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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50 - 은근한 불로 노릇하게 부쳐 먹는 한국의 슬로푸드
손성희 지음 / 시드페이퍼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그 시간 주제는 '자신이 잘 하는 음식'이었다. 내가 '전'을 잘 부친다고 하자, 교포였던 선생님은 냉큼 "전이 무슨 요리냐?"고 하셨다. 물론 영어로. 그 시간은 영어 회화 시간이었으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이 선생님은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무침 하나도 맛있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하물며 전은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어릴 적부터 제사와 명절 상에 오를 전은 내 담당이었다. 녹두 빈대떡(그것도 꼭 2가지 종류로 부쳤다)부터 시작해 연근전, 고구마전, 호박전, 동그랑땡, 생선전, 우엉전, 배추전 등등등. 그뿐인가. 평소 밥상에 자주 오르는 부추전, 김치전, 파전, 장떡, 감자전, 굴전까지. 한 번도 전을 부쳐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덧붙이는데 전도 맛있게 부치려면 쉽지 않다. 재료를 적당하게 잘 다듬어야 하고(길이, 두께, 모양 등), 반죽의 농도도 잘 조절해야 한다. 반죽과 속재료의 비율도 잘 맞아야 하며, 반죽을 무엇으로 하는지(즉, 밀가루로 하는지 찹쌀가루, 감자전분, 부침가루를 섞는지, 통밀가루인지, 흰밀가루인지, 우리밀인지, 수입밀인지, 부침가로로만 하는지)에 따라 완성 후의 식감도 달라진다. 기름의 양과 불의 조절, 모양잡기까지 하나도 방심할 수가 없다. 게다가 어디에 부쳐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이렇게 손 많이 가고, 역시 최소 10년의 내공이 필요한 전을 '전'이라고 무시하면 전이 서운해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 손성희는 전이 쉽지 않은 음식임을 알았나 보다. 보통날의 밥상과 특별한 날에 올릴 전 50가지만으로 꾸며진 책을 낸 걸 보면 말이다. 목차를 주루룩 훑어보니 흔히 먹는 전들 외에도 육포전, 곶감전, 메밀묵전, 주꾸미탕탕전, 전복전처럼 요리책 좀 본 나로서도 눈에 선 메뉴들이 가득하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머릿속으로 아무리 맛을 그려봐도 어떤 맛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역시 난 장금이가 아닌 게다.

 

 맘 잡고 전 부치는 설, 추석, 제사날에는 기름 냄새에 질려 정작 만드는 사람은 완성한 전에 손도 대지 않는 법. 맘 잡고 만들지 않아도 되는 무심한 날을 잡아, 요 책에 실린 별미전을 부쳐보고 싶다. 가족들에게 시식평도 듣고 요렇게 조렇게 보완하면 어느 순간 나의 18번이 되겠지. 뭘로 할까? 우선은 매생이전이 확 댕긴다. 당장 매생이부터 사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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