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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 - 모든 위대한 사상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ㅣ 위대한 질문 시리즈
사이먼 블랙번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 나는 기계 속의 유령인가?
사물과 신체의 물리적 체계에서 어떻게 의식적 경험이 생겨날까? “뇌-신체 체계는 거대한 기계다. 이 기계는 정보를 유령에게 전하고 유령에게 지시를 받아 신체를 반응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기계속의 유령). p. 16” 감각을 받아들이는 신체와 그것은 인식하는 정신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신, 즉 의식의 작용은 신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의식의 표정은 신체의 손, 발, 얼굴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의식=초현실적 존재’ 보다는 ‘의식=신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2.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분명 내부적인 성질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존재여부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외부에서 자극을 받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독자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쳐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충분히 인간의 본성은 주체자의 말, 행동 등을 통해 이해가능하다. 그 본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육과 경험으로 체득하고 교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와 환경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판단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4.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플라톤에 의하면 뭔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가, 참인가, 참이라는 생각이 정당한가를 물어야 한다. p .66” 자동차 바퀴가 세 개 인 것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많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참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눈을 통해 직접 자동차 바퀴가 세 개인 것을 인공위성의 사진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즉 경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참이라는 정당성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경험들은 새로운 경험들에 의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 새로운 정보로 갱신된다.
5. 인간은 합리적 동물인가?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작가는 이성을 이론적 이성, 실천적 이성,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론적 이성은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침을 세우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사태를 인식하고 인지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 실천적 이성은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즉 우리의 행동을 사태의 인식에 비추어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나 욕망에 비추어 조정하는 것이다. p.79” 이론적 추론(이성)은 다시 선험적 추론과 후험적 추론으로 분류된다. 선험적 추론이란 굳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로, 나는 지금 임신 중이라는 말을 통해 굳이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선험적 추론이 절대적이어서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 타당한 선험적 추론이라고 여겨졌던 견해가 의심스러워지면 지적인 대격변이 일어난다...... 그 결과 우리가 선험적이라고 부르는 진술과 추론은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니라 우리가 쓸데없이 포기하지 않으려 버티는 것으로 전락한다. p 83-84” 후험적 추론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선험적 추론보다 더 확신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실천적 이성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권위 있는 기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명확한 행동 방침(p.87)”을 말한다. 그렇다면 실천적 이성 또한 절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행동의 기준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동 판단기준이 현대의 행동 판단기준에 적합할 리가 없다.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합리적(이성적)동물인가? 결국 우리가 이성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절대적인 확신성과 신뢰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의견을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6.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앞의 질문처럼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다. 거짓말이라는 말뜻 자체가 없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있거나 사실인 척한다는 의미인데 합리적인 인간인 우리가 왜 스스로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즐거움과 거부감은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데 자극이 되지만 이성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의 개연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믿으려 할 뿐이다. p.101” “자기 자신의 결점과 결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약한 자부심이라도 해도 그것을 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p.102-103” 인간은 이성적 보다는 감성적인 동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7.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 곡선을 따라 정확히 수치로 표시가능하고 예측가능한 곳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인간은 그 시장 속에서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기에게 최고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작가는 반박한다. “시장이 자체 힘으로 무난하게 최선의 결과 향하는 능률적이고 법칙에 따라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라는 쓰라린 사실이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시장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지진, 수도관 속의 급류처럼 혼란스럽고 항상 예측불가능하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신념이 매우 다양하며, 남들의 영향에 극히 민감하다.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든 참담하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p.123”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예측가능하지도 않다. 감정적인 욕구에 따라 서로 협력할 수도, 경쟁할 수도, 그리고 연합할 수도 있다. 결국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고 개인의 도덕심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킬 사회(국가)가 필요하다.
8.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다.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어체계를 사용한다. 그 말은 언어가 품고 있는 그 의미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면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의 폭과 너비 그리고 경험에는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라도 개인이 품는 내면적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언어의 기호적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를테면 수학에서 수식을 풀 때 풀이 과정은 개인차가 나지만 도달한 답이 서로 같다면 “답이 같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리는 서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
9. 기계도 사유할 수 있는가?
컴퓨터는 0과1의 수의 배열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다. 사유라는 의미에는 ‘추상화’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는 사고도 있다는 말이다. 숫자의 조합인 컴퓨터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유는 주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누군가에 의해 정보가 입력되고 정보를 요청할 때에만 계산을 통해 요구하는 답을 주는 식이다. 게다가 인간 사회 안에 포함된 문화적 언어적 요소들이 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 결론을 도출하는 컴퓨터는 존재할 수 있어도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것과 같은 로봇의 등장은 어렵다.
10.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인간은 공감, 동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서 일생을 살아간다면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이유도 받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단어자체가 필요 없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말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간의 교류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태초부터 인류가 사회라는 무리 안에서 형성한 DNA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새겨져 있다. 무리에서 형성된 이런 도덕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행동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추방당한다. 인간이 선한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생존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