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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ㅣ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부터 흥미를 끌었던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입니다. 연보랏빛 표지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노인들은 여유 있어 보입니다. 멋지게 차려입은 이들의 걸음걸이에는 경쾌함이 묻어납니다. 살짝 웃음 띤 노인들의 입가를 보고 있으니 궁금해집니다. 저들은 무슨 일을 하러,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뒤를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인 단어는 지명수배자! 그런데 지명수배자라는 79세 할머니, 메르타는 전혀 쫓기는 기색이 없습니다. 유유자적하게 마트에서 친구들과 장을 보고 있네요. 누군가가 이들을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와 그 일당', '틀니 강도단'으로 부른다는 것을 보니 범죄자들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메르타 일당은 스웨덴에서 '멋진 한 탕'을 하고 그곳을 떠나 라스베이거스에서 또 일을 꾸미고 있는 노인 강도단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다이아몬드 주머니를 손에 넣고 카지노를 털고 은행을 털면서 많은 돈을 수중에 넣는 이 무리는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일을 척척 진행시켜 갑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노인들이 그렇게 큰 범죄를 저지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도 같습니다. 행운의 여신을 한 팀으로 끌어들인 이들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입니다.
이웃집 건달들을 상대할 때는 겁에 질리는 평범한 노인들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생기는 걸까요? 사실 이들은 부조리에 대항하는 인물들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빼돌려 자신의 배를 불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는 화를 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곳의 돈을 털어 사회의 약자들과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단체들을 도와주기 위해 돈을 모읍니다. 감옥에 갈까봐 두려워하면서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진정한 분노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읽다보면 메르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무리의 대장인 메르타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해내고 친구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집니다.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지 않고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 친구들이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확고한 의지와 추진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메르타의 친구들도 매력적입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을 합해 일을 처리해 나가는 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지켜보는 것도 감동적인 일입니다. 이들은 5억 크로나를 기부할 때까지 일을 하기로 했지요. 5억 크로나는 우리나라 돈으로 625억이 넘는 큰돈이지만 벌이는 사건의 규모를 봐서는 금방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표액을 채운 뒤에 과연 손을 털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경찰들이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 일을 한 뒤 시골에 숨어버린 메르타 일당은 이제 여유를 즐기며 살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커피와 북극산 오디술을 먹던 과거를 뒤로 하고 에스프레소와 계란주를 마시며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메르타. 그녀는 또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숨죽이고 있다가 큰 사건을 일으킬 것만 같네요. 더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어떨지······. 별 수 없네요. 메르타 일당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사실 스웨덴은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복지국가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지요. 그런데 책 속에서 보게 된 모습은 상상 속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낡은 요양소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노인들, 뇌물을 받는 고위관료, 뇌물에 대한 대가로 공공 재산을 넘겨받는 사업가들을 보면서 이 나라에도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라서 그런지 탈세하는 방법도 지능적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이런 일은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스웨덴이라 놀란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곳은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돈과 힘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대우받지 못하는 것을,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 힘을 자신을 위해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디서나 비슷한 비리가 싹트는 것 같습니다. 이 싹을 초기에 잘라내느냐, 잘라내지 못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의 무거움이 결정되겠지요.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이 떠올라 메르타 일당의 활약이 그리 즐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