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 형태로 이해하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책을 함께 읽다보면 기억만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나에게 독서란 내 주변 세계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이지 a책의 내용은 이렇다, b책은 이렇다, 식으로 구별해서 기억에 저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은 그대로 있고, 그것들을 이해해가는 방식이 책으로 하여금 조금씩 열리면서 주변을 선명하고 풍부하게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술에 대한 시선에 영향을 주는 책들은 더욱 나의 주관적인 시점을 혼돈시키고 사유하게 하고, 결국에는 명료하게 잡아가는 데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요사이 한참 예술관련 책들과 개념사를 함께 접하다보니 저자가 소개한 말 중 중국인민대학교의 미학자 장부어 교수의 말이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장부어 교수는 ‘말은 의미전달이 목적이므로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말 자체를 잊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이 책의 저자의 예술의 형태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사물은 존재 그 자체이지 언어와 분명 동등한 의미라 할 수 없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한 예술을 언어로 전달받고 머리 속에 손으로 느낄, 귀로 들릴 예술의 부분들은 이미지와 함께 언어로 저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의 존재를 우리는 기억하는 것인가. 완전히 재구성된 다른 예술이 기억 속에 창작되는 것인가. 특히 이를 다시 언어로 풀어냈을 때 그 재구성은 기존의 사물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언어)를 가진 문자(물질)이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참 많은 예술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을 창작하는 입문자들에게 이러한 지나치게 비약되는 생각들은 무엇이든 시도하는 데 망설임을 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다시 책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으로 돌아가자.
저자는 예술의 형태를 중요시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의 발생의 여러 부분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관심이 있었던 듯 하다. 예술작품의 발생하게 된 동기와 그 예술작품의 형태를 결정짓는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공간적 세계관 등을 들려줌으로써 예술을 읽어가는 시선을 단지 시각적 심미안에 그칠 수 있는 시선을 보다 깊게 하고 현재의 창작 또한 여러 사상과 개념의 집약체일 수 있다는 점을 거꾸로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재미난 예를 제시한다. 이집트 미술이 상당부분 거론되는데 피라미드의 발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파라오의 개인적 영생을 위한 노동착취였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한기 농부들에 대한 대안정책이었거나 파라오 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이 종교와 동일시한 파라오의 영생이 곧 이집트인 자신들의 평안이라는 믿음으로 피라미드 건설에 임했을 수 있다는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를 사는 그 누구도 당시를 증언할 수 없겠지만 예술을 읽는 데는 이렇게 하나의 사적자료를 맹신하는 것보다는 열린 자세로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해 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와 고대의 여러 예술작품들이 말하듯 아름다움 자체를 위한 창작보다는 실용적 차원에서 남겨진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형태의 추상화’라는 디자인으로 흘러간다. 요사이 미술의 경계의 무한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에 저자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나마 들을 수 있어서 디자인의 대량생산적 측면과 예술의 의미, 실용성을 가진 예술과 순수예술과의 경계성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디자인의 경우처럼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의문과 함께 특히 넓은 의미의 미술작품들이 이제 더 이상 시대 반영의 결과물들이 아닌(굳이 반영이라고 보자면 개개인인 창작가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기술적 필요성이 아니라면 시대적 의미 또한 사라진, 의미 구현의 또 다른 형태, 언어와 다른 표현방식, 사물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키워드들을 참조하자면 저자의 궁극적인 의도는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예술과 창작은 ‘고유성’을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가지는 조형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생각하게끔 해주고 싶었던 듯 하다.
쉽게 이해가능하게 풀어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이 아홉 챕터의 공부는 예술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예술을 읽거나 창작하기 위한 시선을 준비하는 데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하지만 예술의 존재의 이유와 예술이 왜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왜 중요하지를 알게 하는 데 있었던 집필의 목적에 100%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세계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문화 내에서 발생된 예술을 읽는 데 있어, 저자가 말하고 있는 동서양의 인식차이가 시대적 예술의 특이성을 읽는 데 매우 도움은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책의 전반부에 언급된 동서양의 시선의 차이에 대한 실험결과 등은 일반화의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의 여부를 열어두고 모든 예술이 아닌 오래전에 발생한 문화라든가 하는 제한을 두었어야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의도했겠지만 글만으로는 비약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자연적 배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현대미술과 세계 곳곳의 건축 등을 읽는 데 적용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으며 이는 동양 혹은 서양 어느 시기 양식의 영향과 어느 시기의 사상을 표현했다는 식의 구체적 시기성을 언급할 수 있는 해석 정도에서만 유효한 것임을 생각할 때 말이다.
예술작품의 예시가 없는 유일한 두 챕터 진화와 모나드 편에서는 예술작품을 읽는 예시가 없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나 아마도 형태의 넓은 의미를 이해하고 자연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의 운동성과 그 본질까지를 예상 혹은 관찰하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예술을 보는 시선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예시가 있었더라면 좀더 쉽게 모나드 개념 등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러한 여러 과학적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예술적 창의성과 작품과 작가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는 예술을 공부하려는 입문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주변의 모든 사물을 읽어내는 시선을 키우는 데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