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보리스 디오도로프 그림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톨스토이를 접해보지 않고 자란 이가 없을 것이다. 어릴 적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전집의 <러시아 동화집>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바보 이반'을 읽은 것이 내게는 이 문호와의 첫 만남이다. 그때 이들 동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처럼 논술이 활발한 시절이 아니라 책을 읽고 누군가와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고, 그저 좀 독특한 재미가 있다는 느낌만 가졌다.

  그의 책을 다시 접한 것은 청소년 시절 읽게 된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에서였다. 그때도 내게 이 책들은 ‘어둡다’는 느낌만으로 모호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안나와 카추샤는 왜 그렇게 꼬인 인생을 살아가야 했을까 싶었고, 안나의 비극적 선택이나 카추샤의 인생은 굽이굽이 비현실적이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다 자란 어느 날 내게 톨스토이의 작품은 한꺼번에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몰려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하고 깊이 고민하던 날에 그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대단한 무게로 다가왔고,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노동이란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날에 ‘바보 이반’은 얼마간 명쾌한 해답을 주기도 했다. 이어 나는 안나가 되어보기도 하고, 카추샤가 되어 보기도 하며 삶의 진실이란 것에 다가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던 얼마 전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이란 책을 우연히 얻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의 고뇌에 조금은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그가 백작의 아들에서, 혈기 넘치는 청년 장교에서, 한 가정의 가장에서, 세계적 문호로서, 농민운동의 핵심인물로서 살아가며 겪은 고뇌. 깨어 있는 양심과 행동가로서의 톨스토이는 자신이 생득적으로 얻은 것들, 문호로서 얻게 된 것들을 모두 버리고자 했으나 한 남편, 아버지로서의 톨스토이에게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심지어 톨스토이를 이중인격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으나, 그 역시 남자로서의 톨스토이를 겪어온 그 아내에게는 진실이었으리라 싶은 공감이 있었다.

  어쨌든 톨스토이의 단편은 운동가로서의 그의 실천적 행위의 일환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형규 역자에 따르면 많은 이야기들이 민화에서 모티프를 가져다 재편한 것이고, 많이 배우지 못한 대중 누구나 읽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고려가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다 한다. 톨스토이 스스로 자신의 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참다운 예술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적 감정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흥미를 주어야 하고, 또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형식이 단순하고 간명하고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고.

  요컨대, 하느님 말씀대로 살라. 그러기 위해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내어줌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노동의 신성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라. 이런 메시지를 자못 노골적으로 풀어낸 것이 그의 단편들이다. 문학의 순수성을 선호하는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에게 문학의 순수성이란 오로지 현실의 실천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야 했던 듯하다. 지역, 학교, 공동노동생활체, 잡지의 이름이었던 ‘야스나야 폴랴나’는 그의 실천의지의 표상이었다.

  실제로 여러 단편을 통해 보이는 톨스토이는 사유재산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고, 공동 노동과 나눔이 더 이상적이라 여겼던 것 같다. 신분제를 비판하고, 어쭙잖은 지식과 지식인의 행태를 비판하며, 심지어 교회나 성경이라고 하는 전범이 지닌 오류를 정면에서 공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 시대에!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의 모습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시공동체 사회의 그것과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간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며, 심지어 와일드나 보들레르 등의 유미주의에 꽤 오래 열광해온 내 문학성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문학을 위한 문학이든, 실천적 삶을 위한 문학이든 완결성과 아름다움, 교훈과 감동이 잘 어울려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다. 그 모든 걸 완벽하게 지어내는 톨스토이라는 작가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불꽃처럼 삶과 사상과 문학의 혼연일체를 이루려 분투한 톨스토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자, 그러니 이런 그의 사상을 치밀하게 풀어낸 작품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청소년이 읽기 좋게 한다는 이유로 그저 줄거리만 전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 또한 당연하다 싶다. 이번에 푸른숲에서 새로 나온 <톨스토이 단편선> 서문에는 그런 식의 편의에 따른 번역이 지닐 수 있는 오류를 경계하며 다시 만들어낸 책이라고 씌어 있어 관심 있게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극히 일부분의 톨스토이 단편, 동화라고 이름붙일 만한 정도의 강도를 지닌 책들 외에 이 책들에는 좀 더 센, 훨씬 많은 단편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2편으로 가면 신분이나, 재산, 갖가지 형태의 사랑, 죽음, 세월, 부부간의 배신 등등에 대한 더 노골적이고 풍자적이며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과연 문장이 비교적 짧고 평이한 단어로 구성되어 꼬임 없이 스르르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당대 러시아의 말투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럿 보인다. 주전자라고 하지 않고 사모바르라고 쓴 뒤 조그만 적갈색 글씨로 러시아 전래의 주전자라고 표기한다거나, 마부라고 하지 않고 어자(馭者)라고 쓴 뒤 말을 부리는 사람으로 설명해 놓은 것과 같은 부분이 많다. 귀얄이라든가 우듬지 같은 우리말을 쓴다거나, ‘땅은 귀로 차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그대로 쓴 뒤 ‘낮말은 새가 듣고~’와 비슷한 뜻의 러시아 속담이라고 해설해 놓은 부분 등 세밀한 신경을 쓴 점이 돋보인다. 물론 간종거리면서 등의 우리말이 오히려 낯설어 읽는 속도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찾아보며 읽는 것 또한 맛이려니 싶다.

  이 책은 러시아의 인민화가라는 칭호를 받는 보리스 디오도로프가 그림을 그려 더욱 원전의 향기에 가깝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덕분에 바보 이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악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근접한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책이 180도에 가깝게 활짝 펼쳐지면서 단단히 묶어진 점이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판형, 조금은 두툼하다 싶은 두께, 튼실한 느낌을 주는 내지 종이까지 플러스를 줄 요인이 꽤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도 2편 말미의,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역자의 해설, 개개 단편에 대한 전거, 상당히 자세한 연보가 매우 매력적이다.

  솔직히 깨 쏟아질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고, 밤을 꼴딱 새워 가며 읽게 되는 흡인력이 있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톨스토이는 필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 더 늦기 전에 톨스토이 단편을 이나마 섭렵할 수 있었던 기회가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