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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재림
나하이 지음, 강지톨 그림 / 좋은땅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청춘에 접했던 어린왕자와 나이가 들어가며 다시 읽는 어린왕자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또 어떤 거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친구라는 이름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우리들은 왜 그를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걸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와 동심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해 맑은 동심의 세계를 지니고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속물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나모 모르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어른으로 변해가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런 우리의 현실을 부정하고 한때는 아이였음을 잊지 않고 싶은 바램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왕자를 가슴에 품고 있는지도...
<어린왕자의 재림>은 뱀에게 물려 죽음을 맞이한 어린왕자가 부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림, 은혜, 부활, 우상숭배 등의 단어 선택을 보며 저자의 종교적 가치관이 일정 부분 담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되었든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고 반가웠다
어린왕자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독자라면 자신만의 상상과 바램으로 만들어진 어린왕자가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나의 어린왕자를 깨워 다시 만나는 시간!
내 마음속 별에서 날아온 그와 눈빛을 나누며 조우하던 순간이었다
자신이 살던 별 B612에 두고 온 장미를 책임지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어린왕자!
사랑하지만 정작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인가 보다
사랑을 잃었을 때 더욱 간절해지고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절실해지는 것!
비를 맞으며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 그는 자신의 별로 향하지만 그가 목격하게 된 것은 폐허가 된 B612의 모습이었다
장미는 시들어 죽어가고 있었고 바오밥나무는 너무 많이 자라 별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장미와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상에 순응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 장미와 함께 하면서 행복을 만끽했을거다
그러다 누군가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추억을 서로 공유하며 애틋함과 서글픈 마음으로 이별을 나누었을 테다
헤어졌기 때문에 좀 더 오랜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의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테지만 헤어졌든 그러지
않았든 사랑을 하고 사랑과 이별하면서 후회와 미련, 슬픔의 감정들을 겪으며 한층 더 성숙해졌을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미가 죽는다는 건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린왕자가 곁으로 돌아왔어도 현실이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된다
소멸이 곧 새로운 시작이란걸... 그것이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순환고리인 것을 깨닫게 된다
장미의 죽음, 바오밥나무와 B612의 소멸로 인해 새로운 만남과 탄생을 마주하게 됐던 어린왕자!
장미가 남긴 씨앗과 모나크 나비의 번데기, 조종사가 그려 준 양과 함께 새로운 별에서 희망을 찾고 행복을 꿈꿀 수도 있었지만
지구에 남기고 온 조종사와 여우를 잊지 못해 그는 다시 지구로 향한다
장미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지도 못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어린왕자에게 어떤 회한이 들었을까
그의 깊은 슬픔이 전해지는듯하다
왕자는 지구로 가는 도중 예전에 들렸던 여섯 별에 들러보는데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왕을 속이는 신하와 거만한 왕, 외모를 중시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 무엇을 잊고 싶은지조차 잊어버리고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주정뱅이, 모든 것을 물질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상인, 정작 중요한 것은 볼 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기록하려는 지리학자...
여섯 별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의 모습을 발견한다
권력욕과 허영, 위선과 독선으로 가득 찬 세상.
탐욕스러운 그들에게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순수한 왕자의 눈에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게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거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집착하고 있는 그들의 진짜 삶에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있는 행복과 사랑이 결여되어 있으니까.
지구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멜레온과의 만남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몸 색깔을 바꾼다는 숙명론을 듣게 된다
서로가 속고 속이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며 끔찍한 저주라고 시를 통해 내뱉는다
부질없고 헛된 일에 몰두하느라 여념이 없는 수많은 왕과 신하, 허영꾼들과 우상을 좇는 여인들, 술주정뱅이와 점등인, 상인들, 지리학자들을 목도하게 된다
덧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며 살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민낯을 만난다
책에는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를 정리해 시 한 편으로 담아냈다
짧은 시 속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들은 마음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어들이 건네는 색다른 매력과 감동을 주는 장편동화라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중간중간 따스한 감성으로 그려 낸 강지톨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들은 이야기에 공감을 더해준다
시와 일러스트를 통해 서정적인 분위기와 동화적 감수성이 결합해 원작과는 색다른 느낌과 의미를 부여한다
교활한 뱀의 예상치 못한 마지막 모습은 조금은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두려움, 용기, 후회, 그리움, 기쁨, 사랑, 행복, 분노... 그리고 희망!
다양한 감정들과 만났던 <어린왕자의 재림>.
지구에 와서 사랑은 책임이란 걸 깨닫고 첫사랑의 장미 곁으로 가기 위해 조종사와 여우를 떠난 어린왕자.
하지만 장미를 온전히 책임지지도 못하고 다시 지구에 남겨 두고 온 그리운 이들을 찾기 위해 지구에서의 기나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타인과의 관계, 삶과 사랑에 관련된 선택은 누구에게나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낀다
또한 어린왕자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사랑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 보는 어린왕자 책 중에 동화적인 감수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어린왕자의 재림>은 생텍쥐페리의 부재 속에서 왕자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고 서로에게 둘도 없는 진실한 친구로 다시 해후한 어린왕자와 조종사를 볼 수 있어서 더불어 행복해졌다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을 벗고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인 어린왕자로 새롭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생텍쥐페리 원작의 어린왕자를 다시 펼쳐본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했을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어떤 서사가 그려졌든 결국엔 어린왕자와 조종사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생텍쥐페리는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그가 갑자기 사라진 부분은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
세상엔 말로 다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해서 정말 어린왕자와 함께 저 우주 속 어느 한 별로 날아가 버린 건 아닐까 상상을 해본다
원작의 향수를 품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사막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줄 거라 기대해보며 지금쯤 어느 별에서 어린왕자와 조종사, 장미, 나비, 양...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지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