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노나미 아사 지음, 이춘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어렸을때 아빠와 함께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함께 보던 그 프로는 범인을 잡아내는 프로였는데, 지금 그 배우들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기억이 깜빡이긴 하지만, <수사반장>이라는 프로의 인기는 상상이상이었던 기억이 난다.  바바리 코트를 날리면서 현장을 둘러보고, 취조실에 앉아있는 범인을 어떤때는 으르고, 어떤때는 달래는 그런 이야기 였던걸로 기억이 나는데, 꽤나 장수한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2011년,  일본판 <수사반장>을 읽었다.  현대의 과학수사나 범의학이 아닌, 아날로그적 향수가 다분한 <수사반장>을 말이다. 

1965년부터 1985년까지를 배경으로 '자백의 달인' 형사 도몬 코타로의 사건 기록을 담은 중편 4편을 만났다. 과학 수사가 미숙했던 시대, 다양한 수사에서 쌓은 경험과 자신만의 감에 의지하여 사건을 파헤치는 베테랑 형사의 활약이 펼쳐지는데, 도몬 코타로가 형사로 커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네편의 이야기는 다 다르다. 하지만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은 도몬 코타로의 인간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롤로그와 본문, 에피로그까지 80~90 페이지로 하나씩 끊어지는 네편의 중편 짧아서 편하게 읽힌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일본의 디즈니랜드가 개장한 쇼와 58년(1983년)의 이야기가 첫 편을 열어준다.  

낡은 부채 - 첫인상은 어딘지 막 굴러다녀 닳고 닳은 아줌마 같은 느낌이었다. 청결한 맛도 없거니와 가정적인 분위기도 전혀 없다. 전체적으로 뭔가에 찌들었다고나 할까, 마치 시부우치와 같은 느낌의 여자였다(P.48)  프롤로그는 범죄의 전초를 이야기한다. 시부우치, 부엌에서 사용하는 막쓰는 부채 같은 그녀가 20대의 젊은 남자를 부르고, 400만엔에 살인을 의뢰한다.  그 의뢰가 받아들 여졌을까? 장이 넘기자 마자 사건이 일어난걸 보니, 살인 의뢰가 이루어졌다. 그곳에 우리의 '도몬 코타로'가 나타났다. 그가 알아낸 바로는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의 이혼한 아내.  왜 전남편을 죽였는지 알아내는 것이 도몬의 몫이다.  그리고 사건의 끝에 도몬에게는 가족이 있다.

 

돈부리 수사- 느닷없이 가족을 잃고 나면 가장 먼저 인간을 덮쳐 오는 건 슬픔보다 노여움에 가까운 감정이다. 수많은 사건 현장을 지켜봐 온 도몬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성적으로 처리가 안되는 것이다(P.114) 쇼와28년(1983년)정월, 일본은 E.T가 강타한 해였다.  그리고 그곳에 73세의 말기 암환자인 택시기사의 변사체가 발견했다. 범인은 매일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는 파키스타인. 그렇게 기도를 드리면 회개하는 사람이 범인이라니. 진실일까?  먹을것이 부족한 그 시절, 일본인이 아닌 배고픈 파키스타인에게 카레향은 유혹이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렇게 도몬은 '돈부리 수사'를 통해 범행을 알아낸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 쇼와40년(1965)으로 이야기는 거슬러올라간다.  도몬의 형사 초창기 시절. 아내가 큰아이를 낳고, 얼마후 둘째를 출산할 예정이란다.  그리고 그가 쫒는 좀도둑, 데루미와 하루오.   아이까지 있으면서 도둑질을 하는 그들을 도몬은 이해할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미사와 주임과 이시다 계장. 그들을 통해 도몬은 형사가 되어간다.  초창기에 있을 수 있는 실수들을 통해 선임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형사가 되어간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아메리카 연못 - 계장님께는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난처한 일이 생기면 말하라'고 했던 말이 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318)  '아메리카 연못'이라고 불리는 곳에 전라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목걸이 하나만을 걸고 루프로 묶여있는 변사체. 이유가 있는 것일까? 미국인들의 범죄인가?  하나하나 찾아보면 범인은 밝혀진다.  범인을 밝혀내는 도몬. 자백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평범한 소시민 형사, 도몬 코타로. 그의 수사는 지극히 향수를 일으킨다. 그의 신조. 1. 사건의 전체적인 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라.  2. 현장의 분위기와 주변 정황 등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  3. 수입해 온 증거와 정보를 빠짐없이 상세히 기록하라.  4. 육감이란 없다. 이치와 노리를 따져가며 생각하라.  5. 자백을 강요하지 않는다. 묻고 들어주기를 반복한다. '자백의 달인' 도몬은 '묻고 들어주기의 달인'이다. 용의자의 마음을 녹이는 능력이 다분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초적인 배고픔을 표현했던 '다시 만날 그날까지'에서 만난 미시와 주임과 이시다 계장을 통해 도몬은 인간적인 형사가 되어가고, 그 역시 계장이 되어 인간적인 형사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보여진다.  그안개 저편에 숨어 있는 용자자를 찾기위해 도몬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 하나, 수사의 기본을 지킨다.  그래서 도몬이 보여주는 형사는 냉철이나 몰인정한 세계가 아닌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세계이다.  노나미 아사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전작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평을보니 그의 전작들이 대개가 치밀하고 정교한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감을 높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백>은 그런 심리묘사를 통한 긴장감은 없다. 추리소설임에도 마음이 따뜻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편했고, 수사반장의 반장을 닮은 도몬 코타로가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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