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땡! 웅진 우리그림책 28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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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이 없어도 그네가 없어도

그저 빈 터만 있으면 족했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놀이도 가능했던 그야말로 아이들의 해방 공간이 그림책 속에 펼쳐져 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이 책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양면을 모두 이용해 그려진 마을 장면이다. 마을의 곳곳, 그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고, 아이들의 해방 공간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보이고, 그리고 구석 골목에 아주 조그맣게 얼음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까지.

얼음하고 있는 아이를 찾아헤매느라 내 손가락하고 눈이 한참 바빴다.

 

어스름한 저녁,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흩어지는 행복한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아 절로 웃음이 나올 때 쯤 작가는 이야기 하나를 펼쳐 놓는다.

한 사람 몫을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거나 약한 친구, 깍두기 이야기이다.

 

밤이 되도록 친구가 와서 땡을 해 주지 않아 겁이 나기 시작한 아이 앞에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 깍두기가 나타나 한참 찾았다며 땡을 해 준다.

 

땀 범벅에 콧물까지 흘리는 깍두기의 미소 한 컷과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의 한 컷이 나란히 담긴 그림을 보면서 찡하다. 움직이지도 않고,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피카소 같은 독창적인 화풍을 자랑하지도 않은 그림에 이렇게나 큰 감동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우리집에는 그림책을 아주 열심히 본다고 말하고 보면 민망한 나이, 열여섯 살인 아들이 둘이나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림책을 아주 열심히 본다.

내가 다른 아이들을 보여 주기 위해 산 그림책을 이 아이들이 더 열심히 보는 때가 많다.

그림책에 머리를 모으고 들여다보다가 나는 말해 주었다. 엄마도 깍두기였어.

친구 사이의 힘의 논리에 아주 민감한 아이가 내게 눈을 흘기며 말한다. "그게 자랑이야!"

그림책을 함께 보면서도 아이는 엄마가 한때 깍두기였다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 깍두기의 피가 자기에게도 흐른다는 게 못내 두렵고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깍두기가 어때서. 그땐 깍두기라고 구박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심 나도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음 땡에서 깍두기는 함께 놀았던 아이 하나가 어디선가 얼음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는 멋진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나도 한때 깍두기였다는 걸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들은 면박이다.

 

그러던 아이가 오늘 다시 내게 얼음 땡을 들고 와 보여 준다." 몰랐는데 깍두기, 이 아이가 아빠다." 아이가 보여 주는 깍두기의 코 밑에 콩알만한 점과 맨 뒷장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 아빠의 코 밑에 콩알만한 점. 아이는 이 점을 찾아내기까지 그림책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그림책 작가가 그림 속에 숨겨놓은 이야기를 늘 나보다 더 잘 찾아냈었다.

오랜만에 열여섯살짜리 아이가 찾아온 이야기가 반갑고 또 반갑다.

이제 아이도 자기 몸에 흐르는 깍두기의 피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다.

깍두기와 아이 아빠의 코 밑 점이 강풀 아저씨의 코 밑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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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로버트 먼치 글, 안토니 루이스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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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6학년이 된 아이들이 여섯 살 때 읽어 주었던 책이다.  

아들 쌍둥이를 낳고부터 내 생활엔 육아밖에는 다른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아이들 기저귀 갈고, 먹이고, 입히고,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것 치우고, 우는 아기 달래고, 아이들의 수십가지 요구를 해결하고, 쉬 시키고, 응가 시키고...... 

내가 화장실에라도 들어갈라치면 두 녀석이 화장실 문 앞에서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를 찾고 울던 시절을 지나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서 조금 여유가 생기고, 그림책 읽기가 작은 낙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책을 참 좋아했다. 책 한 권을 백 번도 읽고, 이백 번도 읽어야 했다. 그럴 무렵 읽어 주었던 책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읽다가 목이 메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화장실에 앉아 두루마리 휴지를 풀고 있는 아이가 내 아이의 예전 모습이었고, 엄마 몰래 온갖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내 아이의 지금 모습이고, 동물원에나 보내 버리고 싶을 어처구니 없는 아이의 모습이 내 아이의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다가도 잠이 든 아이들에게 무릎 걸음으로 가만히 다가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일까, 감탄하면서 쓸어보고, 뺨을 대보는 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늘 버겁기만 한 아이 키우기가 나만의 어려움이 아니고,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모습이 내 아이의 모습만은 아니라고, 모든 엄마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내게 말해 준 책, 그래서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그리고 그 아들 아이가 자라서 늙은 엄마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준다. 언제까지나 사랑한다고.  자기 딸아이에게도 불러 준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고. 

노래를 따라 사랑은 그렇게 흘러간다. 내가 없어져도 내 사랑은 없어지지 않고 흘러간다. 흘러가는 사랑이 경이로워서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 내가 이 책을 읽어 주었던 어느 날 우리 아이가 나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가 이렇게 늙으면 어떡하느냐고. 그랬던 아이가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이상한 친구를 데려오고,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사춘기 나이가 되었다.  

오늘 아이는 화를 내는 엄마를 보며 얼굴이 퉁퉁 부어 학교에 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게는 영원히 이어질 노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가 있고, 그 노래를 따라 나의 사랑은, 내 엄마가 주었던 나의 사랑은 내 아이에게 흘러갈 거라고.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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