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는 여자에게 참정권이 없었고,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고 배웠다. 조선 후기 문벌사회가 되면서 여성에게 부담을 주는 사회적 풍조가 생겨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인과 가정이 진짜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만 살았을까?
기록은 남성이 살림에 참여했다고 증언한다. 자녀 교육과 제사, 음식, 노비를 다루는 일, 정원 가꾸기, 농사와 부업, 집짓기, 태교와 출산 등을 신경쓰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관직에 진출해도 비정규직인 관리의 녹봉으로만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꾸준한 수입원인 농사와 옷감 만들기에 집중했다. 실상을 보고나니 몰락양반은 집안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상업행위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몰래몰래 은근슬쩍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 경제에 대해 가르쳤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작은 규칙 하나를 지키면 큰 규칙을 깰 수 있다고 했다. 여성들은 표면적으로 결혼했으니 살림에 매진한다는 규칙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옷감만 짓는 듯이 보였지만 집에서 책도 읽고 글을 쓰기도 했다. 저술은 남편이나 아들, 혹은 남자형제의 도움으로 문집을 세상에 보일 수 있었다. 각 집안 사정과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고, 사회적 분위기와 가정의 분위기의 온도차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맥락을 이해하고 특수성을 찾아 바르게 읽어내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외조하는 한국 남자들에게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다. 옛날에 남자들이 누렸던 특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조선시대 살림남들의 모습은 그대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살림은 먹고사니즘의 연장이다. 바뀔 때도 되었거늘~~~
이처럼 양반 관료의 녹봉으로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은 시골에 있는 집안 소유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했다. 조선 시대 양반 관료가 걸핏하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간 까닭은 정치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서인 것도 있겠지만, 가족 부양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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