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좌파는 주로 세계를 바꾸라고 말하고 우파는 주로 자신을 바꾸라고 말한다. 둘 다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대상은 다르다. 좌파는 편집증적이라 음모론에 빠지기 쉽고 우파는 신경증적이라 불안 장애에 시달린다 (우파가 괜히 안보 안보 거리는 게 아니다). 좌파는 손을 밖으로 뻗고 우파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 좌파가 타인을 너무 믿을 때 우파는 너무 안 믿고 우파가 자신을 너무 믿을 때 좌파는 너무 안 믿는다. 나는 이런 ‘정치적‘ 성향이 인간 사회의 근본 동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방향이 다른 여행자들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과 북쪽. 우리에게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일련의 규칙의 조합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좋다. 저것은 하지 말자 따위의.

하지만 ˝살인하지 말라˝는 도덕적 테마를 끈질기게 붙들고 가면 결국 도스토예프스키와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다. 공백이 나오는 것이다. 일례로 대규모 전쟁은 대규모 살인이지만 외국이 한국을 쳐들어올 때 그대로 손들고 항복하는 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는 편이 도덕적으로 일관성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어떤 일은 하고 어떤 일은 해선 안된다고 여길까.

일종의 경험칙으로 인류는 여러가지 규칙을 발굴해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놀이의 규칙을 스스로 발견한 것과 비슷하다. 인류는 아주 예전부터 놀고 있었지만 놀이의 룰은 최근에야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살인의 경우 지금도 빈번하고 과거에도 빈번한 인류의 습성의 하나일 것이다. 이것은 사용가능한 옵션이다. 단 특정한 경우에 한정하기로 하자. 그 외에는 제재를 가하자. 거꾸로 말하면 살인은 ‘어느 정도‘는 허용된다는 뜻이다(우리가 독립투사를 살인자라고 비난하지 않듯이).

피터슨은 전작인 ˝믿음의 지도˝에서 이런 룰의 구조를 생리학적 토대에 문화인류학적인 문헌연구로 밝혀내려 시도했다. 전부 다 읽진 못했기에 그 결과가 성공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좀더 미시적인 분야에 관심이 간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간의 정치적 체제에 대해서는 이를 지칭할 마땅할 용어조차 없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남편과 아내는 어떤가. 삼강오륜을 되새기면 되는 걸까.

갈등은 합의나 설득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놀러가면서 여행코스 정하는 일만 해도 가까운 사람 하나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지 않게 조절하는 덕목은 포용이 아닌 ‘포기‘이며(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살란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건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는 시스템의 존재다.

즉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에게 혼수 받고 집 받고 하는 이 구조가 허물어져야 하고 대학생이 최저시급 알바로 주거 안정이 가능해야 한다. 그게 될까. 나는 현체제로는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생산된 부는 세대구분으로 보면 오륙십대의 손에 있는데 상속이라는 형태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려면 최소 삼십년은 걸린다. 그때가 되면 이미 현재의 이공삼공은 경제적 빈민계급이 될 것이다.

결국 대규모 공공주택의 제공과 세입자의 장기 주거가 가능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 글쎄 그쪽에는 큰 관심이 없어보이고 집값 잡으면 된다고 보는 것 같은데 부동산 집값이 떨어지면 오륙십대 세대의 부의 규모가 축소될테고 그 파급효과가 긍정적일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부모세대가 축적한 부에 기대어 살던 젊은 세대도 경제고를 겪지 싶은데..(나 살기 바쁘니 자식들에게 알아서 살라고 하는 식의 기묘한 개인주의가 발생하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