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가는 길 -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
아샤 미로 지음, 손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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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도는 까만 머릿결과 머리처럼 까만 눈동자,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 소녀는 언제나 이방인일수 밖에 없었다. 길거리를 나서면 소녀와는 너무다른 사람들이 소녀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중 몇몇은 "불쌍한 아이같으니"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소녀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 그녀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지금껏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져 바라기만 했었던 부모님이 있었고, 동생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행복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소녀는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전 자신이 떠나왔던 그 곳에 가게되었다. 인도, 그 곳은 그녀가 떠나온 곳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버린 곳이기도 하고 그녀를 버린 가족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20년 전 그곳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다시 그 곳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큰 일이었다. 그녀의 귀향(이라 할 수 있겠지?)에 그녀의 여동생도 그녀의 부모님도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곳으로 향했다.

 

인도의 큰 도시 뭄바이에는 그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인도의 추억이 있는 장소가 있었다. 그녀는 그곳 고아원에서 그녀와 비슷한 처지인 아이들과 함께 수녀님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애교많고 눈치빠른 그녀를 수녀님들을 유독 예뻐했다. 하지만 수녀님들의 사랑도 관심도 그녀의 부모님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부모님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녀는 스페인에서 새로운 가족을 꾸밀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 긴 시간은 그녀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쓰던 말 대신에 스페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새로운 기억과 추억이 쌓일수록 인도에서의 추억은 인도어와 함께 점차 잊혀져 갔다. 그래서 인도에 도착한 그녀는 겉모습만 인도사람이었지 실제로는 유럽인이었다. 그리고 인도인들의 삶의 모습은 그녀에게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봉사활동과 더불어 자신의 흔적을 찾았지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비극적인 사실만을 대면해야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처음 인도를 방문한 후 그녀가 써낸 작품은 그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 주었고, 한 방송국에서 그녀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인도를 찾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좀 더 잘 보살펴줄 사람을 찾아 수도원에 그녀를 부탁했었고, 그녀의 언니는 아직도 인도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을 찾았고, 비록 말한마디 직접 나눌수는 없었지만 서로가 가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버렸다는 원망이 가득했던 자리에는 가족에 대한 이해와 운명에 대한 깨달음이 대신하게 된다.

 

이 책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났던 한 여인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녀는 용기를 냈고, 그 결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버렸다고 여겼던 가족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었으며, 또한 입양아인 자신을 사랑으로 끌어안았던 양부모님에 크나큰 사랑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 여정은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녀는 더이상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녀와 같은 피부색인 사람들을 피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을 버린 땅의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부모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출생의 근원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 그 자체인 것이다. 아샤 미로는 그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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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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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오직 한 여자를 사랑했다. 이성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을때,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시절에는 그저 그녀는 그에게 있어 한 폭의 풍경화에 지나지 않았다. 다가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런 존재, 그냥 지켜볼 수 있는 아무런 감정의 대상이 되지 못하던 존재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사랑의 떨림이 무엇인지, 그로 인한 미칠것 같은 열병을 앓을 나이가 되서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평생에 단 한번 뿐인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은 로맨틱하지도 애절하지도 못했다. 그는 평생의 단 한 사랑을 2번 헤어졌고 3번 다시 만났다. 그의 사랑은 휴이를 제외한 세상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무심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 것은 오직 그가 남과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들 중 하나였다.

 

막스 티볼리. 그는 세상에 남과 다르게 태어났다. 그는 특별했다. 아니 기괴했다. 그는 70세 노인의 외모로 세상에 태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지는 외모를 가졌다. 신은 그에게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벌을 주었다. 이유는 뭔지 몰라도 그 때문에 막스는 외로웠다. 자신을 외모와는 상관없이 사랑해주던(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이'에 맞추어 살아간다. 때문에 다가온 첫사랑에게 진심을 다했던 첫키스가 이별의 도화선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녀를 만났을때 그는 '막스 티볼리'가 아닌 '아스가르 반 달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별 후 그녀를 만났을 때는 '막스 티볼리'도 '아스가르 반 달러'도 아닌 '리틀 휴이'가 되어야만 했다.

 

막스는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왜 신은 그에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형벌을 주었을까? 다름과 틀림에 민감한 인간에게 그의 경우는 축복이 아닌 형벌, 저주였음이 틀림없다)로 평생을 살아갔다. 그리고 그렇게나 숨겨왔던 사실을 밝히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자신을 떠났던 아내와 아들 곁에서 '리틀 휴이' 로 살아가면서 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이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아내와 아들의 곁에서 -비록 자신의 정체를 알릴 수는 없지만- 행복했지만 그들의 행복을 위해 처방전을 위조하고 극약을 모은다. 그리고 나중에 아들 새미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될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인생을 고백한다. 자신의 탄생과 자신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실종, 평생을 같이 한 친구와의 만남과 우정까지. 막스는 자신의 전 생애와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한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그의 고백서임과 동시에 그의 인생을 담아낸 자서전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는 영화의 티저영상을 봤을때 나는 원작인 동명의 소설 보다는 이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꾸로 나이가 들어가는 외모를 가진 남자의 평생의 단 한 사랑. 그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중심 이야기가 [막스 티볼리의 고백]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과는 달리 쓸쓸히 극약을 삼키고 죽어갈 막스 티볼리의 삶은 비록 부모에게는 버림받지 않았으나 노인요양원에 버려졌던 벤자민보다 더 슬픈 생애가 아니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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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편지 - 유목여행자 박동식 산문집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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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행자'다. 그는 세상을 발길 닫는 데로 걸으며 살아간다. 그는 내게 있어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나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며 살고 싶다. 하지만 주어진 재능이 없는 것보다도 더 슬픈 것은 내게는 떠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떠날 용기가 있었기에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여행길의 선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발목을 잡는 '생활의 그 무언가' 보다는 '떠남의 갈망'이 더 컸기에 여러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었다. [여행자의 편지]는 그러한 산물이다.

 

그는 결코 편한 곳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낙후된 곳, 불편하고 더러운 곳을 찾아다녔다. 그에게 있어 깨끗하게 정리된 호텔, 수발을 들어 줄 웨이터가 있는 레스토랑은 아마 상상도 하지 않을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평범한, 삶에 쫓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장통 한 귀퉁이에서 바케트로 만든 샌드위치를 사먹으면서, 시골 교정에 걸린 타이어 휠과 점심도 먹지 못한채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타지의 맨바닥에 몸을 부딪혔다. 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관광'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그는 허술한 숙소에서 만난 아직은 어린 청년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풀어 건낼 수 있었고, 그들 또한 그에게 맛있는 브리또를, 트럭 짐칸의 한 켠을 내주었다.

 

그는 내가 살 수 없는, 전혀 가능성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난 가난도 싫고 그로 인한 더러움도 견딜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일정한 규격에는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히 일반적인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는 왜 이렇게 후진국만을 여행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그저 그는 높은 곳에서 자기보다 못한 곳을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다'는 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것은 다 질투 탓이다. 내가 가지못한 그 길, 앞으로도 가지 못 할 그 길을 당당하고 겁없이 걸어가는 그에 대한 부러움과 그로 인한 시기 탓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의 그 긴 여행의 짧은 한 순간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긴하지만, '나보다 못 한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도감과 측은지심, 가진 자로서 못가진 자를 보는 동정심'을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가 진정으로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여행자는 구도자와도 비슷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는 여행을 하면서 경쟁적인 삶에서는 쉬이 생각할 수 없었던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우리가 언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무덤가에서 화장터에서 마주한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을 생각한다. 관광이 아닌 여행은 그러한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박동식의 [여행자의 편지]는 그러한 소중한 기회들을 통해 그가 깨닫고 얻어낸 여러 결과들을 담아낸 책이다. 나처럼 편안한 관광은 떠날 수 있지만, 진정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 그는 여행을 떠나보라고 한다. 떠나서 낯선 이들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 어떻냐고 묻는다. 그렇게 떠났다 어차피 돌아올 삶은 지금과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내가 없는 세상에 큰일이라곤 생기지 않음을, 나 하나 대한민국을 잠시 비운다고 일이 잘못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겁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의 유혹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저 그의 책을 읽으며 미세한 두근거림과 갈증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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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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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어라? 이건 또 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제목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는 있지만 가격때문에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명품 브랜드가 당당하게, 그것도 2개씩이나 올라가 있다. 거기다 작가는 30년동안이나 패션컨설턴트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이 책은 '명품'과 '패션'에 관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겠거니 지레짐작 할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는 그런 패션 교양서나 '된장녀'열풍을 타고 나온 책은 아니다. 비록 제목에는 명품 브랜드가 들어가 책의 정체성을 약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이 책은 작가가 30년간 일로서 때로는 사적으로 방문해 온 이탈리아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행에세이일 거라는 성급한 추측은 하지 말자. 그녀가 이탈리아에 대해 잘 알고, 그녀에게 이탈리아는 '제 2의 고향'으로 부를만큼이나 친숙한 곳이긴 하지만 이 책은 관광객을 위한 책은 아니다. 이탈리아라는 국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사람 냄새나는' 이탈리아에 관한 책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강산이 3번은 후다닥 바뀌고도 남을- 동안 학업으로, 공적인 업무로, 그리고 사적인 이유로 이탈리아를 찾았던 작가는 대중들이 이탈리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아닌 진짜 리얼한 이탈리아를 소개한다. 이탈리아 안의 지역감정-우리는 영남과 호남이지만,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과 이탈리아가 왜 패션으로 유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패션 전문가로서의 의견, 그리고 그녀가 만난 여러 부류의 이탈리아 사람들. 그녀가 비행기에서 만났던 젊은 여성, 승무원 아가씨에게 그랬듯, 마치 수다를 떨듯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읽다보면 어느새 이 아줌마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푸욱 빠지게 된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야기의 구성이 약간 산만한 듯도 하다. 하지만 이 작가가 처음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작가는 진짜 '친구에게 수다 떨듯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약간 산만해 보이는 구성도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전문가가 쓴 이야기도 아니고, 또 작가의 본업을 살려 전문적으로 '이탈리아 패션, 명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그냥 한 명의 여성이 30년간 들여다 본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베르사체니 아르마니니 하는 명품으로 대변되는 이탈리아가 아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사는 생활로서의 이탈리아를 알 수 있는 즐거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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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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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내게 있어 책이나 활자로 기억되는 작가가 아니다. 지난 어느날 사람이 빼곡히 들어찬 극장에서 그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Atonement].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한 그 작품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저녁만찬때에 입었던 그 짙푸른 녹색 드레스 만큼이나 너무나 인상깊게 내 뇌리에 기억된다. 그리고 이언 매큐언. [Atonemnt]의 원작 [속죄]를 시작으로 그의 여러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몇 해전에 출간되었던 작품들도 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마치 운명이라도 되듯이 내 시선안으로 하나씩 들어와 박혔다. 우울한 빛을 한껏 머금은 푸른 색 표지의 [체실비치에서]도 그렇게 내 시선 안으로 넘어온 책이었다.

 

소년, 소녀의 티를 채 벗지 못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했다. 40여분간의 예식을 마치고 그 둘은 신혼여행지인 도싯해안가에 위치한 호텔을 찾았다.  법적으로,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인정한 부부인 두 사람은 호텔에서의 첫 식사부터 잔뜩 신경이 예민해 있다. 그것은 예식의 후유증도 아니었고, 서로가 탐탁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오래된 소고기 스테이크도, 옥수수전분이 말라버린 그레이비 소스도 알아차리지 못 할만큼이나 서로에게 푸욱 빠져있었다.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부부로서 처음으로 맞는 그들의 첫날밤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때문이긴 하지만 서로 상반되는 입장과 처지 탓에 그들은 사랑과 새로운 출발의 두근거림으로 가득해야 할 첫 날에 이별을 맞이한다.

 

에드워드는 에드워드대로 과거 그의 의욕이 충만하여 저질러버렸던 인생의 아픈 기억탓에 플로렌스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플로렌스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에드워드의 행동에 실망을 느낀다. 그래서 서로는 몇 시간 전 서로의 눈빛을 보며 느꼈던 사랑을 꽁꽁 묶어 마음속 귀퉁이로 던져버리고 서로에게 아픈 말을 해대며 싸운다. 뻔히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상황과 그로 인한 흥분 탓에 결국에는 후회해 버릴 말을 내뱉고 서로에게서 등을 돌린다.

 

처음부터 서로의 눈을 잡아 끌어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헤어져 버린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예물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결혼은 없었던 일이 되고 에드워드는 불같았던 이별의 그 날 이후, 그 화가 차디차게 식어버린 그 후에도 플로렌스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인생 최고의 날을 최악의 날로 만들어버리며 헤어졌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기억했다. 혹시나 길을 가다 마주치지는 않을지, 혹시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을 그녀가 걸어가지는 않았을지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만약 그 날, 에드워드가 뒤돌아 떠나는 플로렌스를 큰소리로 불러 멈춰세웠다면, 아니 그녀를 쫓아가기라도 했었다면 에드워드의 인생은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녀를 소리쳐 부르지도, 쫓아가지도 못했다. 그저 그는 돌아서 그의 길을 갔을 뿐. 그리고 그는 그렇게 40여년을 살아왔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플로렌스를 떠올리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린 날의 에드워드에게는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열정은 있었지만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인내는 없었다.

 

이언 매큐언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마른 체격의 왠지 완고해보이는 인상을 주는 작가이다. 때문에 처음 그가 [속죄]같은 작품을 썼다는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이언 매큐언 특유의 섬세한 표현들은 어찌보면 [속죄]와 같은 작품이 굉장히 날카로와보이는 그의 인상과 어울려보이기도 한다. [체실비치에서]는 그러한 이언 매큐언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남자와 여성의 '육체적 결합'에 대한 상반된 입장과 생각, 너무나도 풍성한 묘사 그리고 담담한 문체까지. [체실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독특한 매력을 짧은 분량안에 몰아넣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심리를 표현해 내는 그의 표현력은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이언 매큐언이 섬세하게 써내려간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비록 알지 못했지만, 독자들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잊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들의 행복하지 못한 삶에 안타까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은 긴 여운으로 남아 [체실비치에서]를 아름다운, 그렇지만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로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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