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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째 여친이라도 괜찮아 1 - Novel Engine
니시 죠요 지음, Re타케 그림, 한호성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23년 7월
평점 : 
들어가며
최근 라이트노벨 럽코(러브 코미디) 장르에서 ‘계약’, ‘결혼(그와 비슷한 관계) 후 연애 시작’이라는 소재는 꽤나 익숙하고 흔해졌습니다.
오랜만 리뷰하게 되는 작품 <나는 두 번째 여친이라도 괜찮아>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했지만, 묘하게 특징적인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리뷰를 보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연인이 아니었던 두 사람이
작품의 핵심 소재는 ‘계약 연애’, ‘비밀 연애’입니다.
라노벨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로맨스 판타지의 영향을 받아 ‘계약’이라는 키워드 쪽에서 강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봤던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처럼 정통적인 히로인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 연인이라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유사 연애를 하고 있다 말해도 좋을 상황을 만들어,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확신하고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 연인으로 골인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더해, 서로의 연애를 도와주다 보니 유사 연애를 하고 있었다 라는 형태로 여러 히로인 타입을 집어넣어 나온 작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대표적으로 <토라도라>, <널 오타쿠로 만들어줄 테니까, 날 리얼충으로 만들어줘!> 등이 있을 겁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연인이 아니었지만, 연인 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두 사람의 관계를 점점 연인으로 나아가게 하는 형태의 작품이 초기에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이 형태를 ‘계약’이라는 아예 조건을 잡아 진짜는 아니지만 가짜라 하더라도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연인 관계에서 출발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정발이 되어 나온 <반에서 가장 싫어하는 여자애와 결혼하게 되었다>, <전 여친과의 아슬아슬한 위장결혼> 등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유와 사정은 다양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연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고(대게는 연애에 대한 귀찮음에서 벗어나거나, 집안에서 조건을 달아 정략 관계를 만들었다는 설정이 많습니다.), 싫거나 무관심하게 이걸 유지하다 보니 그럴싸한 연인이 되어 가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나름의 철학이자 주제 의식은 ‘가짜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순수한 연애’입니다.
처음 <나는 두 번째 여친이라도 괜찮아>을 봤을 때도 그런 류로 생각하고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시작은 예상과 거의 비슷했고, 이후 전개도 그런 듯 보였습니다.
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비밀 연애
앞서 말했다시피 이 작품도 ‘계약 연애’, ‘비밀 연애’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그 사용처가 엄연히 다릅니다.
네타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주인공 키리시마와 여주인공인 하야사카는 연인, 그것도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비밀 연인입니다.
그런에 여기서 비밀로 하는 이유가 좀 이상한데,
그건 서로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상대가 아닌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크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리뷰를 적고 있는 저도 여기서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무튼, 서로가 1번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서로는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
흔히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안전빵 관계라고 이해하면 좀 좋을 겁니다. 서로가 짝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못하니 두 사람이 그 대리만족으로 서로가 비밀 연애를 하면서 만족감을 채우고 있다,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연애는 응원하자,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해 부족한 사랑 만족도를 채우자 이런 식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오타쿠 맛에 딱 맞는 책임 없는 쾌락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 번째’가 참으로 골때리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두 번째?
참 묘한 것들이 내포된 두 번째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두 번째, 즉 첫 번째 다음이라 생각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 될수록 이건 그냥 말 그대로 핑계입니다.
이 두 사람은 첫 번째 사람과 연인이 된다는 거에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실패할 걸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연애를 돕는 것도 그저 이 비밀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합니다.
수위 쪽에서도 좀 센 작품이라 둘의 꽁냥꽁냥한 장면이 참으로 농밀합니다.
보다 보면, 연습을 한다는 것치고는 너무 선을 많이 넘습니다. 그냥 둘이 사귀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근데 여기서 ‘계약’이라는 부분이 걸림돌이 됩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은 첫 번째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지, 아니면 핑계라고 해야 할지 그게 꼭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남주인공은 이 점에서는 꽤나 설정이나 의식적으로 책임감이 강한 인간입니다.
문제는 그게 본인을 찐따 형태의 쓰레기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두 사람이 연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있어야 하고, 심지어 그걸 이루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 시점부터 이미 앞서 말한 부분은 의미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실패할 걸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어디까지나 요식 행위에 불과하니 말이죠.
물론 이후, 남주인공의 첫 번째인 타치바나가 이상 행동을 보이고, 4각 관계로 커지고, 거기에 남주인공의 과거 행적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점점 정신 나갈 것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적어도 이 두 사람이 절대 첫 번째와 연결되기 힘들다는 걸 점점 더 확실하게 만들어주고 있죠.
근데 참 재미있는 것은.
결국 타치바나와 하야사카는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고, 두 사람이 다 노리고 있는 것은 주인공의 연인이 아닌 ‘두 번째’ 연인이라는 점입니다.
하, 이게 그냥 단순히 볼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이 그렇게 만든 거지만, 이게 남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책임 없는 쾌락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좀 노골적인 말로 풀자면 다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몸은 나랑 섞자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주인공의 여러 히로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걸 되게 비틀어 표현하고 있죠.
알고 보면 원점으로 돌아온 거였다
그럼 왜 굳이 이렇게 비틀어서 표현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야말로 라노벨의 원점 ‘하렘’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 중반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질투하여 주인공을 두고 여러 대결을 벌이는 건 하렘물에서 흔히 보이는 히로인 간의 주인공이 난감하게(근데 알고 보면 참 주인공은 기분 좋음) 되는 부분이 있고, 이후에도 서로가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주인공을 자신 쪽으로 당기는 모습들이 여럿 연출됩니다.
이걸 볼 때, 작가의 의도든 기획 의도든 주인공이 하렘을 구성하기 위해 요즘 잘 나오고 있는 트렌드를 잘 섞어 구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라노벨이었다면 그저 특별한 만남이라는 형태로 여러 히로인을 소개하는 것으로 형식적으로 만들 부분을, 작가 나름의 개성과 요즘 트렌드, 그리고 그걸 사건으로 잘 엮어 전개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참 좋긴 하지만, 불안이 좀 있기는 합니다.
결국 이런 류의 작품이 계속 진행되려면 하렘을 형성하는 히로인이 계속해서 등장해야 합니다.
근데 지금 관계도만 해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추가 히로인을 투입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먼저듭니다.
잘못하면 기존 히로인이 묻혀 버릴 수도 있고, 만약 새로운 히로인을 추가하지 않게 되면다면 소재 고갈로 조기 완결을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재 1권만 봤을 때는 아직 밝혀야 할 사정도 많고, 인물들의 속마음이 다 드러난 것도 아니라 기대가 되긴 합니다.
물론 그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머리가 아팠습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이 전개도 그렇고, 주인공의 태도 또한 묘하게 거슬렸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라노벨 주인공들은 조금 찐따긴 해도 순수하고 나름 열정적이었는데, 이 주인공은 꽤나 찐을 가장한 소극적 기회주의자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상황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모습을 주인공은 보여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있었네요.
마무리
최근 본 작품에서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럽코는 나름의 구성과 빌드가 있어서 거기서 크게 벗어나기 힘든 장르가 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꼭 단점만은 아닙니다.
그 맛이 좋기에 꾸준히 계속해서 찾아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 기존의 단순하게 늘어놓았던 소재들을 사건에 녹여 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막장 드라마에서 보이는 참 노골적이고 납득하기 어렵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현실적이었습니다. 뭐, 그 의식의 시작점은 비현실적이지만.
아무튼 최근 너무 뻔한 작품을 보는 데 지친 럽코 독자라 하신다면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1권을 읽어보는 데 후회는 안 하…… 아니, 뭔가 신선한 방향성이라는 부분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까지 <나는 두 번째 여친이라도 괜찮아> 리뷰였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작품 리뷰로 또 찾아뵈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