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 마흔 넘어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
박대영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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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길 위에서 걷는다는 것은 구조적으로만 보면 대지에 발을 딛고, 다시 그 발을 떼어 내딛는 행위의 반복일 뿐이다. 한 발 또 한 발.... 그렇게 내딛는 단순한 몸동작이 걷기의 본질이다. 종요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길 위를 걷고 있는 그들은 두 다리로 대표되는 몸이 느끼는 수고스러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도 있다는 사실이다.” (p.205)
걷는다. 사실 걷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집구석, 방구석을 좋아하는 집순이였는데, 밖으로 나돌지 않은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니 답답했다. 운동도 거의 실내 운동으로 대체했었는데, 요즘은 등산이며, 산책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어느새 봄 햇살 아래 개나리, 목련, 진달래, 매화 등 꽃이 제 색과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실, 걷는 것도 자연을 끼고 걸어야 숨이 트였다. 사람, 건물, 자동차... 나에겐 그것들도 집안의 답답함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새소리, 시냇물 소리, 햇빛 내음... 내가 걸으며 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 산 속에서 혼자 3~4시간씩 걸으며, 휙 지나가는 생각을 잡아 찬찬히 더듬기도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에게 있는 여러 문제가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넘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오르지 않던 가파른 길도 기어오르고, 산 정상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조그만 성취감과 함께 위안도 얻었다. 때로는 아무생각이 없어도 발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겨우 조금씩이 나마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의 저자도 인생의 수렁을 경험하며 걷기와 공부를 통해 자신을 다잡아 왔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하게 배치된 돌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듯 27년차 방송기자라는 저자 소개를 보지 않아도 글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걸었던 길의 소담한 사진과 글은 차를 음미하며 찬찬히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고,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이 아니라면, 당장 짐 싸고 여행을 가고픈 마음이 들게 했다. 저자의 이야기가 공감이 가는 것은 인생에서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그 지점을 지금 지나가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내 안에 들어와 가만히 쌓이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생각들의 태반은 산다는 것이 어쩌면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중략) 길을 걸으며 깨달은 이치가 있다면, 내 몸을 일으켜 세워 기어이 땀 흘리며 나아간 만큼이 진정한 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걷는 여정만큼은 정직하다. 그 어떤 편법도 요령도 존재하지 않는다.”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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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나에게 -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
스티븐 배철러 지음, 이영래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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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나에게: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 제목이 끌렸다.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자신이 선택한 상태라고 평소에 생각 했었다.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아. 다만 나를 가다듬고 있을 뿐이야.’ 이런 느낌? 하지만 저자는 서문에서 ‘고독’을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샤머니즘, 철학 등을 떠나서 이 종교와 학문과 연결되어 있지만, 좀 더 실천적이고 개인적인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고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신이 40년 동안 천착해온 고독에 대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독자가 고독에 대해, 그러니까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저자는 20대 초반에 출가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삶의 방식’에 대해 수행했고, 한국에서도 잠시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 후 환속을 해 명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 예술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고독’으로 향하는 다양한 방법(마음챙김 명상, 예술 작품 감상, 몽테뉴의 글, 약물 복용, 불교 초기 경전 등)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방법도 있고,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방법도 있었다. 저자가 얘기하듯 ‘삶의 방식’은 누군가를 따라한다고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참조는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독립적’으로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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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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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 지구에 살던 40대 여성 유진. 어느 날 큰 지진이 발생한다.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유진은 구조되고, 대장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나 벙커x에 가게 된다. 유례없는 재해가 1년이 지난 시점, 부림 지구는 혼란의 도가니이다. 헤어진 가족과 친지를 찾는 사람, 식량과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줌을 받아 마시는 사람, 식량이 동나자 벌레를 먹으며 버티는 사람들까지.
정부에서는 부림 지구 이재민들에게 칩을 이식하면, 부림 지구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게 해 주겠다고 한다. 부림 지구는 드나드는 길이 N시로 이어진 곳 밖에 없다고 하는데,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방역복을 입고 벙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데려가 칩을 이식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칩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정부가 뿌리는 조악한 전단지에 실려있다. 칩 이식은 불법체류자를 통제하기 위한 용도인데, 이재민들에게 이식한다면서 부림 지구 이재민들에게 일종 공포이다. 칩을 이식 받은 사람들은 부림 지구로 다시 들어올 수 없고,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은 더 가중되고 사람들은 벙커를 나갈 때면 동식물로 위장하는 등 극히 조심한다.
벙커x의 리더인 대장, 유진이 호감을 갖고 있는 최기자, 노부부,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진 혜나, 정수, 유진 등의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상황 깊숙이 들어가진 않는다. 유진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한 발짝 물러선 느낌이 들어 위급한 재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피폐하지 않다.
‘재해를 앓는’ 이들이 살아가는 부림 지구. 외부와 고립되어 가는 이 지역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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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 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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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지인이 <설득의 논리학>(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2020)을 읽고, ‘참 잘 쓴 책이다. 어려운 논리학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글을 잘 쓰려면 꼭 읽어야 한다. 저자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독일은 학위 따기 힘든 곳이다. 대단한 사람이다.’라며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궁금해진 나는 계속 기억해 두고 있다가 중고 서점 들렸을 때 구매했다. 그때는 글쓰기, 말하기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기라 저자가 아무리 쉽게 설명했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다. 이 책은 2007년 초반으로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철학통조림>,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 등 대중에게 철학을 소개하는 책을 여러 권 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셜록 홈즈, 비트겐슈타인 등 ‘설득의 고수’를 통해 설득의 논리학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논리학이라고 하면 자칫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을 떠올릴 수 있는데, 우리가 접하는 강연, 토론, 프레젠테이션, 광고, 기획서 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논리학적인 용어를 쓰지 않았다 뿐이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너무 익숙해서 어떻게 저 광고나 예문에 논리적 기술이 쓰였는지 살짝 헷갈리기도 한다. 설득에 쓰이는 논리학은 저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꽃피우던 고대 그리스에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득을 위한 수사학이 발달했다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4차 혁명 시대에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한 설득의 논리학이 각광 받을 것이라고 넌지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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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도시의 유쾌한 촌극
스티븐 리콕 지음, 허윤정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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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았을 때 ‘촌극’이라는 제목처럼 재미있는 내용을 나타내는 듯한 노란색 바탕의 표지가 눈에 띈다. <어느 작은 도시의 유쾌한 촌극>은 19세기말~20세기 중반을 살았던 캐나다의 유머 소설가이자 경제학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가 옛 시대를 배경으로 쓴 책인 줄 알고 읽다보니, 요즘 소설의 느낌과 조금 달라 의아해 했었다. 마을과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인물간의 대화는 곁들여진 양념 같은 느낌?? 열심히 이 책의 무대인 ‘마리포사(Mariposa)’ 마을을 상상하다 잘 가늠이 안되 그만두었다. ‘나비’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귀엽고 발랄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찾아보니 실제로 미국 서부에 있는 마을인데, 저자는 캐나다의 어느 작은 상상의 마을로 그렸던 것 같다. ‘캐나다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마리포사 같은 도시를 열군데도 넘게 잘 아는 셈일 테니’라는 문장을 보고 캐나다에 실제로 있는 마을이겠거니 싶었는데... 의도적으로 마을 이름을 붙였구나.
‘마리포사’ 마을은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게스켈이 쓴 ‘크린포드’ 느낌이 난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 ‘크린포드’의 이야기를 그려냈는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만 등장인물들의 따뜻한 성격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장하지 않고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마리포사의 주민인 수완가 호텔 주인 스미스, 이발사 소프, 드론 사제, 펍킨, 페퍼리 판사 등 이들과 관계되면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폭소하며 웃을 정도는 아니지만, 작게 미소지으며 볼 수 있는 유쾌한 마리포사 주민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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