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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흑역사 - 아름다움을 향한 뒤틀린 욕망
앨리슨 매슈스 데이비드 지음, 이상미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4월
평점 :
멋을 위해 화려한 길을 걸어왔던 패션의 숨겨진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초록색을 내기 위해 비소를 사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 툭하면 불이 붙은 크리놀린, 수은이 든 모자, 길거리에 가득한 세균을 옮기는 치렁치렁한 옷, 한 번 불이 붙으면 엄청난 고온으로 타버리는 플라스틱 빗 등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보호의 목적보다 멋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의상들이 결국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빈번했던 시대의 현실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위한 뒤틀린 욕망'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던 셈이다.
책은 7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으로 집에 세균을 끌고 들어오는 병든 옷, 수은이 든 모자를 생산하는 유독성 기술, 비소로 낸 녹색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혔던 독이 든 염료, 보다 나은 색을 찾기 위해 화학적인 염색을 해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염색, 늘어뜨린 스카프가 기계나 자동차에 딸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던 일, 불이 잘 붙는 소재의 옷을 입고 일을 하다가 불똥이 튀면 순식간에 사망에 이르렀던 크리놀린과 무용수가 입었던 튀튀, 마찬가지로 화염에 취약한 플라스틱 빗과 인조 실크. 책을 보면서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입고 죽을때까지 입는 옷에 이렇게 많은 위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히 초록색을 내기 위해 비소가 사용된 것 외에도 다음으로 유행했던 보라색 염료에도 비소가 들어갔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자본주의 앞에 기업들은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에 눈을 돌렸다. 노동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무시했고, 이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움직이다가 규제가 생기면 규제가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는 부분에선 진절머리가 났다. 그렇게 유독물질로 생산한 것들을 본인은 착용할 수 있었을까. 책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각종 후유증들을 앓고 있는 노동자, 실제로 착용했던 폭이 심각하게 좁은 치마, 권력층들이 꿈꾸던 패션을 보며 노동자와 권력층 사이의 격차를 더 실감나게 볼 수 있어 더 그런생각이 들었다. 분명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이렇게까지 패션을 위해 이상한 짓을 해야할까 혹은 저걸 진심으로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독한 화학적 처리를 해서 박제한 새를 모자에 붙이고, 보폭이 너무 좁아 열차에도 올라탈 수 없고 달릴 수도 없어서 마차에 치여죽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방화원단 대신 불이 잘 붙는 드레스를 고집하는 모습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단 과거의 일 뿐만이 아니라는 점 또한 놀랍긴 마찬가지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장에서 현대의 옷에 관해 말한다. 향균성 은이 함유된 소재, 즉 나노실버 입자는 피부를 통해 몸으로 침투할 수 있으며 이는 생태계에 은 함량을 높여 특히 수중 생태계에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이외에 '말라카이트 그린'이라고 불리는 염료가 몸에 들어오면 더 유독한 성분으로 바뀔 수 있다는데 이런 색상이 직물과 벽지에 사용되는 건 온전히 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이런 류의 문제가 분명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유독성이 밝혀진 수많은 물질들처럼,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물건들이 생활 깊숙히 관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때문에 비단 패션사업만 흑역사가 있을까 묻게되는 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