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읽은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보다 훨씬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페기는 현대미술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졌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유산을 이른 나이에 물려받았으며,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데에 많은 에너지를 쓴 공은 인정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복잡한 사생활은 그녀의 명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이 자명해보인다. 세 번의 결혼생활과 이후의 남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판단할 부분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애정을 보여주고 시간을 쏟았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들 신밧드는 성장하지 못했고, 피긴도 엄마의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쏟다가 엄마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독특했는데 친구와 전남편에게까지 후원금을 보낸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서 생기는 애매한 감정이 분명히 있었을테고, 보통의 친근함과는 다른 관계였을거라 추측해본다. 부자들에게 기대하는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해도 너무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대전의 상황과 유대인으로서 불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점씩 그림을 사들인 사실은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전쟁 중에 국보나 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읽힌다. 그녀는 주변의 상황에 보통 사람들보다 무심했고 특히 주변인이 아닌 사람들에 관해서는 무신경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녀의 생애에 혼란스러운게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일찍이 부를 이룬 외가와 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덕분에 20대에 상속녀가 되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성과는 그녀가 이룩한 것이 분명하나 나머지 부분들은 바닥을 치는 느낌이랄까. 에너지를 적절하게 분산해서 중요한 부분에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 읽고나니 피로함이 몰려온다.
그러나 페기는 자신의 수집활동이 전쟁으로 중단되어버린데 좌절감을 느껴서, 어린시절을 보낸 도시를 다시 찾아가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미국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페기의 바람은 자기의 소장품들이 제자리를 찾고, 그렇게 됨으로써 자신도 예술가들 속에서의 삶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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