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부터 우울한 민규와 아닌 척했지만 더 우울한 부모...의욕도 없고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각자 놀고 있다가 갑자기 마곡사에 가게 되었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말인 힐링하러~ 자연 속에 살짝 묻어 들어가 맘도~ 몸도 치유 받기 위해... 가까운 공주로 나들이 갔다.  
게임을 하다 아이템을 사기 당하거나 아이디를 정지 당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울지 않는 민규가 토요일에 울었다.  내가 신기해서 민규 운다라고 말했더니~ 날 째려보면서 뚝뚝 눈물을 흘렸다. 그래~ 때로는 독한 맘도 필요한거다~ 제이부페는 다시 한주 미뤘지만... 이번에 니가 느낀 좌절과 실패를 잊지말고 기억하렴... 어떤 성적표 앞에서도 꿋꿋하게 뭐 어때 하던 놈이 그래도 피아노에는 기대가 컸었구나~ 

 


바람도 쐴 겸... 오랫만에 찾은 산사~ 
은은한 풍경소리와 마른 단풍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지막 고운 빛깔마저 우리에게 다 보여주곤 땅 속으로 들어 가 거름이 될 준비 중 인가보다.  
마곡사 올라가는 길에 보기만 해도 이빨이 달달 떨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 위로 산 그림자 어리운다.  
군밤 한 봉지를 까 먹으며... 천천히 걷다보니~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도 보이고~
알맹이를 내놓기 위해 몸을 반으로 가른 아픔을 견뎌낸 밤송이도 보인다. 산책로 갓길... 작은 흙더미 위에서 이름모를 풀들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있었다.
꼬물꼬물~연약한 줄기와 잎이 이 추위를 어찌 견뎌낼까?  짧아진 낮의 햋빛을 잘 모아 두고~ 긴 겨울밤을 참아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크고 웅장한 절이 아니어도...좋다.
오래된 절에서 나는 묵은 나무 향도...좋다.
흙과 돌로 엉성하게 지어올린 나즈막한  담벼락도..참 좋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반질해진 댓돌도 좋다.
냇물 위에 제각각 모양과 크기로 놓인 징검다리...그리고 그 사이로 유유히 흘러 가는 물도 좋다.
작은 돌들로 쌓아 올린 소원 탑에서... 민규도 돌을 올렸다.  
자연의 모든 구성원들이 만들어 낸 조화가 잠 신비롭다...  
다시 내려오는 길... 어느 새 너무 어두워졌다.  도시에서는 인공의 빛이 많아  진짜 어둠을 느끼기 힘들지만~ 산 속 절의 어둠은 두려움보다는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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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오는 깊은 밤...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국수이다.  백석의 시...'국수'에 내 맘도 살짝 담아 본다.  

 

 

백석의 시 100편 가운데 음식이 등장하는 시가 대략 60편이 된다. 그 시 속에 나오는 음식은 개인이 아닌 끈끈한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며~ 고향의 맛을 다양한 시어로 표현한다.  비릿한~ 달큰한~ 시금털털한~ 슴슴한...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맛이 느껴지니 백석은 대단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오랫만에 비빔국수로 밤참을 만들어 먹었다.  피아노에서 돌어온 민규는 늘 개선장군(?) 뭘 먹일까??  하는데 갑자기 매콤하게 무친 비빔국수 생각이나서... 물으니... 엄마 성의를 봐서~먹어준댄다ㅠㅠ


펄펄 끓는 물에 담궈 놓고 보니 참 뽀얗다...적당히 삶아 물기를 빼는 사이에~묵은 김치를 잘게 썰고 깨소금과 들기름...매실청을 넣고 조물주물 양념을 만들었다. 때로는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만들기가 오히려 담백한 맛을 내는 법~ 부실한 재료를 손 맛으로 극복해 보려 애썼다.
음식은 역시 맛이 아니라 냄새가 먼저다.  골고루 양념이  배이도록 무쳐서 담아냈다.  고소한 기름냄새에 맑음이도 덩달아 신이 났다.  따끈한 국물과 비빔국수 한그릇먹고~민규는 쉬는 중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쩔쩔 끓는 아랫목에 모여 앉아 살얼음 살짝 언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던 시 속 주인공들만큼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 따뜻한 집에 가족들이 모여 먹은 오늘 국수도 참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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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제주도 내음을 가득 담고 왔다.  

가로수 길에 서서 푸르름을 자랑하던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을 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갈 무렵이면~제주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고이 숨겨진 사연을 담고...

귤이 바다를 건너 뭍으로 온다.
온전히 제주의  흙과 해... 바람.... 그리고 물과 공기만이 키워낼 수 있는 귤~
그래서 모든 귤의 모태는 제주의 자연이다.  


구럼비 나무와 바위~ 그리고 제주도의 바다... 바람 타고 올라선 한라산... 깊은 슬픔으로 새겨진 제주도의 아린 역사가 귤 한개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신은 제주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붓고는~잠시 그곳을 돌봐야 하는 것을 잊은게다.  4.3사건의 소용돌이를 섬 구석구석  겪게  하신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아픔을 위로하시려고 제주도에서만 귤이 자랄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맛도 향기도... 모양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귤을 보며~ 제주를 그리워해 본다.
작은 듯 싶지만....많고...
하나인 듯 싶지만... 나눌 수 있게 풍성하고.

 

가까이에  있는 듯 싶지만.... 저 멀리 향기를 보낼 줄 아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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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더위가  한참일 때...연두빛깔 고운 사과가 쏙 얼굴을 내민다. 
가을이 온다고...이제 곧 온다며... 수줍은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온다.
여름의 뜨거움을 가을의 소슬바람이 식혀갈 무렵...
빠알간 빛깔  고운 사과가 
가을이 왔다고... 지금이 가을이라며... 우리집 식탁 위에 환하게 웃으며  담겨져 있다^^

 

 

 

사과를 깎을 때... 처음에 칼로 사과를 톡쳐서~ 먼저 기절 시켰다. 아프지 말라고~ 사각사각 껍질 벗기는 소리도 경쾌하고... 빨간 껍질 속에 숨겨놓은 노르스름한 속살도 달콤한 향을 뿜어낸다.  사과는 포크로 찍어 먹는 것보다는 손으로 집어 아삭아삭 씹어야 제 맛이다.  입 압 가득 넣고 먹으면~가을 바람도 햇살도 다 내 것이 된다. 
이렇게 한  여름 폭염과 몇번의 태풍을 뚫고... 무사히 우리 집으로 온 사과야~ 니가 있어서~가을이 더 가을 답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왜  그 수많은 나무 중에 사과나무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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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100권의 도서목록을 만든 후... 첫번째로 선택한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으로 이어지는 대하역사소설 32권을 집필한 작가 조정래가 대학생 중심의 독자 84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엮은 책이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반드시 읽고 가야할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나 역시 스무살 언저리쯤에서 낑낑거리며 태백산맥을 완독한 기억이 있다.


작품의 무게에 눌려...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한강과 아리랑은 책꽂이에 머물며 내 손길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우선은 엄청난 인물의 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을 이해하며 읽기에는 내 그릇이 작았고...다만 읽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뿌듯했다.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새벽 두시까지 매일 16시간의 노동으로 평균 30매 가량의 원고를 늘 친필로 써 내려간 작가의 성실함에 감탄할 뿐이다.  


평생을 소식과 채식 그리고 산책을 즐겼으며... 일체의 취미생활이나 술....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최소화 했던 절제의 삶이 대작가를 만든 바탕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있었기에  30년의 세월동안 웬만한 역량의 작가는 엄두도 내지못한다는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열 권 분량의  태백산맥  필사를 통해 인생이란 지치지 않고 미련하게 하는 노력이 큰 성과를 낸다는 것임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는 조정래 작가.... 


글을 잘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이 방법이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이고 첩경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하루도 쉬지 말고 빠짐없이 날마다 실천에 옮겨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 같다.
조정래의 성실함과 우직함 그리고  민중 중심의 역사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작품이 아닌 인간 조정래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최고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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