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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평점 :
저자의 여는 글이 겸손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덮은 지금은 이 책의 저자가 너무도 겸손했구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한국건축양식에 대해 초석에서부터 창호까지 꼼꼼히 제시하고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우리는 한국건축양식 하면 한옥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한국의 석축과 목축 할 것 없이 석탑, 목탑, 정자, 성, 성문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건축의 다양성을 보게 되었다. 한국건축의 역사라고까지는 할수 없겠지만 우리 건축의 토대를 이룬 사상과 지배계층과의 차별성 등의 다양한 건축양식의 발생을 설명하고자 선사시대의 건축양식을 짧게 설명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 건축의 발전과 고대도형학 연구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건축의 넓은 범위를 공부하면서 건축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하나하나 공부하는 계기도 되었다. 건축일을 하지 않는 이상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먼 미래라도 자신의 집 짓기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옥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는 더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에서는 비교대조를 위해 외국(중국와 일본)의 사례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국건축에 사용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건축양식이 있다면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건축양식에도 관심을 가질 기회를 주는 듯 하다. 베트남 어디에선가 들렀던 옛 부족들의 건축양식 박물관이 떠오른다. 다양한 민족의 옛 집과 생활도구들이 모인 공원식의 박물관에서 각 부족의 자연과 종교와 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의 건축을 보면서도 우리의 자연과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서가 집의 각각의 부분을 논하는 것 같지만 읽다보니 집을 보는 큰 그림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이다. 멀리에서 집을 내려다 보았다가 건물의 외부를 감상하고 창호문을 열고 집의 천장까지를 올려다본다.
우리가 모호하게 과학적이라더라고 알고 있던 한국전통건축이 어떻게 과학적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려운 건축 비례는 차치하고서라도 하지와 동지의 남중고도의 각도를 고려해 겨울에는 해가 실내 끝까지 들게 하고 여름에는 차단하며, 수납공간이 되면서도 빗물의 들이침을 방지하는 처마에 감탄하게 될 것이고 사람의 앉았을 때 팔걸이를 할 만한 적합한 높이에 난간과 머름의 높이를 두는 것에서도 그 운치과 함께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집들도 모두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간중심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국건축, 특히 이런 한옥의 모습에서는 그 편리함보다는 마음의 높이와 크기가 더 중요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의 독립성을 위해 만들어진 아파트들의 좁은 복도는 나의 신체의 크기에는 딱 들어맞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너비들은 아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각자에게 주어지는 공간이 협소해지는 까닭에 현대 아파트의 인체공학적 설계란 딱 우리의 몸집과 키만큼인지라 그 마음의 여유까지 딱 그만큼으로 차단시키고 만다. 지금의 아파트에는 생활할 공간만 있고 사유할 공간은 없는 듯 하다. 사유란 것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을 경외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일 사유할 여지 마저 차단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우리가 한옥을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책에 실린 한국 건축물 지도를 따라 여행길에 올라도 좋을 일이다. 10분이면 둘러보았을 사찰이 종일 들여다 보아도 새롭게 보일 듯 하다. 책을 보면서도 ‘아. 할머니 댁의 그 마루는 쪽마루고 그쪽은 툇마루였구나...토방이 이 ’기단‘이라는 건가보다......기단은 이래서 필요한거구나......아, 이거 기억나는데 이걸 들어열개하고 하는구나.....’하면서 기억 속의 한국 건축을 되짚어 보게 되니 말이다. 석탑 하나, 기둥 하나, 서까래 모양이며, 초반석과 초석의 모양까지 이곳저곳을 보게 될테니 대한민국 땅이 갑자기 넓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특히 들어열개(여러짝의 문을 포개서 위로 들어올려 고정할 수 있는 문)을 어렸을 적에도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들어열개는 저자의 말대로 ‘공간이 쉽게 분할되고,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가변성’을 갖게 한다는 점이 과학적이고도 열린 집이라는 느낌을 준다. 보호하는 집의 역할에서 차단하지 않는 공간을 연출한다는 점이 그냥 창문을 여는 개념과는 다른 열린 느낌을 주어서 매력적이다.
최근 TV에서 한옥건축 전수교육을 받는 이의 인터뷰를 잠깐 본 기억이 있다. 화천한옥학교의 교육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교육자의 길을 걷다가 돌연 한옥건축가로 꿈을 가지게 된 경우였다. 그 교육생들의 삶이 왠지 수도승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무를 만지고 사람을 위한 집을 짓는 일은 무언가 마음을 비운 이타심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노라니 더욱 그런 마음이 강해진다. 목재의 아귀를 맞추는 그들에게서 더욱 장인의 멋이 난다. 장인들의 교육이 가업 세습 위주에서 전문교육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한국전통건축교육이 희망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작지만 한옥이었던 그 집이 생각난다. 요사이 유명 고급 아파트 CF에서 집에 가는 것이 행복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 아파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에 웃음이 난적이 있다. 내겐 그 한옥이 그렇다. 작은 툇마루의 오후 햇살이 늘 그립다. 그 툇마루에서 책 베고 다른 세계로 빠지고 싶은 건지 그 툇마루에 눕는 것이 내가 꿈꾸는 다른 세계인지나 생각하면서 글 읽고 땅 일구고픈 꿈을 꾸게 하는 집이다. 비오는 날이면 처마를 거쳐 토방 너머로 떨어지는 낙수를 세며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해방감을 만끽하고픈 꿈을 꾸게 하는 집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의 하룻밤도 더 새록새록 떠오른다. 두껍지만 가볍고 차가운 옥양목의 감촉이 좋은 목화솜 이불을 덮은 채 아침 햇살 들어오는 창호문을 여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파 진다.
일반 독자의 한국건축에 대한 경험은 이런 나의 감성적 시선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 수준의 심도 있는 한국건축학에 가깝지만 한국가옥을 아끼는 일반 독자에게도 한국 전통 건축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단련시켜줄 것이 분명하다. 그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낄 뿐 아니라 소중한 자산이며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더 잘 살 수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우리는 상당시간을 콘크리트 건물의 유리창 안에 들어가 사는 삶을 꿈꾸지만 정말 인간을 위한 집을 우리가 버리고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들려주는 한국건축은 나무와 흙과 종이와 쇠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의 건축은 편리함보다는 편안함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사상 아래 빚어지는 듯 하다. 아마 한옥장인들이 더욱 수도승같은 장인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런 느낌 때문인 듯 하다. 산의 모양에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초가지붕의 형태처럼 우리가 사는 집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