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챕터만 읽은 상태이지만, 조금 정리해보고자 한다.
----신경성 폭력
매우 얇은 책이지만, 저자가 바라본 시대의 질병이 독특했다.
저자는 지난 세기는 면역적 시대였으며 이제는 신경증적, 경색성 질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면역이라는 것은 타자의 이질성에 대한 공격과 방어, 타자의 부정성에 대한 것이라면, 경색적 질병은 긍정성의 부정이다. 이 부분에서 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구별이 되지 않는 동질적인 것의 과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하여 신경증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질성의 과다라는 것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자유로이 각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획되어 각자의 고유함보다 같은 것 아래 놓여있을 뿐인것이다.
'폭력은 부정성에서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수 있다. 낯선것뿐만 아니라 같은 것도 폭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것이 지배하는 시스템에서 저항혁은 오직 비유적 의미로 쓰인다.'
타자를 나와 다른 것이라는 이질성에으로 몰아내려는 것과 타자와 나를 구별할 수 없이 같은 방식의 삶이라는 것은 사적영역이 공적영역을 침범과 마찬가지로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저항이 아니라 소화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나온다.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등 "
현대의 삶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울증, 번아웃 등 현대병이 가지고 있는 여러 신경학적 질환등은
자신의 내부를 갉아먹는데,, 이것의 원인은 타자와의 관계가 너무나 촘촘해 거기서 벗어나거나 혹은 너무 깊은 잠식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때 나타나는 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신경성폭력은 시스템의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소진증후군도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같은 것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저항력같은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긍정성의 폭력은 적대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력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확산되며 그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보다도 눈에 덜 띈다.
타자에 대한 이질성은 자아를 더욱 강고하게 만들 수 있지만, 타자와 자아의 경계가 모호함으로서 일으키는 피로감은 오히려 폭력적이지 않은가. 자의식의 과잉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같은 시스템에서 반복되는 일상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뻔한데... 그것이 자의식 만이 아니다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든다
---규율사회 피안에서
다음 챕터에서는 우리사회에 규율에서 성과중심의 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분석이다. 저저는 날카롭게 규율, 즉 금기와 억압, 부정성의 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행하면서 과거 복종적 주체에서 우리는 성과적 주체로 이행되었음을 지적한다. 성과적 주체란 자기자신을 하나의 기업으로서 관리하고 경영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는 일의 효율과 생산성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규율과 당위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던 과거에 비해 긍정의 도식으로 자발적인 성과주체가 되어 생산성의 극대화를 도모하고 있다. 과연 창의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하여 많은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펀경영 역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성과주체를 만들기 위함아닌가. 그러한 사회 모든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도태되고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믿는 무력한 개인은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어떤것도 가능하다고 전제되는 사회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은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의 우울증 역시 시스템의 폭력아래 양산된 현대병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개인의 의지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이 사회에서 규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착취가 되는 것이다. 성과에 매달려 자신이 자발적으로 자기자신을 착취하기에 이것을 저자는 강제된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라고 말한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현대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러한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과의 전쟁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들에게 진실의 알약이라고 처방해주었으면 하지만, 프레임을 벗어나보라고 하고 싶지만, 쉽지않은 일이다.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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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행된 사회다.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부정성의 금지, 법령, 억압의 사회에서 긍정성, 성과위주의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을 강조하는 사회로 이행된 것이다.
"금지의 부정성, 복종적주체는 범죄자를 양산하지만, 성과적주체(자기자신을 경영하는 기어)는 우울증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한다" 저자는 과거 금지와 억압의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로 나누어 범주를 벗어난 자들은 범죄자가 되었지만, 이제는 긍정성의 과잉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성들이 개인이 자기자신의 주권자가 되고 싶어하나 자기자신이 되지 못하는 자괴감으로 우울증 환자가 만들어진다는 알랭에랭베르의 말을 인용한다. 여기에 덧붙어 저자는 우울증은 자기자신의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시스템의 폭력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파편화된 개인, 인간유대의 결핍 역시 문제의 하나라고 보고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진증후군 역시 탈진한 자아의 표현이기 보다는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의 표현해야할 것이다.'
알랭이 이야기한 주권적 인간은 실은 어떤 주권도 갖지못한 노동하는 동물에 불과하다며 자기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한다고 말한다. 실로 자발적인 착취이기 때문에 그는 피해자이기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 발발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이러한 자기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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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심심함 -----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 충동의 과잉으로 표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