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는 자는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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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인쇄 매체 기반과 디지털 매체 기반 둘다를 아우를 수 있는 ‘양손잡이 읽기 능력‘을 갖출 것을 제안한다. 어찌보면 절충안 같지만 실은 인쇄 매체 기반의 깊이읽기를 수호하고 적극 권장하겠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인쇄물보다 스크린을 통해 무언가를 읽는 비중이 커진 시대다. 다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장 이전보다는 많은 시간을 디지털 기반 읽기에 쏟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디지털 매체 기반의 읽기는 대량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려 할 때 쓰인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훑어보기, 건너뛰기, 대충 읽기는 이해, 인지, 기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읽기가 지속, 고착되면 인쇄 매체 기반의 읽기를 통한 깊은 사고력은 얻을 수 없다.

디지털 기반 읽기야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다들 하고 있을 테다.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갖추자는 말은 디지털 기반 읽기만 하지 말고 인쇄 매체 기반 읽기에도 신경 쓰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종이책주의자에게 필요한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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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고도 강경한 가르침.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단단히 ‘각오‘하라는 말소리가 뼈를 때린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문학을 떠나면 할 일이 있는지요. 소설을 쓰는 것 외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있는지요. 그날그날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한가로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같은 유형의 인간이 과연 그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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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와 부조리를 진부하게 들먹이며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것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자. 너무 유명하여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 첫 문장 말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더불어 마지막 문장도 다시 읽어보자.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소설 제목과 화자 말투나 멘탈은 ‘아싸‘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은 ‘핵인싸‘ 간지철철 문장을 내세우는 작품.

주인공 뫼르소를 1차원으로만 바라보면 소시오패쓰에 불효막심한 후레자식일 터이나 그리 단순하게 읽으면 안될 것 같다. 뒤로 갈수록 그의 생각에 일부 묘하게 동조하게 된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설을 읽기 전에 이 글을 쓴다. 읽고 나면 왠지 답안지를 보고 감상을 적을 것 같아서이다. 민음사 출간본 ‘이방인‘은 길고 상세한 작가연보를 통해 카뮈를 추모하고 있는 듯하다. 만 46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일찍 등진 카뮈의 생애를 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조만간 ‘페스트‘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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