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견 치로리 - 쓰레기장에 버려진 잡종개가 치료견이 되어 기적을 일으키다, 개정판
오키 토오루 지음, 김원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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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로 시력도 청각도 장애를 가진 원숭이를 맡아 기르면서 그 작은 생명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삶의 눈물과 기쁨 등을 경험을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은 후 이 책 치로리를 만나니 일본인들의 동물에 대한 의식과 동반자적 삶은 국내보다 몇 단계나 앞 서 있음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일본인 오키 토오루이며 아무 연고도 없이 길에 버려 진 개를 데려다가 기르면서 오히려 자신이 개를 통해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이고로야 고마워>를 읽으며 그 앙상하고 조그만 원숭이를 그렇게 온 힘을 다 해 기르고 치료방법이 없어 눈물과 절망을 하는 그 일본인 가족들의 생활을 사진과 글로 만났을 때만 해도 일본인들의 동물사랑이 '유난스럽다'라고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걷거나 뛰지도 못하는 다이고로가 점점 쇠약해져가면서 마침내 물도 넘기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쉬었을 때 그 생명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족'이었는지를 비에 몸이 젖듯 그렇게 촉촉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한 그 시간이 다시 올 수 없는 아름답고 감사한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전문 작가가 아닌, 평범한 일본일들의 삶 속에 들어 있는 동물과 함께 한 삶에 대해 높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의 의식에 조금은 아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책 곳곳에 '잡종견'이란 용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호주나 캐나다 등에 사는 사람들은 한 마리의 개를 이름을 붙여서 부를 뿐, 특별히 이 개는 슈나우저이고 저 개는 비글이다 등의 식으로 개를 종별로 나누어 부르지 않고 그렇게 차별하지도 않건만 유독 아시아권에서는 이렇게 개를 볼 때에도 가문을 의식하니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책을 통해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종의 구분을 애타게 부르짖는 몹쓸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끼를 4마리나 낳은 어미로서 그것도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절면서 길에 돌아다니는 치로리는 일본인들이 보기엔 어서 빨리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로 보였던 것 같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건강하지 못한 개를 보는 흔한 인식이다. 그럼에도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너무나 딱한 처지에 놓인 치로리네 가족에게 마음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안락사를 당할 처지에 당면한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하면서 더 읽고 싶지가 않았다. 누가 생명을 함부로 그리도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세상에 태어나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채 약물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한다는 규정을 만든 인간의 잔인성에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로리가 저자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정말 흐믓함 이상이었다. 괜시리 뿌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명을 아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직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치로리를 단순히 애완견이나 반려견으로 평생 끼고 살 작정이 아니라 무엇인가 인간을 위해, 병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견으로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저작의 성실함과 목표의식에 무척 고무되었다. 장애견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너무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항상 찌푸린 환자들,반기지도 않는 신경질적인 노인들한테나 데리고 다닐 작정이라는 것에 쉽게 찬성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병약하고 삶의 고통에 찌든 노인환자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니 동물이지만 무척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맑고 선한 눈빛을 본 환자들이 잠깐이나마 자신의 고통을 잊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 돈이 아무리 많고 주변에 미사여구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면회객이 많아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환자가 치로리의 순진무구한 행동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기쁨과 함께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치로리를 만난 환자 가운데 단순히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몸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꼼짝할 수 없는 끔찍한 전신마비의 헤이코의 손이 움직였을 때엔 눈물이 맺혔다. 정말 기적이란 것이 있고 그 기적이 의사나 가족이 아닌, 이 작은(비록 덩치는 좀 있긴 하지만)개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였다. 도대체 일본의 앞 선 의술로도 고칠 수 없었던 이 마비를 치로리는 어떻게 풀었을까? 할머니의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막혔던 신경이 제 기능을 되찾은 것일까? 의학적으로도 그 이유를 제대로 풀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허세가와씨가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놀라웠다. 무지막지하게 노력을 해 보아도 전혀 다리에 힘을 실을 수가 없었던 허세가와씨가 치로리를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다니...사람의 몸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약물과 수술로도 먹히지 않고 아무 처치도 하지 않았건만 자신을 향해 꼬리를 치며 다가와 살을 비벼대는 이 작은 동물 앞에서 그 차가운 마음이 녹아지다니... 정말 놀랍고 또 놀라웠다.

 

충견 하치이야기에서 주인이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모르는 하치가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는 이야기가 마온다. 동네 아이들이 장난삼아 주인 없는 개라며 주먹만한 돌멩이로 치고 막대기로 때려도 잠시 피했다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해가 저물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에 오히려 역 주변의 장사꾼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개를 짐승으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자신이 파는 어묵이나 소시지, 풀빵 등을 먹이며 하치와 친구가 되어 갔다. 손님들이 더러운 개라며 무조건 발길질부터 해 댈라치면 주인들이 맞서서 사람과 맺은 한 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하치의 편을 드는 기이한 일도 생겼다. 아파도 자신의 주인을 혹여 만날까봐 매일 허탕을 치면서도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던 하치는 평범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꿨다.지금 일본에는  아이들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로 다리를 절게 되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은 하치를 기념해서 그의 동상이 있다. 

 

치로리는 끝이 더 희망적이고 따스해서 마음이 즐거웠다. 인간에게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세상이 조화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치로리를 만난 행운의 사람들, 그리고 불편한 몸으로 병실이나 요양원의 환자들을 의사가 회진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방문하는 순박하며 귀여운 치로리를 보며 단순히 개인의 특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면역기능에 사랑이란 약이, 관심이란 약이 얼마나 대단히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알게 되었다. 암에 걸린 사람들과 자폐증을 갖고 있는 아이들, 특히 정신질환이 많고 우울증이 많은 이 한국 사회에 정신과의사와 심리상담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이 치로리와 같은 동물들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 목에다 전자칩이나 박아 넣을 생각 대신에 이렇게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개를 무조건 혐오하기보다는 그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생명에너지를 함께 나누어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일들을 실제 추진했고 그 과정과 결과들을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높은 의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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