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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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하고 실체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이야기하는 암흑 전래동화. 소재로 볼 때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의 결을 잇는 장편이다. 전래동화 속에 유래가 불분명해진 수많은 금기들이 숨어 있듯이 이 책 역시 금기가 있고 그것을 어겨 공포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끊임없이 옆에서 들려 오는 숨소리는 과연 정체 모를 괴물의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것인가.
근래 백 년여의 시간에 얽힌 시골 마을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우리의 근현대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그것이 현실에서 유리된 환상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 신비롭다. 잘 알기 때문에 그 환상성 또한 더욱 짙게 느껴지게 된다. 이는 틀림없이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학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수많은 번역문학을 읽다 보면 해당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쓸 수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지점에서 결코 넘어갈 수 없는 투명한 벽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아쉬움은 결국 모국어 작품에서밖에 해결될 수 없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즐기기 충분하다. 물론 신화적 보편성을 따지자면야 당연히 인류 전체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원래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내리는 법이니까.
어수선한 서울 거리 속에서 시작해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시골 마을의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지듯 끝나는 이야기였다. 여운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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