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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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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SF를 읽히는 작가라는 인상이 있다. <일곱 번 죽은 남자>,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등을 봐도 SF라는 OS에서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을 돌린다는 느낌인데 이번 책은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분명 내가 잘 아는 정통 미스터리가 맞는데 배경이 낯설어 약간의 인지부조화가 오는 신기한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참 유니크한 작가인데 요즘은 이 맥이 중화권 이공계 추리작가들 쪽으로 넘어갔다는 인상이 있다.
여하튼 워낙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특히 절정 장면에서 눈이 핑핑 돌게 만드는데, 인물관계도 페이지를 잘라서 대조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 배려가 재미있다. 그러나 다국적을 넘어 범우주적(?) 수준으로 깔아 놓은 것에 비해 기저에 깔려 있는 인식에서 묘하게 고리타분한 느낌이 나는 게 아쉬운 부분... 화려한 외장에 비해 내부는 조금 부실한 느낌이었다. 더 거창하게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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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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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하고 실체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이야기하는 암흑 전래동화. 소재로 볼 때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의 결을 잇는 장편이다. 전래동화 속에 유래가 불분명해진 수많은 금기들이 숨어 있듯이 이 책 역시 금기가 있고 그것을 어겨 공포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끊임없이 옆에서 들려 오는 숨소리는 과연 정체 모를 괴물의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것인가.
근래 백 년여의 시간에 얽힌 시골 마을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우리의 근현대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그것이 현실에서 유리된 환상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 신비롭다. 잘 알기 때문에 그 환상성 또한 더욱 짙게 느껴지게 된다. 이는 틀림없이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학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수많은 번역문학을 읽다 보면 해당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쓸 수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지점에서 결코 넘어갈 수 없는 투명한 벽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아쉬움은 결국 모국어 작품에서밖에 해결될 수 없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즐기기 충분하다. 물론 신화적 보편성을 따지자면야 당연히 인류 전체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원래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내리는 법이니까.
어수선한 서울 거리 속에서 시작해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시골 마을의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지듯 끝나는 이야기였다. 여운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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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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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표지와 제목이 주는 인상 때문인지 이미 얼어붙은 세계에서 얼어붙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야기라는 인식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춥고 황량하고 인구 적은 대지에서 벌어지는 쓸쓸한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가족이나 연인이다. 작품의 메인이 되는 마리아 사건의 가족, 에를렌뒤르가 기존에 수사하고 있던 다비드 사건과 귀드룬 사건의 가족, 게다가 사건들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를렌뒤르 본인의 가족사까지. 에를렌뒤르가 워낙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뒤섞어대며 수사하는 통에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헷갈리기 십상이지만, 그만큼 모든 이들이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블랙캣 시리즈로 나왔던 전작 세 권을 다 읽었던 게 상당히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모호하지만 딸 에바 린드의 인상이 무척 달라져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보면 <목소리>에서 망나니 탈출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온이 차츰 떨어져 가는 이즈음에 읽어서 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도시의 살인이나 또 시골마을의 살인과는 다른, 나라 자체가 작은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는 낯설고 독특한 애상이 있다. 그 밑바닥에서 소용돌이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똑같을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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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렌뒤르는 우연이란 삶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간악한 술책을 펴거나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연이란 비와 같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때로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을 형성하기도 했다. 
우연이란 난데없이 등장했다.
예상치 못하게 기이하게, 설명할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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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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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고 깔끔하게 잘 쓴 수작. 르포를 소설로 재구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나고 박진감 넘친다. 오랜 시간 과학수사 분야에 몸담고 있었다는 작가소개글을 보면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담백한 문장들 속에 담긴 현장 그 자체의 디테일이 어마어마하다.
중반까지 꽤 다양한 트릭을 예측하며 읽을 수 있게끔 해 놓았지만 내 생각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고 다른 방향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것도 훌륭했다. 이 미스터리 작가는 또한 아주 좋은 미스터리 독자이기도 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장르의 생리를 잘 알고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쓸데없는 러브라인 같은 것도 굳이 집어넣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각기 자기만의 뚜렷한 목표에만 매진하면서 여러 방향에서 한 곳을 향해 내달리게 하여 종국으로 다가가는 모습도 좋았다. 문장도 담백하지만 이런 부분의 담백함은 솔직히 후련하기까지 하다.
멋진 작품이다. 망설임 없이 별 5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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