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 P41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 P58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 P60

슬픔에 빠져 있지만 말고 외출도 하고 사람도 만나라고 말하는 이들의 헛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저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것일 뿐이라고. 집안일도 남에게 맡겨버리고 필요하면 수면제도 먹으라고. 수면제 대신 캐머마일 차를 드셔보시라고 말하는 친척의 말은 샌드위치 그만 먹고 도장이나 핥으라는 말과 같으니 과감히 무시하라고. 함께 기도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기도는 제가 직접 할 테니 설거지나 좀 해주시겠어요?" - P63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 P68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 - P76

우리에게 닥쳐오는 슬픈 일을 미리 알고 막아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슬픔을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있는 것이다. - P86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 P88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 P92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44) 《논리 철학 논고》(1921) - P93

대상들의 운명이 실제로 어떻든 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심리적 태도를 취하느냐다, - P104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이들의 이야기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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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하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동명이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일종의 존경이나 애정을 표하는 것이었다. - P124

고골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그의 이름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고, 계속해서 이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이름이기를 바라는 유일한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고골리 자신이었다. - P134

그런데 한 가지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정작 그 자신이 니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그를니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전에 고골리였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현재의 그만을 알고 있을 뿐, 과거의 그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러나 18년 동안 고골리로 살아온 이후 두달 동안의 니킬이란 뭔가 빈약하고 미미한 존재였다. 때로는 연극에서 배역을 맡게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 P140

너는 나에게 그후에 일어난 모든 것을 의미한단다. - P164

의심 한 번 품지 않고 너무나 당연스레 부모님의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싫었다.
그는 뉴욕이 좋았다. 뉴욕은 부모님들이 잘 모르는 곳이었고, 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곳이기도 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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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 P71

이름에 형태나 무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억지로 입어야 하는 옷에 붙어 있는 까슬거리는 상표명처럼 그를 물리적으로 괴롭혔다. - P103

이제까지 고골리는 이름도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름 또한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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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 P14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의 복수는 ‘같은 경험’을 인위적으로 생산해내는 기획이다. - P30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 즉 ‘타인의 슬픔을 똑같이 느낄 수 없음’ - P30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 P34

아이스킬로스의 소위 ‘고통을 통한 배움(pathei mathos)’(〈아가멤논〉, 177행)이란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지만 고통 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는 뜻도 된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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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의 삶은 예상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았던 하나의 사고가 다음 사고를 낳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아버지의 기차 사고였다. 이 사건은 처음엔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나중에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였고, 세상 저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은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담긴 편지가 캘커타와 케임브리지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고였다. 이로 인해 얼떨결에 고골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수년 동안 고골리라는 한 인간의 윤곽을 형성함과 동시에 괴롭혀 왔었다. 그는 이런 임의성을, 이런 빗나감을 바로잡으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을 완벽하게 새로 창조하는 것은, 그 엉뚱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 P7

이 곳에서의 삶이란 너무나 불확실하고 결핍된 어떤 것이었다. - P15

"자네를 위해서 하는말인데, 더 늦기 전에 복잡하게 생각 말고, 베개 하나에 담요 한 장 챙겨서 가능한 한 많은 세상을 보고 오게나. 후회하지 않을 걸세. 언젠가는 너무 늦고 말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그게 바로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요." 아쇼크가 그 틈을 타 손에 쥔 책을 펴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여행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른 법이지." - P28

그를 괴롭혔던 것은 구조되기 전까지의 기다림에 대한 기억이었다. 쉬지 않고 목까지 차오르는 공포, 어쩌면 영원히 구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 P34

아이를 낳는사람은 아시마였지만 그 또한 삶에 대한 생각에, 그의 삶과 아울러 그로부터 비롯되려고 하는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 P35

그는 신에게 감사하는 대신, 그의 목숨을 살려준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에게 감사하였다. - P35

다시 아들을 내려다보니, 아이가 눈을 반짝 뜨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깜박거리지도 않는 아이의 눈은 머리카락처럼 까맸다. 눈을 뜨니 얼굴이 완전히 달라보였다. 아쇼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들에 비하면 자신은 어둡고, 거칠고, 흐릿한 존재였다. 거의 죽을 뻔했던 그날 밤이 다시 생각났다.
영원히 그의 머릿속에서 깜박거리다 사라지곤 하는 그 시간들의 기억이었다. 산산이 부서진 기차에서 살아남은 것이 그의 인생에서 일어난 첫번째 기적이었다. 그러나 여기, 무게조차 없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두번째 기적이 지금 그의 팔에 안겨 있었다. - P38

이제까지 이렇게 외롭고, 이렇게 결핍된 채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 P39

인도에서 부모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맞는 이름을 짓기까지, 가능한 한 최고의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 P40

애칭은 또한 사람이란 함께 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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