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김훈, 문학동네)
일흔 넘은 할배가 쓴 산문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얼마만큼 살고 싶은가? 얼마나 살다가 죽으면 딱 좋을까?
점자 포함하여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때까지만 살아도 괜찮겠다. 그 정도면 족하다. 읽기와 쓰기를 못하는데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일흔 먹어서도 내가 젊은이를 붙잡아 두는 글을 쓸 수 있길 소망했다. 김훈을 우러르며 발칙하게 낙관해보았다.
‘연필로 쓰기‘에 실린 산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밥과 똥‘이고 제일 마음을 움직인 글은 ‘아, 100원‘이다.
김훈은 ‘밥과 똥‘에서 자신이 밟은 개똥, 변기에 앉아 눈 똥, 목장 근처서 맡은 말똥 소똥 냄새, 예전 서울 골목에 넘쳐 흐르던 똥, 위생처리를 거쳐 강으로 흘러드는 똥폭포, 내리막에서 똥구루마를 밀다쓰러져 똥칠갑을 한 친구 등을 글로 불러 모은다. 그런데 이 글은 전혀 ‘구리지‘ 않다. 김훈은 똥으로 삶과 생활과 역사를 들여다본다.
‘아, 100원‘은 배달대행 오토바이 라이더의 고충을 보여주는 글이다. 중국음식을 실은 오토바이가 배달하러 가다가 쓰러져 짬뽕 국수, 탕수육 조각, 단무지, 양파, 나무 젓가락이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처참하다. 김훈은 길바닥에 쏟아진 국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라이더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제목에 나오는 100원은 눈비가 오면 배달노동자가 건당 받게 되는 추가수당이라고 한다. ‘아, 100원‘은 정치문건도, 신문사설도, 기고문도 아니지만 강력한 울림이 있다.
지난 두 주 동안 이 책이 있어서 즐거웠다. 한 주 잘 기다리면 이번에는 김영하의 신작 산문집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연이어 나오는 2019년 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