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언어로부터 잘못된 개념이 나온다  

[소준섭의 正名論]<2>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 愛人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정작 자신의 부인(婦人)이나 남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애용하고 있는 이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사실 대단히 문제 있는 용어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남편이나 부인이어야 할 노릇이지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면 곤란하지 않는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애인'이라는 의미는 '정인(情人)'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야 정확하고 타당하다. '

이러한 '애인'과 같은 용어는 이러한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중들의 사랑과 애정관 그리고 가족관의 문제에 있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이다"라는 그릇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심어주게 된다. 특히 애정 문제에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애인(愛人)이라는 이 한 단어의 향방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

횡단보도와 횡령

'횡단보도(橫斷步道)'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횡단(橫斷)'이라는 단어는 "옆으로 끊는다."는 뜻으로서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실로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횡단보도'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당연히 '걸어서 옆으로 통과하는 길'로서 여기에 '옆으로 끊는 길'이라는 뜻을 지닌 '횡단(橫斷)'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억지 조어이다. 중국에서는 '통과하다'는 뜻을 지닌 '천(穿)'을 붙여 '횡천(橫穿)'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옆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횡행도(橫行道)' 혹은 '횡행도로(橫行道路)'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에 '횡단(橫斷)산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데, 중국 사천성(四川省)과 운남성(雲南省)에 위치한 이 산맥이 동서 간의 교통을 '횡으로 끊어 놓고' 있기 때문에 '횡단(橫斷)' 산맥이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열차를 '횡단열차'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더욱 모순적이다. 그 열차는 분명 유럽과 아시아를 '횡으로 끊어 놓는' 열차가 아니라 '횡으로 이어주는' 열차가 아닌가? "교수노조, 국토종단 행진에 나서"나 '국토종단 마라톤' 등에서 보이는 '종단(縱斷)'이라는 용어 역시 '종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명백하게 논리에 위반되는 '비논리적' 조어(造語)에 해당된다. 이러한 비논리적 용어들의 범람은 이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논리적 사고를 가로막게 되고, 결국 국가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도(步道)'라는 말도 '걸어서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므로 '보(步)'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보행(步行)'을 사용하여 '보행도(步行道)'라고 쓰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한편 '횡령(橫領)'이라는 말도 많이 쓰이는데, 이 말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본의 전통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일본 고대시기에 병사를 통솔하고 감독하는 의미를 지닌 '압령(押領)'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 '압령'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영지를 힘으로 빼앗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타인의 물건을 빼앗다."는 의미로 전용되었다. '횡령(橫領)'이라는 용어는 메이지(明治) 초기까지 아직 출현하지 않았는데, 빼앗는 대상이 토지만이 아니라 금품까지도 포함됨에 따라 '횡취(橫取)'라는 말로부터 유추되어 '횡(橫)'이라는 글자가 부가되면서 '횡령(橫領)'의 용어가 나타났다고 설명된다. 일본에서조차 그 유래가 분명치 않은 용어를 정확함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우리 형법상의 법률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함흥차사'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함흥'이 무슨 말인지, '차사'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 말이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다.

참고로 우리가 "횡재했다!"고 좋아하는 '횡재(橫財)'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운 좋게 얻은 것'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이 말은 "불법적으로 얻은 의외의 소득'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寸志와 料金 그리고 名品

"교사에게 학부모가 (불법적으로) 주는 돈"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촌지(寸志)'도 일본식 조어로서 뜻이 통하지 않는 용어이다. 더구나 이 '촌지'라는 말은 대단히 '위험한' 용어이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행위는 명백히 불법적인 행위인데도 오히려 '촌지(寸志)'라는 용어는 "마음의 조그만 성의"라는 대단히 좋은 의미로 포장되어 이 말을 사용하면서 전혀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을 제공하는 측면을 지니게 된다. '촌지'라는 용어의 사용은 결국 '위법'과 '편법'을 합리화하고 미화시킴으로써 사회구성원들에게 법의식과 가치관의 혼란 및 왜곡을 조장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란 이렇듯 우리의 행위와 사고방식에 일거수일투족 심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것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기능직'이라는 용어를 바꾸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당연히 크게 환영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당사자들은 '기능직'이라는 용어로 인하여 그 동안 자기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불명예를 겪어야 했다. 지금은 '교도관'으로 바뀐 '간수'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언급한 '촌지'와 정 반대로 일종의 '사회적 약자' 층에게는 일부러 분명한 '불명예' 딱지를 붙이는 이러한 용어들은 '모욕적 언사'의 범주에 속한다.

또한 기껏해야 '재료 혹은 원료 값'에 지나지 않을 '요금(料金)'이라는 단어로써 '값' 혹은 '비용'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나, '손을 몇 번 움직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서비스 비용'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수수료(手數料)' 역시 일본식 조어로서, 모두 진실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은폐하면서 적당히 둘러대는 용어라는 점에서 상기한 '촌지'와 함께 '정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용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명품(名品)'이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서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명품'이란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뛰어난 물건'이라는 확실한 가치관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명품'이란 사실 '유명상표' 혹은 '고가품'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만일 '유명상표'나 '고가품'이라는 용어의 사용으로써 정확하게 표현해진다면,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합리적' 판단 기준에 의하여 그 상품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용어는 용어 자체에서 이미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 기준을 압도하여 공정한 경쟁의 토대를 와해시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결국 '명품'과 같은 용어는 합리적 판단 기준을 파괴하고 나아가 공정 경쟁을 붕괴시켜 '건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年下와 小康

"소강 상태를 보이다"의 '소강(小康)'이란 원래『시경』에서 비롯된 말로서 백성들이 부유하고 안락하게 삶을 영위하는 상태를 가리키며, 일찍이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20세기 말까지 이 '소강(小康)의 수준'을 이루겠다는 1차적 목표를 설정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말을 "상황이 진정된 상태"라는 뜻으로 사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용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편 요즘 유행하는 '연하(年下)의 남자'라고 할 때 '연하(年下)'는 한자어로서 중국에서는 음력으로 '연초(年初)'나 '새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나이가 자신보다 어린'이라는 뜻으로 이상하게 바꿔서 사용한 것은 바로 일본이다.

출세, 돌발, 죄송

'출세(出世)'를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사용례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다."라는 의미라면 오히려 '출명(出名)'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부합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출세(出世)'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정확히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다. 출생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배달(配達)'이라는 말도 한자어로만 봐서는 그 뜻을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고, 흔히 쓰이는 '행사(行事)'나 '역할(役割)' 역시 한자로 해석하기 어려운 일본식 조어이다.

'돌발(突發)'은 일본어로서 '돌(突)'과 '발(發)'을 인공적으로 합쳐 만든 억지 조어이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의 '죄송(罪悚)' 역시 '죄(罪)'와 '송(悚)'이라는 글자를 붙여 억지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소(居所)'는 '거처(居處)'라고 바꿔야 할 일본식 조어이다.

발명과 방송, 이익, 진보

'발명(發明)'이라는 단어는 원래 "죄인이 스스로의 결백 등을 밝히다, 변명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사용되던 한자어였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다"의 뜻을 가진 일본어로서의 '발명'이라는 용어가 수입되면서 원래의 용례를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放送)'이라는 말은 본래 "죄인 등을 놓아 주다"라는 뜻이었는데, "전파에 의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방송(放送)'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진입함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변모하였다.

또한 '식상하다'의 '식상(食傷)'은 원래 "상한 음식에 의하여 비위가 상한 병증, 즉 식중독"이라는 뜻으로서『조선왕조실록』에도 이러한 용례가 있으나,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식상하다'는 일본어가 들어온 뒤 원래 지니고 있던 의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이익(利益)'이라는 단어는 우리의『삼국유사』에서 '이롭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등 고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나, 'interest'의 일본 번역어로서 이 땅에 들어와 경제적 의미로서 정착되게 되었다.

'공원(公園)'은 이를테면『조선정조실록』등에서 '관유(官有)의 정원(庭園)'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park'의 번역어로서 일본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진보(進步)'라는 단어도 원래 우리나라에서 "발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다"로 쓰이고 있었으나, 일본에 의하여 'advancement'와 'progress'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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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기사다. 공자의 정명론에 빗대어 우리나라의 잘못된 개념들을 논한다. 재미있는 주제다.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소준섭의 正名論]<1>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천황에 귀의하다"는 뜻의 '귀화(歸化)'

우리나라에서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귀화(歸化)'라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 용어의 의미는 원래 "군주의 공덕(功德)에 감화를 받아 그 신민(臣民)으로 되다"는 의미로서 '귀순(歸順)' 혹은 '귀부(歸附)'와 그 뜻이 통하는 말이다. 일본에서 이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천황에 귀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일본 법무성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용어를 정식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에 있어 '귀화'라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민족 감정에 비추어 언어 사용에 있어 대표적인 오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귀화'라는 이 용어는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라 '감정의 동화 혹은 귀순'을 내포하고 있는 감정적, 주관적 범주의 용어로서 국적 관련 용어로서는 부적절하다.

이러한 용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현상은 실로 우리가 일상생활 그 자체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잃은 상태와 다름이 없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이 '귀화'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고 '입국적(入國籍)'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천황의 공덕에 감읍하여 그의 신민이 되겠다."는 의미를 지닌 귀화(歸化)라는 용어를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 일제 식민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귀화'라는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기본과 체계가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지표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오늘의 슬픈 징표이다.

'무리를 지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정당(政黨)'

현재 'party'라는 영어 단어는 모두 '정당'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당(黨)'이라는 한자어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논어』에도 "君子, 群而不黨"이라 하였다. 즉, "군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무리를 이뤄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자(朱子)는『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당(黨)'에 대하여 "相助匿非曰黨", 즉, "서로 잘못을 감추는 것을 黨이라 한다."라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당(黨)'이라는 글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성어'로 추천했던 '당동벌이(黨同伐異)' 역시 "자기와 같은 무리는 편들고, 자기편이 아니면 공격하다"는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하나의 명제에서 이미 '당(黨)'이라는 단어는 '악(惡)'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당쟁(黨爭)'과 '붕당(朋黨)' 그리고 '작당(作黨)하다'의 '작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黨)을 아무리 잘 만들고 그 활동을 잘 해본들 모두 '작당', 혹은 '당리당략'이라는 좋지 않은 부정적 이미지의 틀을 결코 넘어설 수 없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정당'이 이렇듯 좋지 못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당(黨)'이라는 용어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하여 '당(黨)'의 본래 의미를 너무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모두 모여서 잘못을 감추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정당(政黨)'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인하여 그 '당원'이나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부지부식 간에 '당(黨)'의 좋지 않은 이미지가 내포되어 '패거리를 짓고', '상대방은 공격하면서', '함께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즉, '당(黨)'의 의미와 부합하는 행위가 '정당'의 본연의 성격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 정당화시킬 여지를 만들어 놓게 된 측면이 일정하게 존재한다. 만약 '정당'의 '당' 자 대신 '사(社)'나 '회(會)'를 사용하여 '정사(政社)' 혹은 '정회(政會)'라는 용어라는 번역어를 채택했다고 가정할 경우, '사(社)'와 '회(會)'에는 '당(黨)'에 내포된 바의 '패거리', '편법' 등의 의미 내지 이미지가 없고 대신 '일정한 규율성을 띤'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소속하여 활동하는 자세 혹은 태도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비(非)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무(無)핵화'라고 해야

흔히 말해지는 '한반도 비핵화(非核化)'라는 말도 실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에 속한다.

'비핵(非核)'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핵이 아니다"라는 뜻으로서 결국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는 핵이 아니다"라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뜻은 "한반도를 핵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의 내용이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무핵화(無核化)'라고 바꿔 사용해야 정확하다.


오역에서 비롯된 '주의(主義, -ism)라는 일본 번역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용어에서의 '주의(主義)'라는 단어 역시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잘못된 오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ism'이라는 영어의 번역어로서 일본이 만들어낸 이 '주의'라는 용어의 출전은『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원앙조착열전(袁盎晁錯列傳)」중에 나오는 "敢氾顔色以達主義"라는 문장이다. 일본에서 출판된『대한화사전(大漢和詞典)』은『태사공자서』중의 상기한 문장을 '주의(主義)'라는 용어의 한문(漢文) 출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착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상기한 문장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감히 올바른 말로 직간하여 군주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도 개의치 아니함으로써 군주의 언행이 도의(道義)에 부합되게 하였으며"이다. 다시 말해『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에 나오는 '주(主)'는 주상(主上)을 가리키며, 따라서 여기에서의 '달주의(達主義)'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킨다."의 뜻이 아니라 "주상(主上)으로 하여금 도의에 부합되게 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의(主義)'는 처음부터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구성성분으로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서 "이름(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명(名)'은 이제까지 주자(朱子)의 해석에 따라 '명분'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리하여 '정명(正名)'이란 '올바른 명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한(漢)나라의 정현(鄭玄)은 "正名, 謂正書字也. 古者曰名, 今世曰字(정명이란, 올바르게 문자를 쓰는 것이다. 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라고 하여 이를 '자(字)', 즉 '문자'로 해석하였고, 또『주례(周禮)』"외사(外史)"에는 "古曰名,今曰字(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이라고 하여 '명(名)이 글자(字)임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儀禮』"釋文"에 "名, 謂文字也", 즉 "名이란 文字를 말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곽말약(郭沫若) 역시 "'정명(正名)'이란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대의명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물의 이름, 특히 사회관계상의 용어이다"라고 규정하였다.
 

  

 

 

 


즉, '명(名)'이란 '문자(文字)' 혹은 '글자'의 의미인 것이다.

『주역』은 '털끝만큼 작게 틀렸어도 그 결과는 천리나 되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失之毫厘, 差以千里).'라고 말하였다.

공자는『춘추』를 저술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기술하면서 어느 용어를 선택할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주는 스스로 왕을 칭했으나 공자는『춘추』에서 당초 주나라 왕이 책봉했던 등급에 의거하여 그들을 '자'작(子爵)으로 낮춰서 기록하였다. 또 '천토(踐土)의 회맹(會盟)' 중국 춘추전국 시대 진(晋)나라 문공이 초나라를 물리친 후 여러 제후국의 제후들과 천토에서 회합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진 문공은 천하의 패자로 인정받았다.은 실제 진나라 문공이 천자를 부른 것이었으나 그것을 좋지 않게 평가하여 다만 '주나라 천자가 하양(河陽)까지 순수(巡狩)하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춘추필법'에 의해 당시 사람들의 행위가 예법에 위배되는가의 기준을 삼고자 하였다. 공자는 관직에 있을 때 모든 일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였으며 결코 독단적으로 혼자서 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춘추』는 끝까지 혼자 집필하고 손수 교정을 보았다. 학식이 많은 제자인 자하에게조차 한 글자의 도움조차도 구하지 않았다. 공자는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전에 '자본주의 맹아(萌芽) 논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로 조선에 자본주의를 이식했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느냐의 여부에 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이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의 의견 차이를 둘러싸고 발생하였으며, 결국 "과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자본'이라는 용어와 '주의'라는 용어 모두 일본인이 새로 만든 말이었고, 또 '자본주의'라는 용어로써 서양의 'capitalism'을 번역한 것 역시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근대화 시기 중국의 저명한 학자 옌푸(嚴復)는 'capital'을 '자본'이라고 번역한 일본 방식을 반대하면서 대신 '모재(母財)'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만약 이러한 방식으로 'capitalism'이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번역되지 않고 다른 용어로써 번역되고 이해되었다면, 이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사고를 구체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것은 인간 생활 전반에 깊숙이 관련되면서 인간의 본질 및 인간생활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언어는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생활은 인가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서로 상이한 개념과 이미지가 그 용어라는 그릇에 담겨져 사용되고 그것은 확대 · 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념이란 특정 언어로 표현되어 특정한 내용을 내포하게 되는 것으로서 따라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공자 사상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자가 '개념'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일본은 근대 이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개념, 즉 언어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곧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 만들어낸 개념에 의하여, 일본인들의 언어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한 우리는 계속 일본의 총체적인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 필자 소개


▲ 소준섭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1978년에 입학해 1997년 졸업했다. 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담았으며 고 제정구 씨등과 함께 상계동, 사당동 등에서 도시빈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냉전 이후 한반도 정세변화와 주한미군의 지위).

현재 국회도서관 중국담당 해외자료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빈민연구>(1985년), <史記,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1992년), <서양보다 앞선 동양문화 91가지>(1997년) ,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史記>(2008년) 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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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변희재 때문에 욕보고 있는 우석훈의 글이다. 우석훈의 가벼운 말을 가지고 그의 근본적인 사상 검증과 같은 재판을 벌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근데 변희재에게 낚인 것은 분명하다. 우석훈의 통찰 가운데 하나가 이 지역 토호에 관한 통찰인데 이것을 좀더 사상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필요성을 나는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글이다.

 월드컵이 결국 지방자치를 망쳤다.  

 

 

 

 

한국 경제는 독특하다. 한편으로 자랑스럽다면 자랑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경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특별한 '압축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가 만만치가 않다.  

많은 학자들은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이러한 압축성장이 자연스럽게 선진국 경제로 바뀌고, 민주주의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추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테제는 이러한 희망을 반영한 사회적 테제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의 희망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은 이러한 10년 전의 희망과는 다르다. 군사 정권에서도 없었던 철거민에 대한 살인적 경찰 작전이 그야말로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또한 대운하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간판만 바꾸어서 다시 살아 돌아왔고, 정부는 국채까지 발행해서 건설경기 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강남 집값을 가난한 사람들의 돈으로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솔직하게 이유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최근의 스포츠 마케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쇼비니즘 마케팅의 강화라는 그런 점잖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월드컵이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들 중에 기초의원 선거나 단체장 선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참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선거에서 움직여본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아주 공교로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기초선거 주기와 월드컵 주기가 딱 일치하고, 대체적으로 지방선거가 한참 벌어질 때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 예선전을 치르게 된다. 

2002년 한나라당이 완전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경이적인 사건과 동시에 벌어졌다. 물론 그 해에는 노무현 열풍이 불면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일단 형성된 지방자치에서의 특정정파 독점 구도는 지금까지 해체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당과 당시 열린우리당이 연정을 해서 겨우 교섭단체를 꾸릴 수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은 쏠림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초 단위에서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지역은 대부분이 지방 토호들의 이익에 아주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고, 그 기간 동안 역설적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아주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기초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라도 지역은 어떤가? 

중앙정치에서는 여야로 나뉘어서 민주니 반민주니 갈라져 있는 것 같지만,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면 지역 자치라는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토호연합당이다. '개발연대'라고 부르면 딱 좋은 이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지역에 '개발 호재'를 만들려고 한다. 이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간단하게 대운하를 살펴보자. 중앙에서는 토건경제의 해체라는 거창한 구호를 걸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울에서 하는 얘기이다. 민주당이 경인운하에 대해 보이는 어정쩡한 태도나 4대강 정비구간으로 영산강이 시범사업으로 된 것은 지역에서 민주당이 묵인해준 결과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는 실제로 토호들만 있고, 그 지역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태주의자들이나 혹은 문화 프로그램의 옹호자들이 없느냐, 정말로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지역토호와 그들의 추종자만으로 주민들이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전국의 모든 지역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는 생태적 지역발전을 희망하는 시민단체들도 있고, 또 "내 고향 지키기"에 나름대로 매진하는 그야말로 '건전한 보수'들도 존재한다. 만약 한국의 지역이 지방토호들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서 일방통행했다면, 한국 경제는 더 일찍 무너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한 개발주의 열풍 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풀뿌리의 새로운 흐름이 서울을 바꾼다 
어쨌든 전체적인 형국을 보자면, 2002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된 '토호 전성기'가 거꾸로 중앙을 움직여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이 위에서만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잘 바뀌지 않는다. 지방토호들의 권력을 해체하거나, 해체가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견제는 할 수 있는 풀뿌리의 새로운 흐름 없이 서울에서의 그 어떤 노력도 '민중적', '대중적' 혹은 '전국적'이라는 수식어를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공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여름의 촛불집회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 지독할 정도의 중앙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서울에서 끝내리라! 이 슬픈 중앙형 구호들의 시대도 결국 해체돼야 한다. 지방에서 무엇인가 흐름이 생기지 않으면 이 시스템의 다음번 진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지방으로 내려가 '브나로드'를 다시 한 번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런 일들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지방 자치 그것도 풀뿌리 자치에서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 역시 기계적인 계몽주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98년 IMF 때 발생한 귀농 운동 이후, 크게 간판을 걸지는 않았어도 일종의 브나로드라고 할 수 있는 하방운동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10년, 다시 지방선거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어김없이 월드컵도 찾아올 것이고, 사람들이 "이번에야 말로 16강을" 외치면서 TV 앞에 앉아있는 동안, 경상도에서는 한나라당이, 전라도에서는 민주당이, 너무 쉬운 토호들이 주도하는 개발연합체가 재구성될 수도 있다. 이래서는 한국 경제가 분산형으로 바뀌기도 어렵다. 또한 명박 정부의 '삽질 경제'에 조그만 흠이라도 만들기 어렵다. 

지역에서 토호식 개발정책이 지역발전의 모든 옵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서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진짜 주민대표들이 개발연대의 핵심에 있는 지방토호들의 동토에서 '바늘 하나 꽂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문제투성이 기초자치를 아예 없애고, 어차피 한국은 중앙에서 그냥 통치하는 국가라고 광역지자체로 가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공간은 우리에게 맞지 않으니 치워버리자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어려워도 지역에서, 그리고 풀뿌리에서 무엇인가 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지방토호들의 땅값 올려주기에 불과한 토건시대가 해체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한국에서 토호들과 외지 토지보유자의 세력이 가장 강성한 곳은 바로 제주도이다. 알짜 땅은 이미 외지인들이 다 가지고 있고, 그나마 남은 제주도 시민들은 토호들의 위세 앞에서 한 마디도 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치의 상징이 아니라, 토호들과 외지인들이 결탁된 '개발 연대'에 대한 제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녹지대비 전구 최고의 골프장 지역, 제주 군사항을 축으로 평화의 섬이 아니라 군대의 섬으로 변하는 추이, 광역 지자체 최고의 유아 아토피 발병률, 그리고 20대와 30대의 60% 가까이가 저신용으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인 지역, 그곳이 바로 우리의 제주도이다. 

2010년 월드컵 장애물을 넘어서자 

문제는 자치냐, 특별이냐, 그런 토호들이 갖다 붙인 허울만 좋은 명분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민이 살기에 편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조건을 어떻게 지역 생태와 결합시키면서 만들어 낼 것인가, 즉 토호의 눈이 아니라 주민의 눈으로 그 지역을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런 기초 정치의 지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 말은 좋다. 이걸 누가 할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공간이 열리는 시점이 4년마다의 주기인 지방선거 시점이고,  그게 바로 2010년이다. '개발'이라는 말 대신, '정주(human settlement)'라는 말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관광'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정주'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역과 중앙이 공존할 수 있는 선진국 경제로 전환되는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놀러오기에 좋은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보니 살기 좋은 곳"을 만들어야 지역경제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이런 것을 구현한 '점'들이 '면'이 되는 날이 바로 선진국이 되는 날이리라. 

불안하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들에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믿는 주민들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2010년 월드컵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 시점이다.

어렵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버릴 때가 아니라, 지방토호들과 지역경제의 사활을 건 싸움을 한 번 해야할 때이다. 그래야 중앙정치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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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발판으로 신냉전의 키를 쥐고"

올림픽 이후의 중국 3) 대외전략

 

 

 중화(中華)를 향한 먼 길
  
  근대 이후 중국인들이 품어 왔던 '100년 동안의 꿈'(百年夢圓)이라는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식만큼이나 화려한 폐막식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지극히 '중국적인' 문법과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했다. 개혁개방 30년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중국 모델의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다.
  
  다만 중국은 올림픽 내내 거대한 스케일과 물량주의를 드러내면서도 중국위협론에 대한 우려 때문에 '화(和)'라는 화두를 버리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부흥이 '패권에 의한, 패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중국발 평화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이러한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가 나타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후쿠야마 류의 '종언된 역사'가 부활할 징후가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축포가 울려 퍼지던 그날,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폭격을 감행했다. 미국과 서방은 강한 블록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러시아도 미국의 일방주의가 독주하는 질서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래서 중미관계와 중러관계를 모두 중시하는 중국의 향방에 따라 국제질서는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중국이 강대국에서 슈퍼파워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슈퍼파워로 성장한다 해도 미국에 필적하는 초강대국(hyper power)이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공격적인 현실주의 정책으로 표출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더구나 올림픽 후로 미뤄두었던 국내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강대국의 면모를 드러내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후진타오 체제의 국가목표인 '위대한 중화의 복원'과 같은 세계전략을 감추거나 '힘을 기를 때까지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대외전략을 고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일초다강(一超多强) 체제를 현실로 수용하면서도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다극화를 추진하는 노력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주권 존중과 일방주의에 반대한 후진타오의 '조화(harmonious) 외교'도 올림픽이라는 조심스러운 공간을 벗어나 보다 확대될 것이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② 경제 :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 앞서 게양되고 있는 오성홍기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뜨거운 감자, 미국
  
  중국 대외전략의 핵심은 미국과의 양자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체제와 부시 행정부가 양국관계를 전략적 경쟁자 관계에서 이익상관자(stakeholder)로 규정한 것도 이러한 상호 인식의 결과이다.
  
  미국은 이미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함께 이란, 이라크, 북핵, 테러 등 이른바 4대 사안을 비롯한 국제문제에 대해 협력하는 것이 절실해졌고, 중국도 미중관계의 악화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엔을 무시한 미국의 제국적 행태에 대해 체질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미국도 인권, 민주화, 종교의 자유, 타이완 문제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키려는 정책(peaceful evolution)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결국 미중 양국은 '대결하면서도 판을 깨지 않는(鬪而不破)' 채 전술적 유연성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자 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새로운 행정부의 대(對) 중국정책은 새로운 변화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자국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주변 국가와의 선린관계를 강조해왔고, 그 결과 국경의 불안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좋다고 평가받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
  
  중러 양국은 이미 동맹 직전의 최고 수준인 '전략적 협력(協作)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비단 에너지 협력 뿐만 아니라, 미국을 겨냥해 일방주의, 강권정치, 미사일방어체제(MD), 인권 문제를 통한 내정간섭에 반대하고 유엔에서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스스로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축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에도 주력했다.
  
  후진타오가 올림픽 직후 한국을 경유해 상하이협력기구 국가를 순방하기로 한 것도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중정책에 대한 이른바 '위험분산전략'(hedging strategy)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인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적인 텃밭으로 알려진 제3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저개발국과 극빈채무국에 대해 채무를 탕감하거나 특혜대출을 제공하는 등 '매력공세'를 강화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빈곤지역(global South)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고, 중국 모델을 수출하는 중국적 대응방식이기도 했다. 여기에 자원과 에너지 등 생존권역(Lebensraum)을 확보하기 위한 심모원려가 숨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 올림픽 개막식 당시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아시아에 뿌리를 내리고
  
  중국의 대외전략이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면, 중국은 아태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것은 초강대국으로 가는 현실적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미일동맹의 강화, 일본의 보통국가화, 남북관계의 발전과 교착, 북한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미국의 축과 바퀴살(hub and spoke)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여기에 그루지야 사태를 통해 미국과의 기싸움에서 이긴 러시아가 태평양 함대의 전력을 강화하는 등 동방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핵심은 미일동맹 체제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를 중국이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연성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다자안보 체제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3, 6자회담, 아시아 협력대화, 동북아 협력대화 등을 중요한 활동무대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아세안(ASEAN)과의 협력을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친중화(親中化) 없이는 향후 지역협력을 주도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와 힘이 감소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층적이고 제도적인 구조를 가진 지역공동체가 등장하고 규범의 제도화 과정이 빨라질 것이라는 것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틈새를 활용해 중심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구축해 중국위협론을 중국기회론으로 바꾸는 전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일단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초보적 완성이나, 아세안+3를 통해 그것을 확립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경제 문제라기보다 중국의 지역주의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중간 '전략'의 동상이몽
  
▲ 5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두 정상이 25일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청와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수사(rhetoric)가 아니라, 실제로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한중간 정치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미국의 멕시코와 같이 한국을 자국의 핵심 영향권에 두고자 할 것이다. 중국이 한중관계를 양자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역 문제,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처음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구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한미동맹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구속력이 지나치게 강했고 대북정책에서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전략관계'를 제안한 데에는 복합적인 포석이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은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미 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적어도 역균형(counter-balancing)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중관계 격상이라는 카드를 사용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한반도가 지정학적 완충지대로서의 효력을 다하고 있으며 신(新)지정학 전략 지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상한 중국과 공존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국경계론과 중국활용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틈새외교가 더 이상 정책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미중관계가 갈등 보다는 협력의 추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양상에 따라서는 중국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는 대체재가 아니다. 그러나 한중관계를 한미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한, 대중국 정책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거의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정책 때문에 한중간 전략관계가 구축됐다는 인식으로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북한 문제를 접근했던 결과는 오늘의 남북관계의 현주소가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라는 크기를 달리하는 트랙을 각각 돌면서 교집합을 넓혀나가는 전략적 재구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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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이후의 중국 - 2) 경제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개혁개방 30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이나 중국인들에게 큰 잔치이다. 2008년은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베이징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는 30년 개혁개방의 '성공'을 자축하는 축포이기도 했다.
  
  개혁개방이란 결국 시장화(개혁), 세계화(개방)이다. 중국은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2006년 말 가입 당시 약속한 모든 개혁(시장화) 과제를 완료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1949년 이후 다양한 형태의 계획경제를 실험했던 기간보다 1978년 이후 시장경제를 지향했던 시간이 더 길어진다. 이제 중국의 '시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그 시장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뿐이다.
  
  세계화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이면, 늦어도 2009년이면 중국은 세계 제1의 수출국이 된다. 장기 전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수입시장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그 무역의 60% 가까이가 중국에 들어와 있는 외자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2008년 상반기에만 500억 달러가 넘는 외자가 새로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6월 말 1조 8088억 달러로 세계 1위이다. 세계화된 중국 경제의 현주소이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경제?
  

▲ 상하이 증권가 객장에서 폭락한 주식 시세표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국인 ⓒ로이터=뉴시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어려움과 곡절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최근의 중국 경제도 그러한 관측과 유사하게 흘러갔다.
  
  우선 2008년에 중국의 경제성장은 2007년 11.4%에 비해서는 둔화될 전망이다. 상반기 성장률이 10.4%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안정되었던 물가도 2007년 하반기부터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주가도 폭락했다. 상하이 A지수는 2007년 10월 6,200대를 기록한 이후 급전직하해 올림픽 기간 중에는 2200대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올림픽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의 중요한 이유는 국제적인 자원 가격 급등과 일시적 식료품 가격 상승이다. 경기둔화는 무엇보다 '미국발' 세계경기 둔화의 영향이다.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11% 대에서 10% 대로 떨어지는 수준의 이야기다.
   
  주가폭락과 올림픽을 연결시킬 경제적 인과관계도 찾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데다, 묶여있던 비유통주의 유통 확대라는 중국의 특수한 수급 불안이 더해지면서 일어난 폭락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주가폭락이 실물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GDP의 3.7%를 차지하는 한 도시(베이징)의 올림픽이었을 뿐이다. 중국이 치른 잔치는 따로 있다.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30년 동안의 '개혁개방'으로 대표되었던 중국의 한 시대도 축복 속에 막을 내렸다. 2007년 말부터 중국 경제는 중요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혁개방'에서 '과학적 발전'으로의 전환이다. 이른바 '올림픽 이후'의 중국을 그려보는 것도 결국 그 전환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이라는 개념은 2007년 10월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되었다. 그 만큼 중요한 개념이란 얘기다. 보통 "인간중심(以人爲本)을 견지하면서, 전면, 협조(協調),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좋은 말만 다 모아놓은 공허한 구호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후진타오 주석의 권력기반이 공고화되었음을 표시하는 징후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균형과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과학적 발전관의 진짜 의미는 중국이 해결할 경제적 과제가 변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공고화나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요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이 달려온 개혁개방 30년은 시장화, 세계화의 과정이었다.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시장화와 세계화가 그 과정을 일관했다. 그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정답과 표준이 이미 주어진 문제였다. 최소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1992년 이후에는 중국이 고민했던 것은 그 목표에 이르는 경로와 속도였지 목표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시장화와 세계화는 완료되었다. 이제 '개혁개방'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개혁개방이 어떤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에 성공했고 그 과제를 사실상 완료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직면했다. 그 단계는 단순히 시장 경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장 경제 시스템'를 만들 것인가를 선택하는 전혀 다른 자리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장경제는 하나가 아니다. 미국, 서유럽, 북유럽, 일본에는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나름의 시장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각국은 기업의 구조, 금융의 역할,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 복지의 수준, 노사관계의 형태, 환경 의제의 수용 정도, 인적자원의 재생산 형태에 있어 모두 조금씩 다르다.
  
  작다면 작은 차이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짧게는 백년 길게는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결과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고, 지도도 없다.
  
  서른 해 동안, 중국은 다른 고민 없이 개혁개방의 길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해왔다. 때로 곡절이 있었고 힘도 들었겠지만 답이 분명한 시대였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잔치와 함께 그 시대도 끝났다.
  
▲ 중국은 이제 답이 나오지 않을 길을 가야 한다. 중국 공산당의 숙명이다. ⓒ로이터=뉴시스


  과학적 발전관 : 역사를 대체
  
  이제 중국 앞에는 훨씬 더 복잡한 과제가 놓여있다.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 일반(一般)이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특수(特殊)한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이제 겨우 첫걸음이다. 두 과제는 성격과 해법이 아주 다르다. 일로매진은 더 이상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좌고우면(左顧右眄)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를 이끄는 주요국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경제 시스템들은 각기 나름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속에서 각국은 혁명도 겪고 선거도 치르고 때로는 전쟁을 벌였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여러 이익집단 사이의 균형을 형성하고 그것을 경제적으로 제도화해왔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진화적인 과정이었다. 지금 선진국이 누리고 있는 제도적 효율성은 백지에 경제학 교과서를 들고 구축한 것이 아니다. 오랜 진화의 결과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것은 지난한 역사의 반복이 아니다. 다이나믹하고도 위험천만한 역사의 드라마에 공산당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지루한 진화의 과정을 되짚을 생각도 없다. 권력도 시간도 잃지 않고 공산당의 온전한 통제 아래서 중국의 발전 모델을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2008년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고 있는 나라다. 다양한 정치세력 사이의 대안 경쟁도 없고, 유의미한 선거도 없고, 발전한 시민운동도 없다. 중국에게 적절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이 어디인지, 노사관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환경을 보호할 것인지 등 수많은 이슈에 대해 진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과제가 변했다는 것도, 자신이 가진 정치적 한계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바로 '과학적 발전관'이다. 과학적 발전관이 그 모호함 속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균형과 종합이다.
  
  즉 공산당의 과제는 더 이상 '종합'적일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을 대신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현할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걸 공산당 혼자서 해야 한다. 그게 균형과 종합의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발전'은 특정한 목표나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경제가 직면할 새로운 과제를 공산당이 인식하고, 그 답을 모색하고, 제도로서 수용하는 틀, 그 전체가 과학적 발전관인 것이다.
  
  개입정부, 시장과의 충돌, 정치의 등장
  
  과학적 발전관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고도성장 필요성에 대한 재확인, 분배 및 사회보장에 대한 강조, 에너지/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등이 주된 방향이다. 그런데 과학적 발전관이 정책으로 구체화될수록 그것이 가진 한계도 함께 드러난다.
  
  우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부의 성격이 개혁정부에서 개입정부로 변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의 목표가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계획과 통제를 없애고 시장을 도입했던 것이 과거의 개혁정부였다면, 이제 다시 규제와 개입을 통해 그 시장에 색깔을 입히는 것이 미래의 중국 정부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개입이란 언제나 매우 어렵다.
  
  다른 한편 '과학적 발전'은 끊임없이 시장과 충돌하게 된다. 분배, 노동, 환경 등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충돌도 늘어난다.
  
  수년간의 진통 끝에 2008년 도입된 새로운 노동계약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업계의 반발이 노골적이다. 시장에서 노사간의 역관계와 공산당이 의도하는 균형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공산당 혼자서 각 분야의 균형을 찾아내느라 좌고우면 하겠지만 결과는 좌충우돌에 가까울 것이다.
  
  나아가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적 불균형을 정치적 리스크로 전환시킨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날로 확대되는 경제적 불균형을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식했다. 그래서 개혁개방이 초래하는 불균형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에 주목했다.
  
  그러나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정부의 임무로서 자임하고 있다. 이제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은 점점 커지고 공산당의 권위는 도전받게 된다.
  
  다시, 잔치는 끝났다.
  
  올림픽과 함께 중국의 잔치도 끝났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의 혼란과 비효율을 끝내고 개혁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장화와 세계화를 추진하는 동안은 모두가 행복했다. 자본가가 환영하는 공산당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역사적 경험도 거기 있었다.
  
  초고속 성장으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대중도 빈부격차 확대에 아랑곳없이 공산당을 지지했다. 중국을 30년 만에 경제 대국으로 이끌어낸 리더십은 모든 중국인에게 새로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마침 올림픽에서도 미국을 제쳤다. 지난 30년이 통틀어 하나의 큰 잔치였다.
  
  그 잔치가 끝나고 중국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잔치가 아니다. 바로 그 개혁개방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이해관계과 이익집단이 각자 자기의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찾아 신는 자리다. 그 자리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이 자초한 숙명이다.
  
  올림픽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지만수/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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