길씨 같은 분들을 보면, 과연 그분들 자체가 강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을 보면 전혀 강하다는 느낌이 없거든요. 그분들도 저처럼 스스로의 약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극한까지 밀고 가는 게 아닐까, 해요.

# 귀하게 자란 장손, 요리를 위해 칼을 쥐다
김진세_ 어려서는 굉장히 사랑받으면서 자랐을 거 같아요. 장손이시잖아요.

에드워드 권_ 할아버지가 8남매를 두셨는데 집안에서 제가 유일한 손자였어요. 할머니는 거의 저를 신격화하셨고(웃음). 반대로 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하셨어요.

김진세_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왜 그렇게 엄하셨죠?

에드워드 권_ 아버지도 일중독이셨던 걸로 기억해요. 대한통운 지사장으로 정년퇴직하셨는데,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셨어요. 그럼 전 아버지를 만나러 회사에 갔었죠. 그런데 가보면 제가 보기에는 다들 놀고 계세요(웃음). 아버지가 일에 빠져 사는 걸 보면서 난 저러지 말아야지 했었죠.

김진세_ 그런데 똑같이 워커홀릭이잖아요?

에드워드 권_ 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구나, 싶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열정적이고 다혈질인데다가 표현력이 풍부하셨는데, 일을 하다 보면 저에게서도 그런 면이 나오는 거 같아요.

김진세_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에드워드 권_ 굉장히 조용하셨죠.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어머니가 집에 계시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어요(웃음). 밥 차려주실 때 빼고는.

김진세_ 무녀독남 외아들이셨어요?



에드워드 권_ 세 살 아래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외국에 나가 있어요.

김진세_ 혹시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나요?

에드워드 권_ 물리치료사예요. 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죠. 아, 흰옷을 입는 것 같네요(웃음).

김진세_ 흰옷은 저도…(웃음). 어려서는 신부님이 되고 싶으셨다고요?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에드워드 권_ 부모님은 괜찮으셨는데, 할머니께서 반대하셨어요. 불교 를 믿으셨거든요. 외가 쪽이 워낙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복에 대한 동경이 약간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런 것도 있지만, 신부님들도 굉장한 권위를 가지고 있잖아요. 감히 누가 범접할 수 없는.

에드워드 권_ 제 성격이 ‘모 아니면 도’ 같은 면이 있어요. 아예 화려하게 살거나, 진짜 제대로 깨끗하게 살거나! 어려서는 영적으로 깨끗하게 사는 신부님들을 봤을 때 정말 멋져 보였어요. 제게 그런 영감을 주신 분이 계세요. 박요왕 신부님의 미사를 듣고 있으면 정말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시고, 나쁘게 말하면 연기력이 뛰어나시다고나 할까. 굉장히 몰입되게 만드는 미사를 하셨어요. 신부님 덕에 신자가 엄청 늘어서 인근에 성당을 하나 더 지을 정도였어요. 그 신부님께서 교황청으로 가시자 신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김진세_ 연락 한번 해보시죠? 지금의 에드워드 권을 보면 많이 좋아하실 텐데요.

에드워드 권_ 네. 찾아뵙고 싶어요.

김진세_ 학창 시절에는 외향적인 학생이었나요?

에드워드 권_ 자기주장이 굉장히 확실했어요. 항상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

김진세_ 싸움도 좀 하시고?

에드워드 권_ 껌 좀 씹었죠(웃음). 지난여름에 출연한 KBS-1TV ‘반갑습니다 선배님’을 본 분들은 저를 ‘고압선’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김진세_ 아니, 고압선이 어쨌다고요?

에드워드 권_ 제가 가입했던 불량 서클 이름이 고압선이라서요(웃음). ‘건드리면 죽는다’ 이거죠(웃음).

김진세_ (웃음) 학창 시절에 별명이 있었어요?

에드워드 권_ 이름이 영민이고, 굉장히 말라서 양미리라고 불렸어요. 강원도 동해에 양미리가 많이 나거든요. 그 별명은 중학교쯤 되어서 사라지더라고요.

김진세_ 아, 고압선 덕분에?

에드워드 권_ 제가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조직에 ‘작살’ 날 수 있기 때문에요(웃음). 중학교 때까지는 굉장히 조용하고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어요. 신부님이 되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보통 가톨릭 신학대를 가려면 고2때 결정을 하고 거의 사제관에서 살아야 해요. 그런데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막나가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최고상인 도교육감 상도 받고, 강원도 고교 랭킹 3위에 드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매년 서울대에 20명 이상 합격하니까 지방 고등학교치고는 대단한 거죠. 그런데 2학년 때부터 완전히 다른 쪽으로 빠졌어요.

김진세_ 할머니와의 갈등이 크게 작용했나 봐요.

에드워드 권_ 거기다가 사춘기까지 겪다 보니 더 그랬죠. 제가 그때 담배를 배웠어요.

김진세_ 신부님 말고 다른 꿈도 있었어요?

에드워드 권_ 꿈이야 많았죠. 경찰, 군인, 정치가… 교수도 되고 싶었고. 최근 제 블로그에 ‘비판하는 사람과 비판받는 사람,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글을 썼는데, 꿈은 항상 바뀌는 거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를 성공한 사람으로 얘기하는데,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은 책은 아니지만, 자전적 에세이 한 권을 썼어요.

김진세_ 그 책, 저도 갖고 있어요.

에드워드 권_ 좋은 책은 아니지만, 나름 팔렸고 드라마로도 나와요. 꿈이라는 건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근에 강릉에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있었어요. 누군가 제게 “네가 선거에 출마하면 당선될 확률이 클 것이다”고 하더라고요. 시민들이 다른 후보는 몰라도 에드워드 권은 안다는 거예요. 제가 2007년 버즈 알 아랍 호텔 수석 총괄주방장으로 들어갔을 때, 대관령 넘어서 강릉으로 진입하는 길 초입에 강릉시에서 플래카드를 붙였대요. 지역사회에서는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이죠.

김진세_ 정치하실 거예요?

에드워드 권_ (손사래를 치며) 전혀요, 전혀. 연기자 출신 정치인도 있다며 “에드워드는 정치 쪽 생각 없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전 요리사고 셰프일 뿐이에요. 정치 쪽으로는 전혀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진세_ 그런데 왜 이름이 에드워드인가요?

에드워드 권_ 저도 권영민이라는 이름을 쓰고 싶어요. 드라마나 순정만화의 멋진 주인공 이름으로도 꽤 쓰인 이름이거든요. 그런데 못 쓰는 거예요. 외국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저를 에드워드로 알고 있어서 이제 영민으로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아, 그런데 왜 에드워드로 지은지는 아세요?

김진세_ 글쎄요? 무슨 뜻이 있나요?

에드워드 권_ 제가 좋아하는 셰프이자, 멘토인 사비에르가 지어준 거예요. 미국 생활 하려면 평범하게 부를 수 있는 미국 이름을 만들라기에 알았다고만 했는데, 이틀 뒤 스케줄표에 제 이름 ‘영민 권’이 없어졌어요. 대신 에드워드란 이름이! 왜 내 이름이 빠진 거냐고 했더니 “네 이름이 에드워드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주방 전체에 에드워드라는 이름이 없다며. 그럴 줄 알았으면 피터슨이나 니콜라스 같은 멋있고 색다른 이름으로 할 걸 그랬다 싶죠(웃음). 그나마 다행인 게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이나 제레미가 아니기에 망정이지. 그랬으면 이름까지 흉내 냈다고 댓글에 올라오지 않았을까요?(웃음)

김진세_ 아직 꿈을 꾸고 계시고 갈 길이 멀지만 그동안 가장 행복했던 때와 불행했던 때를 꼽아보자면요?

에드워드 권_ 지금도 매일 최고의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주방에 있을 때죠. 지금도 제가 천생 셰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한번 몰래 와서 보세요. 여기 30평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저 일할 때는 난리도 아니에요. “야 이런 XX야, 이걸 음식이라고 만들어”라고 호통도 치고. 그럼 어떤 손님은 “셰프님, 그만 하세요. 젊은 사람이 안됐어요”라고 하시는데, 그럼 저는 음식을 가리키면서 “이거 손님이 드실 건데요”라고 해요. 그렇잖아요? 자기가 먹을 음식이라면 대충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김진세_ 에디스 카페에서 안 되는 게 있다면서요? 피클이 안 나온다는!

에드워드 권_ 제 음식 먹으러 오신 거지, 피클 먹으러 온 거 아니잖아요. 피클 찾는 손님들에게는 “셰프님이 이 음식은 피클 없이 드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해요. 피클을 주기 시작하면 레스토랑 색깔이 사라져요. 피클을 드리면 단무지를 찾고, 나중에는 김치를 찾아요. 김치 찾을 거면 외국 식당에 왜 왔느냐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게 우리 음식은 굉장히 짜요. 반면 서양 음식이 조금만 느끼하고 짜면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주었느냐고 하시죠.

김진세_ 외국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지 않나요?

에드워드 권_ 그렇죠. 프랑스 요리가 세계화가 됐다? 그만큼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현지에서 서양 음식을 드시면 굉장히 짜다고 느끼실 거예요. 왜 짤 수밖에 없느냐? 그건 빵하고 같이 먹으면 되는 거예요. 간이 센 음식이 나쁘다? 어떤 소금을 어떤 식으로 썼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거지, 무조건 짜다고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딱 까놓고 얘기해서, 인생 얼마나 산다고요. 전 물어보고 싶어요. 싱겁게 먹는 사람들이 연구결과로는 수명이 길다고 하지만 과연….

김진세_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에드워드 권_ 네. 그래서 셰프의 한 사람으로서 ‘이왕 먹을 거 맛있게, 잘 먹으면서 살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김진세_ 그럼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하시고 불행할 때는 피클 찾는 손님 만났을 때?(웃음)

에드워드 권_ 그런 게 아니라(웃음). 하지만 가끔 대놓고 화를 낼 때도 있어요.

# 꿈에서도 메뉴 개발하는, 천생 요리사
김진세_ 권 셰프 같은 워커홀릭의 경우 ‘내가 없으면 뭔가 안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독수리 5형제가 지구를 못 떠나듯이(웃음).

에드워드 권_ 오죽하면 밖에 있다가도 막 주방으로 들어가서 “야, 너 저리로 가” 하고 제가 프라이팬 잡고 일해요(웃음).

김진세_ 권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뭔가요?

에드워드 권_ 개인적으로 분식을 엄청 좋아해요. 김밥, 떡볶이, 어묵…. 아, 여기 푸드코트에서 파는 어묵이 진짜 맛있어서 하루에 세 번도 가요. 한번 드셔보세요. 요만한 게 2천원이라 비싸긴 한데, 진짜 맛있어요. 저는 음식은 가리지 않아요. 길거리 가다가 떡볶이 팔면 들어가서 잘 사 먹거든요. 얼마 전에는 강남역 근처에서 떡볶이를 먹는데 아주머니가 알아보시고 “에드워드도 이런 음식 먹느냐”고 하셔서 “저도 사람인데요(웃음)”라고 했죠.

김진세_ 그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빠의 넘버원 요리는?

에드워드 권_ 큰아이는 제가 만든 떡볶이를 무지하게 좋아해요. 작은아이는 큰아이만큼 먹는 거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진 않았지만, 한식을 잘 먹어요. 두 살 때부터 밥, 찌개, 국에 김치 올려서 먹고(웃음).

김진세_ ‘공식 질문’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긍정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에드워드 권_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은… 즐기는 거? 저는 일할 때 논다고 생각하거든요. 집을 나설 때면 ‘영민아 오늘도 나가서 신나게, 미친 듯이 한번 놀다 오자’라고 해요. 그럼 웃음이 나와요. 쉽게 말해 스스로 신난다고 느끼도록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거죠.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긍정의 힘이 아닐까 해요.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데 멀뚱하니 있기보다는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도움이 되도록 살자!

김진세_ 저희 독자들에게도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하라’고 조언해주신다면?

에드워드 권_ 똑같아요. 즐기고 노시라고! 저는 집사람에게도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즐기라고 말해요. 솔직히 말하면 제 또래쯤 되는 분들이 백화점 지하에 마냥 몇 시간씩 앉아 있는 모습이 전 보기 싫더라고요. 모처럼 친구 만나서 한두 시간 밥 먹고 수다 떠는 건 이해하는데,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건, 아유, 용해요(웃음).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진세_ 외국 생활을 오래 하셔서 변형된 한국인일 거라 짐작했는데, 만나 뵈니 딱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자가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거네요. 재밌네요.

에드워드 권_ (웃음) 네, 전형적인 한국 남자예요. 그래도 주부들이 좀 놀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는 전업주부가 되고부터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 세상과 단절되잖아요? 세상과의 연결 통로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TV! TV 빼고는 「레이디경향」 같은 주부지밖에 없어서 가끔씩 안타까워요. 친구들끼리 레스토랑에 모여서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도 보고 미술관과 음악회에도 가셨으면 해요. 그게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더라고요.

김진세_ 이건 권 셰프를 위해 준비한 질문인데, 행복을 주는 요리법 하나만 알려주신다면요?

에드워드 권_ 행복을 주는 요리라…. 제가 길거리에서 떡볶이 맛있게 먹으면서 “어묵국물 더 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순간순간 음식을 접할 때 행복하면 그 음식이 행복을 주는 요리가 될 수밖에 없겠죠.

김진세_ 긍정의 힘과 같은 거네요. 그 순간을 즐기면 행복하다고 하셨잖아요. 좋은 말씀이네요.

에드워드 권_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게 의식주(衣食住)라고 하잖아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제가 의견 대립이 되는 게, 선생님은 “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고, 저는 “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거든요(웃음). 제가 농담 삼아 그러죠. “선생님, 하얀 옷 입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오늘부터 세끼만 굶어보세요. 디자인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요(웃음).” 저는 말 그대로 전 세계인이 요리사라고 생각해요. 아마 박사님도 집에서 혼자 드시기 위해서 요리하실 때가 있을 거예요.

김진세_ 그럼요. 가끔 해 먹죠.

에드워드 권_ 라면 끓여 드세요? 라면 하나에도 본인 스타일이 있을 거예요. 남들보다 파를 더 넣는 사람, 양파나 고춧가루 넣는 사람도 있고요. 달걀 하나도 넣는 방식이 다 달라요. 맨 마지막에 살짝 올려서 먹는가 하면 일찍 넣어서 팔팔 끓여 먹는 사람이 있죠. 왜냐면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면 다 요리사예요. 라면 하나도 내 입맛에 맞게 정성을 들이듯이 모든 음식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레이디경향」 독자들에게 하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달걀 안 넣어요. 국물 맛을 죽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웃음).

김진세_ 주부들은 남편이나 아이들 식사는 잘 챙겨도 혼자서는 대충 먹곤 하잖아요.

에드워드 권_ 저도 많이 굶어요. 요리사야말로 굉장히 배고픈 직업이에요. 남의 음식 챙기기에 바빠서 자기 음식을 챙길 수가 없어요. 저도 하루 한 끼 먹기 일쑤죠. 운동도 안 하죠. 끼니를 굶으니 영양분 섭취 거의 못하고 담배 피우고, 게다가 제가 또 콜라를 좋아해요. 어찌 보면 전 세상에 나쁜 건 다 하고 살아요(웃음).

김진세_ 아, 슬슬 레스토랑 오픈할 시간이 되어가네요. 독자들께 더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에드워드 권_ 많은 분들이 요리사가 참 좋은 직업이라고 말씀하세요. 21세기 후반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직업이라고도 하죠. 제가 하루 평균 80~100통의 이메일을 받아요. 그런데 제가 받는 메일의 80% 이상은 요리사를 꿈꾸는데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다는 내용이에요. 요리사는 좋은 직업이지만, 내 자식만큼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분들이 많다는 거죠.

김진세_ 아직은 그렇군요.

에드워드 권_ 또 이메일 중 상당수가 ‘우리 아이는 성적이 안 돼서 요리라도 시킬까 한다’는 거예요. 공부 못한다고 요리를 시킨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머리가 나쁘면 요리는 안 하는 게 나아요. 요리를 하려면 똑똑하면서 몸도 빨라야 해요. 순간 판단력도 빨라야 하고 시쳇말로 잔머리도 잘 굴려야 하죠. 순간적인 위기 대처능력도 뛰어나야 하고요. 간혹 그렇지 못한 후배들이 보이면 전 솔직히 “요리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인생 선배, 요리사 선배로서 얘기하는 거예요.

김진세_ 와, 벌써부터 손님들이 들어오시는군요. 이제 에드워드 권의 무대가 시작되었네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에드워드 권의 ‘즐거운 카리스마’


어느 날 소년은 가출했다. 권위와 청렴의 상징인 신부가 되지 못한 분을 참지 못해 무작정 집을 나왔고, 우연히 요리를 접했다. 남들보다 2배(그는 하루 4시간만 자고 16시간을 일한다고 하니, 건강한 성인의 정상 수면시간의 반이고 노동시간의 두 배이다)나 열심히 일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 좋은 요리사가 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었다.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다.

물론 이것도 긍정의 힘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 남다른 근면성,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학구열. 이 모두 엄청난 긍정의 힘이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뭔가 범접하기 힘든 에너지, 그 모든 긍정의 힘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 스스로 ‘미쳤다’고 표현하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에디스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검정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그가 걸어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궁금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의 손은 어떨까? 그 손을 잡아보았다. 생각보다는 짧은 손가락과 생각만큼 두툼한 손바닥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전해졌다. 강하다. 날카로운 눈매를 빼고 나면,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날씬하다 못해 약간은 가냘파서 강해 보이는 구석이 없는, 이 남자의 손은 강하다.

“난 하얀색 조리복만 입으면 무서워집니다.” 그가 말했다. 순간 뇌리에 스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 맞다! 카리스마!’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예스 셰프(Yes, Chef)’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제2의 에드워드 권을 꿈꾸는 도전자들을 들어다 놨다 하는, 그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강인한 권위가 있다. ‘카리스마’란 다른 사람들을 꼼짝없이 매료시키고 그의 뜻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 적 동경해 마지않는 신부님과 마찬가지로, 요리사인 그에게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있다. 무작정 엄하고 억압적인 것은 아니다. 비록 육두문자를 써가며 사람들을 나무라지만, 결코 사람을 함부로 험하게 다루거나 공격하는 얕은 수의 카리스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최고의 요리사로 키우기 위한 다그침이었다.

카리스마는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이다. 원래 ‘카리스마(Charisma)’란 그리스어(Kharisma)로 ‘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아무나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리더가 쉽게 나타나지 않듯, 카리스마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리스마를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혐오감만 불러일으킨다. 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인류를 세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엄청난 카리스마를 잘 알지 않는가.

다행히 그의 카리스마는 즐겁다. 새하얀 조리복을 벗고 주방을 나오면, 소년이 된다. 검은색 스웨터를 입은 그는 손님들이나 직원들과 농담하며 장난스럽다. 앞으로 레스토랑을 수도 없이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날카로운 눈매 속에 꿈에 부풀어 한껏 들떠 있는 소년의 눈망울을 보았다. 즐거움이 묻어났다.

카리스마와 소년의 즐거움. 묘하지만 잘 어우러지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는 그는 멋진 사람이다. 독종이라고 불리지만, 그의 음식이 독하지 않은 이유이다. 독하기는커녕, 맛있고 사랑스럽다.
즐거운 카리스마,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드 권은…
대학 재수 시절 경양식집 주방 보조를 하며 요리에 대한 소질을 발견한 뒤 영동전문대 호텔조리학과를 거쳐 국내 특급호텔에 입사한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글로벌 셰프를 목표로 요리 연구와 영어 공부를 병행한 끝에 2000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수석 셰프, 쉐라톤그랜드 텐진 호텔 수석 총괄주방장을 거쳐 2007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두바이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총괄주방장에 임명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신의 요리는 섹스보다 낫다”는 평가는 분명 칭찬이다. 그러나 그 말을 마돈나가 했다면 세계적인 찬사가 된다. ‘스타 셰프’가 고국행을 결심하게 된 건 바로 제2, 제3의 에드워드 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무료 요리학교를 만들 거라는 소식을 들은 수많은 예비 요리사들은 매일매일이 설렌다.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
에드워드 권에게 선물하는 한 권의 책 - 「오늘의 레시피」

맛있는 요리! 너무 좋지요. 아주 유별난 미식가는 아니지만 저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가끔 주말이면 인터넷 블로그를 살피며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배만 부르다고 사나요? 의복이 최고라는 앙드레 김 선생님과 아무리 그래도 의복이 음식보다는 못하다는 권 셰프는 서로 싸운답니다. 저는 책이 더 좋습니다. 음식만큼 책도 맛있지요.

음식 만드는 데 최고인 그에게 무슨 책이 맛있을까요? 당연히 처음 떠오른 것은 요리책입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요리책은 이사 다닐 때 문제가 될 정도로 많다네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맛있는 책을 고르자고 해서, 찾은 책이 「오늘의 레시피좦(다이라 아스코 저)입니다. 일단 선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셰프가 좋아할 만한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요리책이 아니에요. 음식을 중심으로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는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즐거운 인생의 레시피지요.

바라건대, 권 셰프도 이야기가 있는 요리를 만들어내길 빕니다. 어떤 이야기요? 당연히 긍정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지요.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에드워드 권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에드워드 권에게 선물한 「오늘의 레시피」(문학동네)를 보내드립니다.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파리6대학의과대학에서 메조테라피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고려제일신경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마흔의 심리학」(공저)을 쓰고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를 번역했다.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에 이어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을 더했다.



[출처] ‘영’리하고 ‘민’첩한 세계적인 셰프 에드워드 권 |작성자 빛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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