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테오리아, 2019)

 

424일 출간 예정, 출간 전 연재!


살다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어쩌면 답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여기, '죽음'을 바라보는 한 시선이 있습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는 누구일까요

가족? 의사? 성직자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는 바로 장의사일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죽음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만가(輓歌) 외에 시가 있기는 하냐고 어느 시인은 말합니다.

섹스와 죽음은 시인들이 쓸 유일한 주제라고도 합니다.

 

여기 장의사이자 시인, 시인이자 장의사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색, 관념적이면서 현실적인 사색을 들어봅니다.


---4월 9일부터 6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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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 다카노 에쓰코의 자의식의 상당 부분은 1960년대 최고조에 달했던 일본 학생 운동과 접목되어 있다. 에쓰코의 삶은 그의 시대와 분리되어 이야기될 수 없다. <<스무 살의 원점>>에 거론되는 주요 사건을 간략히 정리한다.

도쿄대 문제:
도쿄대 분쟁 또는 도쿄대 투쟁으로도 불린다. 1968년 도쿄대 의학부 인턴제도 폐지문제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으로, 1969년 야스다 강당을 점거한 전공투(신좌파 학생운동연대) 세력이 학내에 투입된 경시청 기동대와 민청에 진압되는 ‘야스다 강당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전공투가 조직되고 일본 학생운동이 단순한 학내투쟁을 넘어서 신좌파투쟁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토 총리 방미저지투쟁:
1970년 예정된 미일안보조약 개정 협의차 방미하는 사토 총리 일행을 저지하려는 투쟁. 1969년 11월 16일 하네다공항 점거 사태로 사상 최대인 2500여 명이 체포되면서 학생운동·신좌파운동의 기세가 사실상 꺾였다.

전공투(全共鬪):
일본의 학생운동연대로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全国学生共同鬪争会議)의 통칭. 특정 사상 아래 모인 조직이라기보다는 대중운동의 성격이 강했고 나중에는 전국의 각 대학에서 조직되었다. 당시 기존 좌익세력인 일본공산당은 60년 안보투쟁에서 보수정당으로 낙인찍힌 상태였고, 같은 계열의 학생조직 일본민주청년동맹(민청)도 마찬가지였다. 전공투는 기존좌익세력을 반혁명 일파로 규정하고 바리케이드 전술을 비롯한 무장투쟁을 실시하며 민청과 극렬히 대립했다.

히비야 노동절 사건:
1952년 5월 1일 노동절 행사를 맞아 행진하던 좌익세력과 경찰부대가 충돌, 전후 일본학생운동사 최초로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

민청(民靑):
일본민주청년동맹의 통칭으로 일본공산당 계열 학생조직을 말한다. 전공투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오키나와 문제:
이 일기가 쓰인 1969년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2년부터 미국이 통치하고 있던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해야 한다는 여론 혹은 운동을 뜻했으나, 현재는 오키나와 내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일련의 사회문제를 말한다.

일공(日共):
‘일본공산당’의 줄임말. 일본공산당은 1951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폐지를 위한 안보투쟁에서 기성정당으로서 온건한 입장을 취하며, 일공에서 분리된 ‘공산주의자 동맹’과 그 학생조직(분트 전학련)을 극좌파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70년 안보:
70년대 안보투쟁의 줄임말. 60년 안보가 미일안보조약의 국회통과 저지가 목적이었다면, 70년 안보는 미일안보조약의 개정협의 반대행동이 중심이었다. 70년 안보에서는 투쟁에 참여한 좌파의 분열과 폭력적 투쟁이 심화되어 지식인을 비롯한 일반대중의 지지를 잃었다.

간바 미치코(樺美智子, 1937~1960):
1960년 6월 15일, 미일안보조약 개정안에 반대하는 안보투쟁 중 국회의사당 앞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사망. 당시 도쿄대 문학부 재학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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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출간을 앞두고 있다. 구한말에서 20세기 말 정도까지 이 땅의 극장에서 공연되고 상영된 작품들의 문화정치학적 의미를 다루는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김옥균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일본찬양이야기도 되었다가 민족수난사이야기도 되었다가 한다든지, 근대적 연극의 여배우가 되었던 여성들이 죄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든지, 김영동의 곡으로 주야장천 듣던 <한네의 승천>의 원작이 일본어로 쓰였었다든지, 최은희가 박정희에게 공개 단상에서 한복 입고 큰절을 했다든지 하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허나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음... 짜증 났다고 해야 하나...
이 땅의 최초의 근대적 여성 작가라는 김명순이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데이트 폭력을 당했으며, 그 가해자는 잘 먹고 잘 살았으며, 피해자는 한때는 의식 있었던? 김기진을 비롯하여, 김동인, 염상섭 등 국어교과서적 인물들에게 난도질을 당했으며, 하여 김명순은 당대 신여성이라면 당연히 부르짖어야 했을 영육일치의 연애사상(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을 거부하며 금욕주의적 연애사상을 표방하는 글쓰기로 자신을 방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 짜증이 더해지는 건
근 100년 후에도 거긴 그럽니까, 뭔가 바뀌었겠죠?라고 물으신다면
여긴 이럽니다. 뭔가 바뀌지 않네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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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벨상 부부의 아들이었다>>의 저자 얀 뮈르달의 자전 소설 Childhood 에 HARRISON SALISBURY  가 쓴 서문을 통해서 군나르와 알바 뮈르달 부부의 아들로서의 얀 뮈르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CHILDHOOD

 

FOREWORD BY HARRISON SALISBURY 

 

그는 그의 부모와 부모 세대가 원하지 않았던 아이가 되었다. 

 

어린시절에 대한 얀 뮈르달의 소설들은 스웨덴에서는 이미 고전이 되었다. 스웨덴의 최근 문학사에서 뮈르달의 삼부작은 "어떻게 자아가 형성되는가"에 대한 우리 문학의 가장 주목할만한 묘사의 하나"로 불려진다. 

뮈르달은 이 책은 "어린시절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이다. 자서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나오는 알바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알바 뮈르달이고, 군나르는 <<An American Dilemma>>를 쓰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뮈르달가로서는 아닐지라도 뮈르달가의 개개인이 1920년대 이후 스웨덴에서 막강한 지성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이 책의 배경의 일부이다. 

또한 이 책이 중요한 스캔들이라는 점도 배경의 일부이다. <<Childhood>>는 스웨덴의 지성이자 정치적 거물의 사적인 삶 안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겉치레에 감동받지 않는 아이의 눈으로, "얀 뮈르달,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무례하고 관용없는 무자비한 비평가"(르 몽드)가 된 아이의 눈으로. 

뮈르달은 <<Childhood>>가 출판되도록 하기 위해서 투쟁해야만 했다. 이 책은 소량의 한정판으로만 축소되었다. 그러나 뮈르달은 이 책을 라디오에서 낭독하고 주요 일간지에 연재하는 방법으로 논쟁을 공론화했고 이 책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우회했다. <<Childhood>>는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결국 고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뮈르달의 childhood series의 두 번째 책인 <<Another World>>는 Literature Foundation's Great Prize of the Novel을 수상했다. 세 번째 책 <<Twelve Going on Thirteen>>은 Esselte Prize for Literature를 수상했고 스웨덴의 중학생들에게 10만부가 무료로 배포되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활발한 반체제 인사에게는 기이한 운명이다. 

십대와 성년기에 대한 자서전인 <<Confessions of a Disloyal European>>은 뉴욕타임지 서평에서 "1968년 주목할만한 1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비평가인 Bernard Pivot 또한 그 책을 스칸디나비아 고전의 하나로 선정하였다.

 

"<<Childhood>>는 깊고 오래가는 수치심이다. 씁쓸한 맥주처럼, 그 뒷맛은 오래 남는다"

 

이 책은 모든 감수성을 박탈당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어린 소년이 경이와 판타지 그리고 분노에 마음을 열고 순진하게 그 시절을 바라본다. 이 책은 문화와 정치 그리고 야망이 갈라놓은 한 가족 안에서의 꾸준한 사랑과 씁쓸하고 치유되지 않는 갈등의 이야기이다.

 

얀의 부모는 둘 다 노벨상 수상자였다. 얀은 "문제아"였다.

 

혹은 얀의 부모가 얀은 "문제아"라고 모두들에게 말했다. 얀의 부모는 진보적인 가족관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현대 복지 국가의 창립자이자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성이었다. 1967년 반전 시위에서 경찰이 얀 뮈르달을 마구 구타하고 체포했을 때, 얀의 엄마는 군축장관 Minister of Disarmament였다.

 

이 책은, 얀 뮈르달이 되기 위해서, 얀이 어떻게 자신의 부모와 부모 세대가 원치 않는 아이가 되었는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동안 얀 뮈르달은 자신이 이단자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제 이 이단자는 스웨덴 문단의 최전선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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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고등학생들도 소논문을 쓰느라 야단이라지만
예전에는(내 기준)소위 대학이라는 데에 가서
무슨무슨 학과에 다니면서 무슨무슨 학을 전공이라고 하게 되면
비로소 각주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억에 2학년 때 처음으로 레포트라는 걸 썼는데
각주를 어떻게 다는 거냐고 주변의 식자들한테 무진장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니 말이 아니고 남의 말을 인용하면 각주를 달라고들 했는데
참고서적 2-3권을 발췌 요약할 뿐인 레포트에서
각주를 달지 않을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
단락마다 각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각주만으로 이루어진 레포트...
이 레포트는 내게 삐 뿔인지 제로인지 마이너인지로 남았던 것 같은 아련함이 있다.
(예전에는 이거 그리 나쁜 거 아닙니다. 요즘 같지 않아요...)

<<각주의 역사>>에서 인용되는 책에 <<힝크마르 콘 레프코브의 텍스트 없는 주들>>이라고 있는데
<<각주의 역사>> 를 출판하는 건 예정되어 있던 일이던가...

각주와 나의 날카로운 첫 키스는 아니고 만남의 추억은 이 정도로 하고
나와 <<각주의 역사>>의 만남을 간략히 서술하겠다.

어느 날 광화문에서 <<시간지도의 탄생>>이라는 역사서를 접하게 된다.
예전부터 사회과부도 뒤의 연대기 읽기와 작가 연보 읽기를 즐겨하던 습성에
두 명의 저자를 검색하고 특히 한 명의 저자가 구미에 무진장 당기는 제목들을 지닌
다수의 저서목록을 지닌 미국교수임을 알게 된다.

처음 간택된 제목은 위조와 관련된 책이었다. forgers and critics
사문서 위조 말고 또 무슨 위조가 있나 궁금해서 살펴봤다.
흥미로운 일화들도 있었으나 넘 학술서 필이어서 퇴짜.

The Footnote: A Curious History라는 책을 사서 봤다.
에이전시에서는 불어판을 주는 바람에... 영어판을 사서 봤다.
이 책이 미국 사람이 영어로 쓴 책임에도
world copyrights이 프랑스 출판사 쇠이유Seuil에 있으며
독일어 번역본이 첫 출판본이라는 점이
이 책을 더 "있어 보이게" 했다.
독일어판은 게다가 제목이 <<독일 각주의 비극적 기원>> 뭐 이런 식으로 니체를 연상시키고
불어판 제목은 <<학식의 비극적 기원>>으로 역시 멋있어 보였다.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직접인용문들과
외에 이탈리아 문헌에 폴란드 사람까지 등장하는
저자의 전공분야인 르네상스만큼
르네상스적인 책이었다.

각주를 다루면
위조가 아니라 표절이 연관될 것이었고
이 땅에 만연한 표절 풍토에 일침을 가하고자 출판을 결심했다.

결과론적으로는
표절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책은 아니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인 학문적 엄정성을 반추하게 하는 책이다.

이 땅의 모든 학자들이여
앤서니 그래프턴이 이 책에 붙인 423개의 각주를 꼼꼼히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그의 각주는 읽지도 않았음이 미루어 짐작되는 책의 서지사항만 잔뜩 나열한 각주가 아니고
자신의 다른 책을 홍보하는 각주도 아니고
(없느니만 못한 각주들...)
그가 유럽과 미국 각지의 도서관과 서고를 뒤져
케케묵은 사료들을 찾아내서
읽고 정리해서 직접인용한 각주들이다.

덕분에 편집하느라 애는 먹었다.

저자를 비롯하여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학자분들 덕에
성실하게 학문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달리 더 넓게 보자면
스스로의 일에 성실하다는 것, 곧 자신에 성실함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각주가 이런 교훈을 주다니 참 curious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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