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넷가의 부부는 좀 독특하다. 남편은 아내의 젊음과 외모 그리고 명랑함을 보고 결혼을 해 한적한 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해보니 아내는 경박하며, 지출이 많고,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아들을 낳으면 큰 어려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끝내 딸만 5명을 낳았다. 부부는 당시에 아가씨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강요하며 가르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키웠다.

당시 한사상속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이 집의 재산을 가문의 어떤 장남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래서 콜린스라는 사촌이 상속자의 자격으로 베넷가에 방문하게 되고, 겸사겸사 결혼할 사람도 찾고자 했다. 콜린스는 제인을 마음에 들어했지만, 엄마의 제안대로 엘리자베스로 결정했다. 제인은 가장 예뻤으며 부자 사위를 둘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사리분별을 잘 하기는 했지만 고분고분한 편이 아니라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딸이었다. 게다가 딸의 결혼으로 베넷가의 유산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콜린스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다. 어차피 엘리자베스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닌 콜린스는 그녀의 친구인 샬롯과 결혼하게 된다. 샬롯은 가난한 가문의 맏딸로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 결혼은 여성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 한적한 동네에 빙리라는 부자청년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딸이 이 청년의 마음에 들어 결혼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었다. 무도회에서 본 그는 낙천적이며 호감을 품기에 충분한 인상을 주었다. 반면 그의 친구 다아시는 사교성도 없어보이는 데다가 무뚝뚝하고 무례해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공식적인 연인을 만들지 않은 채 런던으로 떠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아시의 조언으로 빙리가 마음을 접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혐오하게 된다. 다아시는 이런 사실을 모른채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거기에서 그녀의 생각을 알게 되고 오해를 풀고자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녀가 모르게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조용히 수습했고, 엘리자베스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오해했음을 인정했다.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대사가 떠올랐다.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었어!‘ 다아시는 부자였고 가문도 좋았기 때문에 모든 여자들이 그에게 잘보이려고 애썼을 것 같다.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빙리양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결국은 그 집의 안주인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면서 난 니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는 여자가 등장했다. 백그라운드가 약한데도 불구하고 당찬 엘리자베스가 신선했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 눈이 예쁜 엘리자베스가 그의 호감을 사면서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읽으면서 캐릭터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우유부단한 빙리, 무뚝뚝해서 오해받기 좋은 다아시, 타고난 외모와 나이스한 말씨로 타인을 속이는데 사용한 위컴, 억압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답답한 성격을 갖게 된 콜린스, 가난함에서 탈출하려고 한 샬롯, 천방지축 리디아, 자신의 답이 옳다고 확신하는 엘리자베스, 소극적인 제인, 방관하는 아버지, 푼수같은 엄마, 거만함의 끝을 보여주는 캐서린 귀부인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애정이 갔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영화는 생략이 너무 많아서 꼭 책을 병행해서 봤으면 좋겠다. 책은 대사로 도배가 되있어서 시작부터 지치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와 해피앤딩이 주는 안정감이 있지만 이런 앤딩을 좋아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매체에 노출되어버렸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위로받았을 당대의 여성들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사상속이라는 말도 안되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안타까웠다. 먹고사니즘을 위한 결혼, 남편의 폭력에 노출되도 쉽게 이혼할 수 없는 당시의 풍경들.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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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꾸준히 다작하는 작가가 살아남는 것 같다. 누군가에겐 풀고싶은 응어리일 수도 있고, 혹은 답을 구하고싶은 문제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건 그 물음이 내 삶과 맞닿아있어야 한다는 포인트이다. 남들이 뭐라건 풀어놓고 싶은 이야깃거리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세계는 작가가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상상 속의 작품을 실제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하나의 가능성만을 현실로 바꾸며 내 단계는 미래의 선택들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다 어느 한 시점에 가서 그 작품은 다른 작품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게 되며, 그것이 바로 작품의 완성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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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후안은 중세 민간 전설부터 몰리에르의 희곡,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카사노바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바람둥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페터 한트케가 그려낸 돈 후안은 조금 다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법이 없지만 여자들이 알아서 그에게로 넘어온다. 책에서는 동시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뭔가에 접속된 것처럼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여성편력이 있어서 수집하듯이 다니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러면서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행동에서 노마드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 캐릭터를 이해하려면 다른 돈 후안들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런데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이라 이 캐릭터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어려웠는데 언어파괴와 형식파괴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맙소사 왜요...... 노벨상은 그래야만 하나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들이 죽었다고, 유랑했으며, 여자들과 짧은 만남을 갖고 정처없이 떠도는 듯한 행태를 보며 저런 삶도 있나라는 의혹이 들었다. 악의가 있다면 욕이라도 할텐데 그것도 아니고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찰자의 호평도 의아했다. 이 책은 지금 나와 맞지 않는걸로.

돈 후안은 유혹자가 아니었다. 그는 여태껏 어떤 여인도 유혹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나중에야 그가 자기를 유혹했노라고 쑥덕거리는 여자들을 만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은 거짓말쟁이거나, 아니면 물인지 불인지 가릴 줄도 모르는 처지라, 원래 하려고 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걸 지껄이는 축들이었다. 또한 그 반대로 돈 후안 역시 여자에 의해서 유혹을 당한 적도 없었다. 물론 어쩌다가 그를 유혹하고자 하는 그런 여자들의 뜻대로, 아니면 어찌 되었거나, 내버려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지체 없이 그 여자들에게 똑똑히 일러두었다. 그것이 그들의 유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과, 자신은 남자로서 유혹하는 사람도 유혹 받는 사람도 되지 않겠다는 것을. 그는 하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돈 후안, 그는 바로 그 힘을 두려워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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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지원하는 강의 중 이 도시와 관련있는 어린 시절을 쓰는 수업이 있었다. 책으로 출간까지 도와준다고 해서 제안서를 써내려가다가 포기했다. 시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건 ‘우리 시가 이렇게 좋아요‘라는 톤의 홍보용으로 쓸게 뻔한데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늘 소음에 시달렸고, 하루에 버스도 5-7대만 다녔기에 통학이 힘들었으며, 3대가 함께 살았기에 고부갈등의 긴장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려면 인생을 더 살아봐야 하고, 어떤 고민과 결정을 내렸는지의 역사가 있어야 이 작업이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0 전후에 이런 작업을 많이 한다는데 어떤 식으로 써내려가는게 좋은지 수업을 못들은 나로서는 궁금해서 펼쳐보게 되었다. 현대사 속에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방식이 흥미로웠고, 가장 굵직한 현대사는 단연 IMF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에게는 코로나라는 시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80년대 이후의 현대사를 뒤적여봐야겠다.

강의 제목에 ‘현대사 속에‘라는 단서 조건이 왜 붙게 되었는지 잠시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단서를 붙인 이유는 이제부터 써내려 갈 자기 역사에서 단순히 ‘성공 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대가 어떠한 시대였는지를 의식하면서 자기 역사를 써보도록 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과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라는 두 가지 요소가 완전히 밀착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동떨어진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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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는 여기저기 인용되곤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거라는 말이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책인데 머리에 지진이 났다. 왜냐하면 기대와 많이 다른 책이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포스트잇에 메모해놓은듯한 글을 정리하다 만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조각글들의 흐름을 유지하며 읽는 것도, 종교철학에 분류되는 듯한 내용도, 잡힐듯 잡히지 않는 듯한 문장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이라는게 늘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끝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맞다, 이 책은 결심씩이나 해야 읽을 수 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를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타고 났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12세에 혼자서 터득했고,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해하는 등 어린 시절에 두각을 나타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자신의 직업보다는 자녀 교육에 적합한 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교육환경을 조성했다. 먼저 나서서 가르치지 않고 호기심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등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진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계산기를 최초로 만들었고으며 파스칼의 법칙을 찾아내는 등의 학자로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빙판에서 발목이 삐끗하는 사고를 당해 의사를 불렀다. 그 의사들은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며 가족들을 전도 했다. 이들은 장세니즘(얀센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가족은 회심을 했고 파스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당시 사회에는 인간의 위대성을 주장한 에피크테트(스토아학파)와 비참함에 주목한 몽테뉴(16c 프랑스 철학자)의 입장이 충돌했는데, 파스칼은 상위에 있는 신앙으로 이 문제를 종합했다. 그 결과가 <팡세>라는 명상록이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신앙 안에서 절망과 교만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파스칼의 사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이성만으로 세상을 다 감지할 수 없다는걸 인정하고 기독교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 모순되는 것을 일치시키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세세하게 언급하자니 아는게 없어서 설명하기 어렵다. 완독은 했지만 10%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라 아쉽다.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일반인은 강의를 듣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이드가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팡세에 대한 좀 더 친절한 글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읽고나니 인간 파스칼이 조금은 궁금하다.

인간은 절망 또는 교만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항상 처해 있으므로 은총을 받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는 이중의 가능성을 가르치는 교리보다 인간에게 더 적합한 교리는 없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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