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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의 예술문화 취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영화니 미술이니 사진이니 이런 책들을 살펴보다가

미국 사진 작가 워커 에반스의 Let Us Now Praise Famous Men을 발견했다.

그동안 듬성듬성 봐 왔던 그의 사진들이 다 이 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 그랬군...


그런데 이 책은 에반스의 사진집은 아니었고, 대공황기 미국남부 면화소작농의 삶을 에반스가 사진으로 찍고 Agee가 글로 쓴 책이었다. Agee라... 익숙(?)하다면 잘난 척이고, 한때 영화도 보고 영화책도 좀 볼 때 이름만 좀 들어봤던 James Agee... 아 Agee가 시나리오 좀 쓰고 영화비평 좀 한, 미국에서 저널리즘 영화비평​의 아버지나 삼촌 쯤 되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르뽀도 썼네. 좀 더 알아보자 했다.


출판인들의 화수분 아마존 닷컴에 들어가 James Agee를 치니 미국에서 인정받은 고전만 엄선해서 출간한다는 비영리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도 책이 나왔다. 영화 글쓰기 뿐만 아니라 Let Us...를 포함한 저널리즘 글쓰기는 물론, 단편소설, 시집도 있다. 그리고 아마존에서 검색어 자동 완성으로 제공되는 A Death in the Family 라는 소설도 있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오, 흥미로운데... 게다가 책표지들을 언뜻 보니 훈남이어서, 자세히 보았더니 미남이다. 


A Death in the Family... 제목이 범상치 않은 소설이 흥미로와서 직구해서 정독하고 출간을 결정했다.


읽고난 "첫"느낌이 먹먹했다. 입에 담기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죽음이라는 사태, 그것도 가족의 죽음이라는 사태를 어찌보면 워커 에반스의 사진처럼 "그저" 하지만 "속속들이" 담아낸다. 이 사태를 대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절대로 강렬한 유화는 아니다. 담채화처럼 옅게 채색된 아주 섬세한 스케치다.

 

제목이 힘들었다.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제목일터이다. 하지만 어느 한 가족 그래서 "그" 가족(이 세상의 모든 가족이면서 동시에 바로 "내" 가족, "우리" 가족)에게 닥쳐온 하나의 죽음이라는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달리 카피스러운 제목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가족의 죽음>외의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Agee를 표기하는 것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근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작가라 아지, 애지, 아기 등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었다. 올바른 영문 발음을 제안하는 복수의 영문사이트의 고증과 국내 번역서의 관례에 가장 준하는 에이지로 결정했다. 이게 에-이-지로 하면 안되고 '에'를 짧게 발음해야하는데 한글표기로 나타낼 수는 없다. 음...

 

출간작업을 진행하면서 에이지를 더 들여다보니 20세기 중반 미국 문화계에 에이지가 걸치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그리고 땅콩농장 출신 대통령으로 유명한 지미 카터, 퇴임 후 더 빛을 발하는 대통령 지미 카터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에이지의 <Let Us...>를 그의 인생의 책으로 꼽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에이지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는, 지금은 없어진 <파티잔 리뷰>라는 잡지에 실었던 에이지의 <Knoxville: Summer, 1915 녹스빌,1915년 여름>이라는 산문시가 너무 좋아서 곡을 붙였다. 바버는 또다른 에이지의 시에도 곡을 썼는데, 같은 시 <환히 빛나는 이 밤 Sure on This Shinging Night> 에 미국작곡가 모튼 로리젠 Morten Lauridsen도 곡을 붙였다. 


그는 찰리 채플린이랑 막역했고 ,뉴욕 뒷골목 연작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헬렌 레빗 Helen Levitt과도 공동작업을 했다. 

 

에이지는 1909년에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태어났고 그가 여섯 살 때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했다. <가족의 죽음>은 이 트라우마적인 사건에 대한 에이지의 회고, 자전적인 이야기이자(주인공 이름 루퍼스는 에이지의 미들네임이다) 아버지에 대한 추도사이다. 운명인가, 에이지는 이 추도사를 완성하지 못했다. <가족의 죽음>은 유작이 되었다. 에이지가 1955년 뉴욕의 택시 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런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었다(어떤 죽음이라도 준비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도 같지만...).

 

에이지의 친구이자 대중문화비평가인 드와이트 맥도널드는 그를 문단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렀다. 제임스 딘이 멋있듯이 제임스 에이지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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