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한국 특유의 ‘모멸 문화‘도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너의 자존감이 낮아져야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믿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터럭 한 올만큼이라도 내 지위가 더 높은것 같다면 그걸 꼭 확인해야 한다. 모멸감을 주는 언어도 아주잘 발달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된장녀, 맘충, 한남, 지잡대, 틀딱, 기레기, 검새, 견찰·그러고 보니 ‘예의‘와 ‘무례함‘도 요즘 신간 에세이의 주요 키워드다. - P35
사실 무력감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면 고전적인 영웅서사다. 가진 게 없었고, 시련을 겪었으나, 결말은 창대한 미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소재로 다른 이야기가나온다. 그러므로 희망이, 목표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과거가 보잘것없고 현재가 힘들수록 더 대단해진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비극적 영웅이 되지, 무력한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 P36
나는 양심이라는 한국어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양심을 지니고 산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소신 있게 산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뜻 같다. 내게 양심은 개개인의 윤리적 신념 체계보다는 오히려 그런 견해에 곧잘 이의를 제기하는 ‘내 안의 인류 공동체‘ 쪽에 가깝다. 그런 존재가 당신 안에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신과 나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 P40
초연결 시대인 오늘날에는 초외향적인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그런 처지로 몰리는 듯하다. 사생활 공개와 실시간 응답이 점점 더 우리 시대의 성공 비결이 되어가고 있다. - P44
*일명 240번 버스사건. 2017년 9월 11일, 서울 240번 버스 기사가 아이 혼자만 먼저 내린 것을 확인하고 뒷문을 열어달라는 아이 엄마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벌어진 논란으로, 버스 기사는 수많은 악플을 받았지만 이후 버스 기사에게 잘못이 없었다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편집자 주) - P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