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도깨비 책귀신 1
이상배 글, 백명식 그림 / 처음주니어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돈궤를 이르는 말인 고리짝..오래된 물건은 세월이 지나면 영물이 되어 도깨비가 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연유로 도깨비가 된 고리짝도깨비부터 시작한다. 구두쇠 영감의 돈궤가 변한 고리짝도깨비는 돈 냄새를 못 잊어 구두쇠 영감 집에 다시 찾아들고 결국 그 돈을 훔쳐서 동구 밖 버드나무로 거처를 옮긴다. 그 뒤로 다른 부자들의 돈도 훔치고 그 돈으로 땅을 사들여 큰 부자가 된다.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공책도깨비와 빗자루도깨비가 찾아와 셋은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냄새 맡는데 귀신인 개들 때문에 자꾸 다른 버드나무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개들에게 냄새를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그들만의 근사한 집을 짓기로 한다.


집터를 찾아다니던 도깨비들이 한눈에 봐도 명당자리인 땅을 인간들이 이미 선점해서 옷가게를 짓는다, 큰 식당을 짓는다 하는데 도깨비들이 명당자리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바윗돌이며 똥을 퍼다 날라 귀신이 붙은 땅이라는 소문이 퍼져 땅값이 헐값으로 떨어지게 된다. 똥값이 된 이 땅을 한 선비가 사들이게 되고 도깨비들은 선비도 쫓아내려고 선비 앞에 나타나지만 선비는 땅을 두고 내기를 한 판 하자고 한다. 내기 과제는 ‘문답’, 글을 물으면 그 글에 맞는 글로 대답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공책도깨비가 겨우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바둑아 놀자 정도의 글을 알뿐이고 고리짝도깨비는 글자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는 척’ 공책도끼비만 믿고 덜컥 내기를 시작했다가 낭패를 보게 생긴 도깨비들은 선비에게 약간의 시간을 얻어 답을 찾아 나선다. 도깨비들이 찾아간 이는 다름 아닌 세종대왕, 문답은 책을 읽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세종대왕에게 앞으로 꼭 글을 배우고 책을 읽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답이 되는 글귀를 얻게 된다.


人不通古今이면 馬牛而襟倨니라. 

(사람이 고금(古今)을 알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힌 것과 같다.)


답은 얻어왔지만 뜻을 묻는 선비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도깨비들은 세종대왕의 말씀대로 책을 읽어 알아내자고 결심을 하고 대왕님이 알려주신 서점이란 곳을 찾아 나섰다. 세종대왕이 부탁한 책을 찾는 과정이 신기하고 신났던 도깨비들은 책이 주는 세 가지 기쁨 중 책방 가는 기쁨과 책 사는 기쁨을 알게 된다. 이제 한 가지, 책을 읽는 기쁨만 남았다. 글자를 배우고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도깨비들은 명당자리에 도서관을 세우려던 선비가 돈이 없어서 건물을 못 올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동안 애물단지였던 돈 보따리를 선비에게 모두 줘버린다. 드디어 명당자리에 으슥하고 어두운 다락방까지 있는 ‘책 읽는 도깨비 도서관’이 개관을 한다. 도깨비 냄새 맡고 달려드는 동네 개들 때문에 거처를 마련하고자 했던 도깨비들의 원래 계획에도 꼭 맞아떨어진 셈이다. 게다가 뒤늦게 배운 책 읽는 재미 또한 맘껏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지 않은가.             


‘벌레’나 ‘귀신’같은 단어가 책과 만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듣기 싫지 않은 말이 탄생한다. 책벌레, 책귀신. ‘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책’이라는 글자만 봐도 귀가 번쩍 눈이 번쩍 뜨인다면 그대는 책벌레 책귀신이 분명하다. <책 읽는 도깨비>는 말 그대로 책귀신 이야기다. 책의 재미는 고사하고 글도 못 깨친 도깨비들이 어떻게 책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책을 밥보다 더 좋아했다는 세종대왕이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던 안중근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설사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사서 쌓아두는 형태든지 닥치는 대로 읽는 형태든지 나름대로 책을 즐기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재미를 어린 나이부터 알아서 오래도록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어린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도깨비처럼 죽지 않고 사는 영물도 진즉에 책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고 늦게 알게 된 것을 후회하는데 하물며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찌감치 이 즐거움을 깨우친다면 죽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책은 책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지게 할 만큼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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