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두레아이들 그림책 1
프레데릭 백 그림, 장 지오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두레아이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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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프로방스 산지가 황폐한 황무지에서 조금씩 숲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수십 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타고 담담하게 들려주는 장 지오노의 글을 읽으며 감동이 점차 고조되면서 불가능을 넘어서 어느 누구도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을 가능케 한 위대한 영혼에 대한 존경심으로 마음 한 편이 뜨거워진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나 공명심조차도 관심 밖이었던 한 인간의 우직한 행보가 풍경을 바꾸고 풍경에 깃든 사람들의 삶을 바꿔 따스하고 윤택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생명이 사라진 마을에 세찬 바람만이 주인행세를 하는 황폐한 그곳에서 한 양치기 노인이 매일 정성스레 고른 100개의 도토리를 황무지에 심고 있다. 3년째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는 엘제아르 부피에의 무모해 보이는 행동은 젊은이의 호기심을 끌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젊은이는 5년 만에 다시 황량한 지방을 찾게 됐고 그곳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는 숲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은 전쟁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나무를 심고 있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참나무는 이제 노인의 키보다 컸으며 숲은 가장 넓은 곳이 11킬로미터나 뻗어 있었다. 숲이 일으킨 변화는 놀라웠다. 말라있던 도랑에 물이 흐르게 하고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고 바람이 퍼뜨린 씨앗들은 땅을 기름지게 하고 사람들을 돌아오게 했다. 젊은이가 처음 양치기 노인인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는 길에 거쳤던 폐허마을 베르공에 사랑들이 살기 시작했다.  


바람만이 황량했던 베르공 마을은 환경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도 풍성하게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젊은이가 노인을 처음 만났을 때 지났던 베르공 마을에는 고작 3명이 살고 있었다. 서로를 미워했고 난폭했으며 아무런 희망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이었다. 인근 마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견디기 힘든 날씨와 힘겨운 삶이 이기심만 키우고 다툼만 늘어나고 범죄가 들끓고 있었다. 하지만 숲이 생기고 거친 황야의 바람 대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실어다 주는 희망의 힘은 놀라웠다. 새집이 지어지고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살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채소들과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을은 활기가 넘쳤고 풍요롭고 행복한 기운이 넘쳤다. 이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의 힘이 만들어낸 기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의 현신한 모습이 엘제아르 부피에가 아니었을까 하는 벅찬 찬사가 절로 나온다.


이 지방의 ‘천연 숲’에 대해서 정부대표단이 조사하러 왔다고 한다.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았고 이름을 알린다거나 보상을 바래서 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엘제아르 부피에의 존재를 알 턱이 없었을 거다. 단지 자연이 행하는 믿지 못할 놀라운 기적이라고 생각할 밖에... 엘제아르 부피에의 존재는 이 그림책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장 지오노는 젊은 시절 여행 중에 만났던 특별한 노인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아 초고를 썼고 20년 동안이나 원고를 다듬어 책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책 <나무를 심은 사람>의 그림을 그린 프레데릭 백은 장 지오노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5년 동안 2만장의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감독이다. 이 그림책에 삽입된 그림은 책의 내용에 맞게 다시 그린 것이라고 한다.


프레데릭 백이 만든 영화를 보고 감동받은 캐나다 사람들은 2억 5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엘제아르 부피에 라는 양치기 노인의 일생을 바친 고결한 실천이 젊은 작가를 감동시켜 문학작품으로 재탄생했고, 그 이야기는 영화감독을 움직여 영화를 만들게 했고, 영화에 감동받은 사람들을 움직여 엘제아르 부피에의 신념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조용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는 장 지오노의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글을 통해서 더욱 특별한 향기를 입었다. 황무지의 황량함이나 희망 없는 삶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수십 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문장들 속엔 이렇게 향기로운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프레데릭 백은 황량함이 풍요로움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림만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한 찬미,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 대한 메시지로 <나무를 심은 사람>을 정의 내린다면 그 또한 이 책을 바라보는 여러 각도의 시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에 머무를 법한 무모한 일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과정은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시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실패를 미리 두려워해 지레 포기부터 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을 반성한다. 그런 좌절과 포기들이 쌓여 현재에 이르고도 새로운 시도조차도 두려워하는 한심한 현재의 날들을 일으켜 세워본다. 척박한 땅에 심어진 엘제아르 부피에의 도토리 한 알처럼 십 년 후 내 키보다 훌쩍 자라있을 희망의 씨앗 하나가 내 마음에 와 콕 박힌다. 그림책 한권이 나 개인의 역사를 훑고 지나는 감동을 주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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