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서의 이해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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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네가 말이 많구나" 김용옥씨의 책을 읽고 나면 말이 많아진단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내게 했던 얘기다. 우선 누군가가 내게 한 이 말의 의미가 내가 말이 많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일까?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좋은 의미로만 해석하면, 읽고나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도 어느 정도는 떠들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지식이 그의 책 속에 들어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분야의 문외한들도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을 읽는동안 머릿 속은 새로운 지식들로 꽉꽉 채워지며, 지적인 포만감(?)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으로 들뜨게 된다.

<금강경강해>가 그랬고, <요한복음강해>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창기 책들보다는 요즘의 책들이 훨씬 더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현학적인 문장을 지녔을 김용옥씨의 최대 장점은 금강경이나 성경, 불경, 도덕경, 논어 같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할 것만 같은, 그래서 전공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을 텍스트들을 흥미진진하고 말랑말랑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기독교 성서의 이해> 역시 성서라는 텍스트의 콘텍스트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텍스트 내부에 존재하는 모호한 의미들을 다양하게 분석해내는 그만의 탁월한 재주가 돋보인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의 목적은 '이해'를 위한 것이다. 김용옥씨가 책속에서 종종 언급하는 것처럼 이 책이 성서에 대한 의문과 새로운 시각을 통해 이루려는 '이해'를 누군가는 '신성모독'이나 '이단'으로 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서에 대한 그의 '의문'과 새로운 '시각'은 '이해'외에 다른 의도가 없다. 책을 읽을 수록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성서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그가 '이해'를 통해 이루려는 최종적인 목적이다.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가 워낙에 도그마라는 것이 의문을 달 수 없는 차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시도하려는 '이해'는 본질적으로 '이단'과 '신성모독'의 차원에 속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서를 절대부동의 '도그마'가 아닌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될 '복음' 또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할 이들은 말씀의 '의미'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고, 이런 궁금함은 당연히 '이해'를 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째서 성서는 27서로 이루어졌으며, 다른 성경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까? 왜 신약 속에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가지 복음을 연달아서 붙여놓았을까?  네 복음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디테일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사렛 예수는 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끝이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이 당연한 의문들을 김용옥은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나간다. 이 책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김용옥이 자신의 책속에서 종종 보여 주는 나르시즘과 그로 인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성서 27서의 성립배경, 동정녀 잉태설,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난 이유, 바울의 서한들의 의미와 형식에 관한 그의 설명은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혹 그의 설명을 듣는 이 들 중에 일부는 그의 의문과 충격적인 해석에 대해 반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이해'가 갖는 거침없는 의문들과 해석들이 성서의 권위를 일부분 깎아내렸을 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대하기 어렵기만했던 성서를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읽히기보다는 들리기를 원했던, 한 사람의 독자보다는 다수의 청자를 확보하고자 했던 복음(gospel)의 본래적 목적은 권위와 절대성보다는 친근함과 대중성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문'과 '이해'는, 아무리 성서가 논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할 지라도, 무작정 믿어야 한다는 '의무' 나 '맹신'보다 훨씬 더 신앙적인 것이다.

이런 '이해'의 순수한 의미를 믿는다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김용옥의 말처럼 절대로 반신앙적이거나 탈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든 첫번째 생각은 신약 4대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이 준 '이해'가 성서의 말씀에 더 가까워지게 해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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