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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 코믹스 세트 - 전3권 ㅣ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 코믹스
애니메이션 제작 : 명필름 오돌또기, 사계절출판사 편집부 엮음, 원작동화 황선미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그 감성에 익숙해진 상태로 어른이 된 세대가 보기에 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그림들은 다소 어설프고 순진무구하며 색감에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로 잰 듯한 빈틈 없는 구성과 딱 떨어지는 균형미를 중요시 여기는 옆 나라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을 아무런 비판이 없이, 대안도 없는 채 수 십년 동안 보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슴에 와락하며 안겨버리는 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초록이는 커다란 머리와 높아도 너무 높은 채도를 온 몸에 바른 채 내 옆을 알짱알짱 댄 지 채 몇 분도 안 되어서였다. 단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음에도 녀석이 사랑스러웠다. 물론 2011년 그 뜨거웠던 여름에 만났던 기억이 인연이 되긴 했지만 책으로 나와도 반기게 된 것은 역시 탁월하게 따스한 '감성'때문이다.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와 비슷한 스토리였더라면 식상했을 텐데 오히려 니모를 찾아서의 천방지축 니모에 가까운 녀석의 세상 나들이를 뒤좇아 가면서 느끼고 보는 동안 어느새 그렇게도 겁나고 피하고 싶은 세상 일들이, 사람들이 작게 보이고 만만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운오리새끼를 연상하지 않고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현재의 가족구성원의 모습 때문이다. 우리 옆 집에도 아빠와 딸들의 성이 다른 채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모습은 이제는 tv 화면 속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거리에서도 간간히 마주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던 이 한반도의 가족구성원의 모습이 변한 것이다. 그래서 잎싹이와 초록이처럼 엄마와 아들의 외모가 서로 이질적인 모습인 채로도 정답게 살아가는 가정이 있기에 이 책 속에 담긴 서럽지만 그래도 따스한 모정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아들은 성장해서 제 날개를 펼 때가 되면 나이 들어 허리가 굽어지고 뼈가 약해질대로 약해져서 추운 날씨엔 걷기조차 힘든 늙은 엄마를 부담스러워한다. 물론 딸도 비슷하긴 하지만 아들이 더 그런 특징을 강하게 보이는 것 같다. 제가 살 세상을 꿈 꾸며 더 넓은 세상으로 비행할 준비로 바쁜 아들에게 엄마는 너무나 초라하고 귀찮은 존재로 비춰진다. 그런 우리의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만화로 닭과 청둥오리 사이의 갈등으로 너무나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었다.
초록이가 미래의 나라, 환상의 나라로 떠나는 모험이 주 된 스토리였다면 유쾌하게 실컷 웃고 마는 그런 만화가 되었겠지만 이 책은 무게감이 실로 대단한, 뚜렷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스토리가 밑바탕이 되고 있어 단 한 번에 보고 덮을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삶이 힘들어지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려운 상황에서 다시 꺼 내 손에 잡을 그런 책이다.
형식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고 즐겁게 대할 수 있도록 만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어마어마하다는 점, 그래서 이 책이 어린이때 읽는 것과 어른이 되어 읽을 때에는 아마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점 등은 매우 큰 장점이다. 삶에서 순간순간 닥쳐오는 위기의 상황에서 초록이처럼 놀라서 도망만 쳐 댈 수도 있고 아니면 잎싹이처럼 아프지만 큰 결단을 내릴 때도 있기에 어느 입장에서 읽든 다양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아들을 놓아주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엄마들, 그리고 넓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갈 준비에만 골몰하느라 외로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아들들에게 권한다. 단순히 한국적 상황을 담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부모들이 함께 웃으며 눈물을 닦으며 공감할 수 있는 진리가 담겨 있어 부모와 혹은 자식과의 갈등을 겪는, 탯줄을 끊지 못해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을 송곳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삼킬 듯한 위험한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자신도 젊었을 때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