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라이트형제다.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그들은 날고 싶단는 인간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의 역사를 보면 이 순수함이 무색해진다. 왜냐하면 전쟁과 관련된 슬픈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작가를 꿈꿨던 현 대한항공 기장님이 쓴 책이다. 비행기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보통의 역사가 한 개인이 소속된 공동체를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비해 이 책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시선의 차이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림을 하늘의 시선에서 내려본 그림을 봤는데 정면이 아닌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책장을 다 덮고난 뒤 미국이라는 존재가 머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특히 나는 중동과 이슬람에 대해 무지했고, 뉴스에 보도되는 논란들을 보며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갈등을 부추긴 조직은 다른 나라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사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남일같지 않았다.

또한 비행기의 개발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조종사들이 보였다. 날고 싶다는 꿈의 대가는 혹독했다.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온 몸으로 고통을 받아낸 선대 조종사 분들의 희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상공에서 방한복을 입고 뿜어져나오는 연료와 가스를 마셔가며 비행했던 누군가가 있었다. 시험 단계의 비행기들을 테스트하면서, 분쟁지역을 지나가면서, 혹은 힘있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조종석에 앉은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목숨은 누구나 한 개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행기는 가미가제 특공대이다. 거기에 사용된 비행기인 제로센을 만든 중심에는 호리코시 지로라는 남자가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혼란스러웠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럴리가 없다며 부정했지만 결국 그도 일본사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피해자로서 전쟁을 반대하는 것과 식민지의 역사까지 포함해서 반대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똑똑한 과학자 지로가 불철주야 노력한건 그의 사정이고 영화에는 그 비행기가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어떻게 앗아갔는지가 산뜻하게 제거되어있다. 전쟁에 사용된 비행기가 은하수처럼 떼지어 나오는 장면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위한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미화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종사 안창남과 여성 조종사 박경원을 읽을 때 가장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들을 에워싼 시대적 배경이 너무 무거웠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청연>을 나중에 꼭 만나봐야겠다.

마지막 장에서 직업윤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욕망을 좇을 것인지, 존엄을 지킬 것인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씰의 일화가 떠올랐다. 대농장을 운영하느라 개인 비행기로 씨앗과 농약을 뿌리는 집에서 태어나 열살쯤엔 혼자서 비행을 배웠던 그가 마약을 운반하게 된 과정에 마음이 쓰였다. 어떤 욕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다.

비행기의 역사가 길지 않지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데 놀랐다. 박물관에 가서 전문가의 해설을 듣는 것보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생택쥐페리부터 중동의 이야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사를 풀어내는 시도를 한다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무리 훌륭한 상품도 수요가 없으면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다. 군수산업은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적대적 관계에 의존한다. 세계 군수산업의 지배자인 미국은 그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 P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