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으로 서다 푸른도서관 14
임정진 지음 / 푸른책들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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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 쏘는 코카콜라의 병 뚜껑을 처음 열었을 때처럼 상쾌하고 감각적인 맛이 묻어나는 문체를 오래만에 만난 것 같다. 고등학생때 수학선생님 댁에 놀러갔다가 선생님의 무지하게 큰 책장에 꽂혀있던 '젊은 느티나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 누르스름한 종이 질에 세로로 인쇄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빌려달라고 마구 떼를 써서 어거지로 얻어 온 그 책을 대했을 때의 그 기분이다. 선생님의 걱정대로 그 책은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다.

강신재작가의 젊은 느티나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당시의 윤리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재혼가정의 자녀들 사이의 사랑을 그린 그 책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 문체의 맛을 아는 이라면 이 발끝으로 서다를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 확신한다.

발끝으로 서다 역시 다루기엔 좀 뭐랄까 세상의 편견이 만만치 않은 주제- 조기유학을 떠난 발레 소녀의 조용한 귀국-를 이렇게 재미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그 결말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어떻게 좀 더 진행이될것 같은 여운과 상상을 충분히 남겨주고 있기에 무엇보다 큰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는 소제목 하나하나만 훑어보아도 한 입 크기의 크래커처럼 짭짤하면서 담백하다. 지루한 설명이 없다. 심플하면서도 명확한 문장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단 번에 묻어나는 대화들을 읽고 있노라면 만화책을 붙잡은 마냥 끝장을 볼 때까지 밥 먹는 것도 잊고 푹 빠져버렸다.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주인공인 강재인이 나와 동갑인데 4살 때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쿠웨이트, 영국에 이르기까지 어린나이에 경험한 많은 해외문화체험들이다. 그 시절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외국에 대한 정보는 고작 tv미국드라마와 스필버그의 어린이영화따위로 채울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동시대를 살아온 삶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를 쓰라리게 느끼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가 보지 못한 영국의엘름 허스트 발레학교에 대한 수업풍경, 시시콜콜한 기숙사생활,티타임에 이르기까지의 생생한 이야기, 동양인 재인이가 제인 강으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유학 온 아이들과 가슴을 열고 친자매 이상으로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친구를 잊고 살아온 우리 어른들뿐만 아니라 영어캠프와 시험등수에만 열을 올리며 살아 온 안쓰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넓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공상이나 있지도 않은 허구를 얼키설키 엮어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영국으로 발레유학을 떠나 그 곳에서 생활해 온 한 소녀의 일기에 작가가 생명력 불어 넣어 탄생시킨 작품이라 그 현장감과 진솔함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진하게 묻어난다.

이 책은 재능을 펼치기 위해 머나먼 영국까지 간 발레소녀를 통해 청소년시절 우리들은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사랑하며 사는 가? 에 대한 물음과 함께 그 꿈을 펼치기 위해 함께 경쟁하는 이들이 내가 최고가 되기 위해 없애버려야 할 벌레로 보이지 않고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합창을 하며 서로의 밝은 앞날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는 삶의 든든한 동반자로 새롭게 눈 뜨게 해 주는 책이다.

같은 꿈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이이지만

문화가 다르고 생긴 모양새가 다르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잡아 일으켜주며

기대어 울도록 기꺼이 튀튀(Tutu:발레할때 입는 주름이 많이 잡힌 무용복)바람으로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살아있고 따뜻한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 끝에 힘을 모으려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우리 어른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꼭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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