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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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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7년, 아직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기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전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블랙스완’ 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앞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 이에 대한 뉴욕타임스지를 비롯한 학계와 금융계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탈레브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재난을 예측한 예언자, “월가의 현자‘로 까지 불리고 있다. 책에서 블랙스완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해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로서 (9/11이나 월가의 위기 같은) 우리가 하늘처럼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는 지식 패러다임에 대한 반지식의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런 사건은 발생 가망성이 예측되지 못한 정도에 비례하여 발생 후의 영향력이 커지는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거야 뭐, 뻔 한 얘기지. 맞을 것을 미리 각오하고 맞는 매하고 웃다가 맞는 매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았던가? 어쨌건 이런 주장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을 하면 성공하지 못하니까 학자든 장사꾼이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에 더 관심을 갖자 라는 얘기였다....라고 일단 마무리를 하고 번역으로 얘기의 장을 옮겨보자.............. 내가 해석한 글과 관련해서는 번역보다는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겠다. 일단 해석한 내용을 우리말과 좀 더 비슷하게 다듬는 과정까지 포함을 하면 번역이란 말을 쓸 수 있겠지만 이에 연관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더 좁은 내포를 지닌 해석이란 말이 적당할 듯싶다...................... 해석이 제대로 된 책인지는 대개의 경우 앞 첫 장만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 원저자든, 그 책을 이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든 대개는 그 책의 축소판인 서장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기 마련이다. 책의 첫 단추를 꿰는 부분에서 그 책을 통해하고 싶은 말이나 해석의 능력이 다 압축되어 노정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첫 장에서 방향을 잘 못 잡으면 내내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쉽다. 블랙스완은 이론, 논리에 관한 책이다. 중간에 엉뚱한 해석이 끼어들면 sidetrack을 당한 독자들이 정신을 수습하고 글 전체의 흐름에 다시 끼어들 수 있기 까지 꽤 긴 기간 동안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다. 책이 시작되면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라는 번역의 문제로 넘기며 읽어나간다. 예를 들면 번역서 24 페이지 2째 줄에는 “The central idea of this book concerns our blindness with respect to randomness, particularly the large deviations: Why do we, scientists or nonscientists, hotshots or regular Joes, tend to see the pennies instead of the dollars?” 라는 문장을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무작위성에 대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맹목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맹목성과 무작위성이 크게 발휘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 라고 해석을 했는데, 내 생각에는 “이 책의 중심주제는 아무 연고 없이 생기는 일 들, 그중에서도 특히 기존의 지식으로는 미처 예견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지하다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고 해석하면 좀 더 가독성이 있을 것 같다. 25페이지 아래에서 두 번째 줄에는 “인간의 투기 활동에서 수익은 일반적 기대수준에 반비례한다.” 라는 도박사나 부동산 투기꾼이 할 법한 생뚱맞은 말이 나와서 원문을 찾아보니 “The payoff of a human venture is, in general, inversely proportional to what it is expected to be.” 라는 문장이었다. 제 대로 해석을 하자면 “사람들이 하는 일들에 있어 미처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할수록 큰 성공을 거두는 법이다.” 쯤이 되겠다. 몇 페이지가 이렇게 넘어가고 긴장이 풀리면서일까, 본격적인 오역이 26페이지에서 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원문: Our inability to predict in environments subjected to the Black Swan, coupled with a general lack of the awareness of this state of affairs, means that certain professionals, while believing they are experts, are in fact not.) 이 문장에서 블랙스완 현상의 지배 또는 영향을 받는 것은 environments 이지 our inability가 아니다. Environments도 여기에서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상황, 여건의 의미이겠지.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태도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란 해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짐작조차할 수가 없다. (역서: 26페이지 아래에서 5째 줄: 예측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무능력도 역시 검은 백조 원리에 지배되는데, 환경문제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태도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안 번역: 이러한 형편들에 관해 우리가 전체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과 블랙스완의 영향을 받는 상황 하에서 우리가 미래에 대한 예측능력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원문: The strategy for the discoverers and entrepreneurs is to rely less on top-down planning and focus on maximum tinkering and recognizing opportunities when they present themselves.) 왜 when이란 접속사를 until로 해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단어 하나 때문에 생기는 문장의 의미 차이는 가공할 만하다. 역서대로의 해석을 따르자면 discoverers와 entrepreneurs 는 기회들이 나타날 때까지 준비하는 마음으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지만 원래의 문장은 기회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들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궁구하여 제대로 알아보는데 힘써야한다는 뜻이다. (역서: 27페이지 11째 줄: 탐사나 경영은 하향식 계획에 의존하는 대신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 까지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일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제안 번역: 탐구가와 사업가들은 하향식의 계획에 기대는 방법보다는 기회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들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궁구하여 제대로 알아보는데 힘써야한다.) 이것도 일종의 원심력일까? 뒤 페이지로 갈수록 오역이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다. (원문: What did people learn from the 9/11 episode? Did they learn that some events, owing to their dynamics, stand largely outside the realm of the predictable? No.) (역서: 27페이지 아래에서 3째 줄: 우리는 9.11테러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건도 일단 발동하기 시작하면 현실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까? 천만에.) 문장의 기본 구조는 some events stands outside predictable realm, 즉 어떤 사건들은 우리가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일단 발동하기 시작하면 현실로 벌어질 수 있다는”라는 역서의 해석은 “owing to their dynamics”란 부분을 엉뚱하게 해석한 것이거나 역자가 나름대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설명을 붙여 놓은 것 같은데 나로서는 요령부득의 문장이다. “owing to their dynamics는 ”events들이 생기게 된 맥락, 사정, 그 뒤에 있는 힘들, 동인들 때문에”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제안 번역: 우리는 9.11테러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어떤 사건들은 그것들을 일어나게 만든 배후의 고유한 사정들 때문에 거의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배웠을까? 천만에.) (원문: What did they figure out? They learned precise rules for avoiding Islamic prototerrorists and tall buildings. Many keep reminding me that it is important for us to be practical and take tangible steps rather than to "theorize" about knowledge.) (역서: 28페이지 1째 줄: 지금 9.11의 교훈으로 어떤 것들이 거론되고 있는지 한 번 보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고층빌딩에서 일을 벌이지 못하게 할 세밀한 규칙을 얻어냈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교훈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지식을 ‘이론화’하는 것보다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void는 내가 무엇을 피하는 것이지 남이 무엇을 못하게 한다는 의미는 없다. 다시 말해 “avoiding Islamic prototerrorists and tall buildings”는 테러리스트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테러의 타겟이 될 수 있는 큰 빌딩을 피하는 것이지 “테러리스트들이 일을 벌이지 못하게”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역이 가중되면 역자가 전체적인 글의 맥락을 잊어버리고 저자와 반대 입장에 있는 주장을 저자의 입에 물리기도 한다. “더 중요하다고”말하는 주체는 they, 즉 교훈을 얻었을 미국인들이나 many, 즉 저자가 조소하고 있는 지나치게 세밀하고 짜잔한 rules이지 '나'는 아니다. (제안 번역: 지금 9.11의 교훈으로 어떤 것들이 거론되고 있는지 한 번 보라. 미국민들은 기껏해야 테러리스트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테러의 타겟이 될 수 있는 큰 빌딩을 피하라는 짜잔한 행동규칙들을 얻었을 뿐이다. 그것들은 지식에 대해 “이론”을 세우는 것보다는 지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조치들을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계속 나에게 상기시킨다.) (원문: The French had been excellent students of history; they just learned with too much precision. They were too practical and exceedingly focused for their own safety.)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 계속 연결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과거 경험했던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 너무 세밀한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한 것이 오히려 정작 자신들의 안전이라는 애초의 목적을 잊고 그에 반하는 행동, 과거 독일의 공격로였던 길을 따라 마지노선 이라는 방벽을 구축하는 멍청한 짓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역서: 28페이지 9째 줄: 프랑스인들은 역사학에서는 우등생이었다. 그들은 너무 세세한 것들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에 집착했고, 자신들의 자신들의 안전에 골몰하느라 신경이 너무 곤두서 있었다) 이쯤되면 원문의 단어들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손을 넣어 집히는 대로 해석을 하자는 것인가? (제안 번역: 프랑스인들은 역사에 관한한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정밀한 공부를 했다. 과거의 역사에 집착하고 그에 맞는 실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느라 정작 그들의 안전이라는 문제에 해를 끼쳤다.) 이하 생략 http://blog.naver.com/as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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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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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소설, 아니 그 보다는 영어로 소설을 쓰는 몇 몇 작가들을 좋아해서 대학졸업 후 그들과 함께 늙어가는 기분으로 작품들을 모으고 읽으며 즐겨왔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부쩍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시간이 나는 대로 인터넷에서 번역에 관한 교육이나 모임, 또 번역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블러그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외국에서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귀국한 후 들른 서점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반가워서 일부러 몇 권 사본 적이 있습니다.  Paul Auster나 Bill Bryson등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글로 옷을 갈아입고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자니 뜻하지 않던 곳에서 죽마지우를 만난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그 존재를 모르고 있던, 그 책을 구입했을 많은 독자들과 묘한 연대감이나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고 그 느낌을 좀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충동적으로 번역서들을 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번역해 놓은 우리 말의 느낌이 이상한 경우가 많더군요. 의역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맥락이 어색한 곳들이 말이죠.  몇 곳 원본과 대조를 해보니 참담할 지경의 오역들이 눈에 띄더군요. 얼마 전까지 느꼈던 친밀감과 호감이 배반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부러 원서와 번역서를 대조해 읽지 않더라도 오역의 문제는 이 곳 저 곳에서 계속 마주치게 되더군요. 


    예를 하나 들자면 Paul Auster의 작품 중 Mr. Vertigo라는 책으로 학생들의 영어강독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첫 장을 넘어가기도 전에 놈들이 제가 해석을 해주는 내용에 딴지를더군요.  알고 보니 공중곡예사라는 제목으로 나온 번역서를게 말하면 부교재로 제대로 말하면 컨닝용으로 보고 있더군요.  그 책 첫 장 중에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부분에 느닷없이 “공중제비 1번에 1달러씩 받으려고 그녀가 어떻게 재주를 부렸고"란 내용이 나왔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how she turned the tricks over in East Saint Louis for a buck a tumble이라는 원문이 그렇게 번역되어 있더군요.

  
   ‘Turn the trick은 원래 매춘부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말에서도 남녀간의 특정한 활동을 그리 고상하게 묘사하지 않을 경우 ‘뒹군다는 말을 쓸 때가 있는 것처럼) a tumble은 한 번 같이 뒹구는데 (자는데)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일껀 가르쳐주니 학생들이 자기들 참고서랑 틀린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그녀가 한 번 자는데 1불씩 받고 몸을 팔았는지로 해석을 해야 할 문장이 자습서에는 기계체조선수의 묘기를 설명하는 듯한 아주 건전한(^^) 내용으로 바뀌어진 것이죠.  학교를 빼먹고 길바닥을 헤매는 농땡이 학생들을 잡아다 학교나 집으로 돌려보내는 선생님이나 경찰 등을 말하는 truant officer를 말 그대로 해석해서 나태한 공무원으로 해석해 놓은 것은 애교로 치더라도 전선에서 “적의 독가스를 맡고 사망했는지”를 “어떻게 술에 취해서 죽었는지”로 번역하는 등 원전의 detail한 부분들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는다면 원서를 읽은 사람들과 역서를 읽은 사람들이 과연 굵직한 줄거리 외에 동일한 책을 읽은 경험, 심지어는 감동을 공유할 수 있을 지 심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취미로 하는 작업이라면 모르겠지만 프로페셔널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오역이 지적이 된 후에는 출판사나 역자 본인의 홈페이지에 정오표를 게시하든 정확한 번역을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진정한 전문 번역인이 아닐까요? 

 

    이런 저의 의견에 대한 공감의 확산이어도 좋고 무책임한 번역에 대한 압박이어도 좋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우선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도 시간이 되는대로 한 번씩 들여다 보고 명백한 오역들을 채집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번역을 해봐야겠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구요.  잘못된 오역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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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7-11-1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10%!^^
정말 어처구니 없는 번역들이 많아요.
저도 정영문이 번역한 레이몬드 커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을 읽고 화가 나서
문학동네에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글쎄... 같은 돌로 두 여자를 죽이는 결말을 같은 바위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했다...로
끝내더군요. 오역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결말을 바꾸는.... ㅠㅠ
앞으로 좋은 작업을 부탁드려요^^

asnever 2007-11-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커버의 드라이한 문장을 좋아합니다.

정영문씨가 정말 죽이는 (^^) 번역을 했군요. (정말 다의적인 표현입니다,,,)
대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하는 번역도 아니고 왜들 그러는지,,,,,

당분간 취미차원에서 많이 팔려나간, 그러면서도 부실한 번역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독자들에게 해를 입힌 번역서들에 gadfly역할을 좀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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