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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셜록 : 시즌 2 (2disc) - 본편 + 부가영상
폴 맥기건 감독, 마틴 프리먼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밤을 샌 날이 아니라면 으레 느지막이 일어나는 셜록 홈즈가 식탁에 앉아 조반을 들고 있었다. 사실 그가 밤을 새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나는 벽난로 앞의 깔개 위에 서서 전날 밤 우리를 찾아왔던 손님이 남겨두고 간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은 손잡이가 뭉툭하게 불거진 놈으로 묵직한 고급 나무로 만들었으며 '페낭 로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느 지팡이였다. 손잡이 바로 밑에는 폭이 3 센티미터는 좋이 될 듯한 넓은 은관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1884'라는 숫자와 함께 '영국 외과 의사회 회원인 제임스 모티머에게, C.C.H의 친구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구식 개업의가 지니고 다닐 듯한 품격과 견고함을 갖춘 바로 그런 지팡이였다.
 "여보게 왓슨, 그걸 보고 무엇을 알아냈나?"
-셜록 홈즈, 코난 도일.(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 3)

 

 

 
 네, 저는 방금 어떤 텍스트를 발췌 인용했습니다만 실은 저 텍스트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건의 전조, 인물의 묘사보다는 무대의 공기와 분위기에 집중한, 말 그대로 여는 글일 뿐입니다. 저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몇 가지 되기는 합니다만 저 인용문이 마음에 들었거나 당신의 마음 어느 한구석을 자극했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이 바로 홈시언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골몰하며 팬이 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는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트레키와 셜로키언, 홈시언들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특정 중독자들이 있습니다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이들을 부르는 트레키는 한없는 경멸의 의미가, 셜로키언과 홈시언은 코난 도일의 작품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스스로 울타리를 곧추세워 등골까지 221B의 일원이 된 이들에 관한 존중의 의미가 있다는 것. 빅토리아 시대를 시작으로 1892년 '페그람의 수수께끼'부터 2010년 나온 BBC 방영작 셜록까지, 홈즈는 꽤 다양하게 변주되고 반복됐습니다. 물론 루시 리우가 나온 미국판이 더 최근입니다만, 작품의 완성도를 볼 때 이 작품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2000년대 셜록 홈즈 변주곡의 시작은 2009년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습니다. 근육질의 셜록이 예쁘장한 왓슨을 데리고 온갖 액션을 선보였더랬지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양한 셜록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나왔다 하면 인기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마약 중독에 소시오 패스, 두뇌 회전이 빠르며 연애에는 관심 없는 사설탐정이 빅토리아 시대의 정보망을 이용하여 평범한 의사 왓슨과 함께 모험하는 것이 그 줄거리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사건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인물이에요. 시각, 촉각, 후각과 화학, 생물학, 지질학, 역사(와 기타 등등)를 바탕으로 한 본인의 직관을 이용하여 평범하지 않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입니다.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필요한 것만 취하며 타인의 고통에도 어느 정도 무감각합니다. 이 캐릭터 하나만 봐도 정신의학계는 약 오 분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신기한 것은 이 다양한 결함과 장점이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다는 데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 221B는 현실의 공간이 되고 엘러리 퀸부터 스티븐 모펫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셜록을 만들어냈지요. 한마디로 셜록 홈즈는 워낙 그 개성이 뚜렷하고 토대가 굳건한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변주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셜록을 재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국적인 사건에 집중한다면 인디아나 존스를, 추억에 집중한다면 셜록 홈즈 앤솔로지(앨러리 퀸)를, 액션에 집중한다면 셜록(가이 리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옵니다. BBC의 셜록이 여기에 왜 필요한 것인가? 칠십여 명의 셜록 중 하나를 보태었는데, 죽지 않고 산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지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셜록은 BBC에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입니다. 회당 90여 분이며 한 시즌당 세 편, 2013년 초 현재까지는 시즌 2가 나왔으며 올해 말 크리스마스 특별편이 방영되고 시즌 3이 아직 남았어요. 감독과 각본을 맡은 모팻과 게티스는 이미 영국 텔레비전 드라마 '닥터 후'에서 함께 일했고 마침 닥터 후의 촬영으로 함께 탄 카디프행 기차에서 둘 다가 홈시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팬심으로 만든 팬픽인 셈입니다. 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다른 일면을 살펴볼까요. 방영 시간대는 닥터 후가 저녁 7시였고 셜록의 경우 저녁 8시였습니다. 9시 이전 시청 시간이 영국의 가족 드라마 방영 시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셜록은 처음부터 유혈낭자한 섹스 난투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주연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틴 프리먼입니다. 저는 캐스팅과 각본 구상이 BBC 드라마 셜록의 성공을 좌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완벽한 변주이자 현대화였으니까요.
 
 
 감독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캐릭터와 최대한 닮은 인물을 뽑는 것과 캐릭터와 최대한 비슷하게 행동하는 인물을 뽑는 것. 예를 들자면 전자는 한국 영화 '왕의 남자'이고 후자는 BBC의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입니다. 하나도 닮지 않은 외양, 홈즈의 재현이라 일컬어도 될 법한 행동양식입니다. 저는 여기서 컴버배치의 외모에 대해 평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스틸 컷만 보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구글 지도, 아이폰 앱, 클라우드 서비스 활용의 비빌 번호 추적, 단체 문자, 맥북 페이스 타임, 아우디 새 모델, 747 좌석 번호, 언록 시스템, 핸드폰 스캐닝. 이것이 바로 셜록이 이용하는 기기입니다(아우디는 마이크로프트). 그는 아편 대신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경찰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냅니다. 가끔 왓슨을 대신 보내 페이스 타임으로 현장을 둘러봅니다. 다른 면을 한 번 볼까요. 모리어티가 교도소 문을 개방하고 은행 금고를 여는 동시에 왕관 유출(은 아닙니다만 정확히는)을 시도할 때 흐르는 음악은 로시니, 홈즈가 법정 출두를 할 때 흐르는 음악은 니나 사이먼입니다. 이것은 007의 최첨단 무기가 라디오 수신기인 반면 홈즈의 활용 기기는 스마트폰으로 역주행함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윌리엄 터너가 그렸던 국회의사당과 함께 있는 빅 아이를 보듯 스티븐 모펫과 마크 게티즈는 빅토리아 시대 픽션의 현대화를 해낸 셈입니다.

 

 

 이는 곧 현재란 어떤 모습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지요. 과거에서 흘러나왔으되 변하고 있는 것. 우리는 지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을 보며 가장 탄탄하게 현대화된 셜록을 보고 있습니다. 정점을 찍되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 이것은 제작자로서의 욕심과 홈시언으로서의 까다로움이 만나 이루어낸 새로운 시대의 홈즈입니다.
 
 
 
 
#1.DVD에는 40분 가량의 부가 영상이 있습니다. 좀 더 길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어요.
 
#2.영화에 비해서는 결정이 빠른 드라마 시리즈를 선택한 편이 나았다고 봅니다. 이전에야 드라마는 비디오로 촬영하고 영화에서는 35mm로 별도 작업했다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쪽이 의견 반영도 빠르고 자본도 덜 들어가니까요.
 
Sherlock (2010– )
 
Creators:Mark Gatiss, Steven Moffat
 
Series cast summary:
  Benedict Cumberbatch  ...   Sherlock Holmes (7 episodes, 2010-2012) 
  Martin Freeman  ...   Dr. John Watson (7 episodes, 2010-2012) 
  Una Stubbs  ...   Mrs. Hudson (7 episodes, 2010-2012) 
  Rupert Graves  ...   DI Lestrade (6 episodes, 2010-2012) 
  Louise Brealey  ...   Molly Hooper (6 episodes, 2010-2012) 
  Mark Gatiss  ...   Mycroft Holmes (5 episodes, 2010-2012) 
  Andrew Scott  ...   Jim Moriarty (4 episodes, 2010-2012) 
  Vinette Robinson  ...   Sgt Sally Donovan (3 episodes, 2010-2012) 
  Tanya Moodie  ...   Ella (3 episodes, 2010-2012) 
  Jonathan Aris  ...   Anderson (3 episodes, 2010-2012) 
 
Country:UK
Language:English
Filming Locations:North Gower Street, London, England, UK
 
Production Companies
•Hartswood Films
•BBC Wales (for)
•Masterpiece Theatre (as Masterpiece) (in co-production with)
 
Runtime:90 min
Sound Mix:Dolby Digital
Color:Color
Aspect Ratio:1.78 : 1
 
http://www.johnwatsonblog.co.uk/
(존 왓슨 블로그)
 
http://twitter.com/WatsonJW
(존 왓슨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http://twitter.com/SherlockSH
(셜록 홈즈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리뷰는 셜록 시즌 2 링크이며 유튜브 영상은 시즌 1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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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에서 읽으면서 홈즈에 대한 각인이 머리 속에 너무나 강하게 찍혀버렸는지,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영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저 정도로는 안돼...' 이러면서요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우엔 만족스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심했어요.
앞으로 또 어떤 버젼의 홈즈가 나올까요.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별로 기대가 안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러고 보면 영국 사람들은 홈즈를 비롯해서 추리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뿐 아니라 먼저 TV 드라마부터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요. 말씀하신 것처럼 방영 시간도 꼭 매니아 층만 볼만한 시간대도 아니고 말이지요. mysterious한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열심히 쓰신 페이퍼를 읽고 나면 저는 한동안 글 올리기가 망설여집니다 ㅠㅠ)

Jeanne_Hebuterne 2013-02-06 08:03   좋아요 0 | URL
온갖 종류의 홈즈를 다 보았는데 저의 경우 가장 최악은 루시 리우가 왓슨 역을 맡은 미국 버전이었어요. 슬쩍 보아도 (물론 수많은 셜로키언들과 홈시언들은 왓슨이 여자였을 수도 있다지만) 적응이 안되었어요. 물론 그 시리즈를 보기 전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이 최악이었습니다. 홈즈의 액션을 부각시키려 한 점은 알겠지만(원작에서 취미로 권투를 했지요) 그는 액션 영웅이 아니라 추리 탐정이니까요! 뇌가 근육보다 섹시한 남자에게 뭐하는 짓인가 탄식만 절로 했더랬습니다. 전부 다 만족스럽지가 못했어요.

영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애니팡과 차차차에 미쳐들듯 자국의 문화유산 시리즈에 탐닉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합니다. 물론 한국인이 무엇에 스미는 그 정도보다 꽤 은근히 지속된다는 점이 다릅니다만, 그들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 1위로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는 것과 셜록 홈즈의 수많은 개정판을 만들어내는 것만 보아도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영국의 성공한 시리즈를 건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일하는 시간 일하기 싫다는 열정을 셜록 덕후질로 보내다 보니 이렇게 주절주절 리뷰가 양산되었습니다. 너무 놀고 싶어서요 ㅜㅜ)

다크아이즈 2013-02-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전 셜록 홈즈 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글에 뭔가 코멘트를 남기기는 힘들어요. 다만 님의 글쓰기 방식에 언제나 감탄하기 때문에 추천만 날리고 갑니다. 이 많은 추천 수도 저 같은 맘으로 날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짐작이...
그나저나 일 할 시간에 눈치껏 이런 고급한 리뷰를 올릴 수 있는 님의 내공에게도 찬사를^^*

Jeanne_Hebuterne 2013-02-06 13:43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너무 좋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팜므느와르님의 칭찬은 제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돌아보게 하는 힘까지 지녔어요.
사실 일 말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고(=놀고 싶었고), 그와중에 최근 DVD로 홀로 시청한 셜록이 아른거려서 저야말로 팬심으로 쓴 리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업무시간이군요!)
내일은 더 추워진대요. 옷 두껍게 입으십시오!
 
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스릴러 :

 

 

이 호칭은 영화에서 비롯되어 연극·방송·소설 등에서도 쓰인다. 넓은 의미에서의 서스펜스드라마의 일종으로 요괴·괴기극, 범죄·탐정극 등에 많으나 공포심리만 묘사된다면 구태여 이를 장르에 넣을 필요는 없다. 공포감을 주는 쪽보다도 공포감을 느끼는 쪽이 빠져들어가는 과정 표현에 주체(主體)가 있다. -네이버 두산 백과

 

 

 

 일상적인 사건에서의 공포. 낯설게 보이는 어떤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스릴러는 그렇게 속삭인다. 그 안에는 연민과 성찰, 반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알 수 없어서, 혹은 알기 때문에 인간은 '무섭다'고 말한다. 어떻게 될지는 알지만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일들. '어두운 기억 속으로'는 그런 감정에의 초대장이다.

 

 

 

강박과 불안. 장애와 극복. 아는 남자와 모르는 남자. 알 수 있는 일상과 모르는 사건.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불안을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스릴러의 외피와 시간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펼쳐 보인다. 4년 전의 여자와 4년 후의 여자는 다른 사람이다. 4년 전의 독자와 4년 후의 독자가 다른 사람이듯, 이 속에서 변함없는 인물은 단 한 사람, 여자를 쫓는 '리' 밖에 없다. 법정에서 시작하여 현관문에서 끝난다. 현관문에서 이어지다가 낯선 벌판에서 끝난다. 흠집을 보고도 넘어가는 자의 오만함. 다른 차원의 사랑을 보이는 사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완벽한 로맨스에서 시작해서 데이트 폭행으로 치닫고 한 사람의 세계를 부수는 것으로 전개된다.

 

 

 

 

 

 

데이트 강간을 피하기 위해 제시되는 방법으로는 첫째 평소 자기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태도를 지닐 것, 둘째 남성 우월인 태도를 지녔거나 상대의 행동과 생활을 지배하려는 남성, 신체적·언어적으로 공격적인 남성, 술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이 형편없는 남성과는 데이트하지 말 것, 셋째 상대를 잘 모를 경우 남성의 집에 가거나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말 것, 넷째 성관계를 갖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함께 숙박업소에 가지 말 것, 다섯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잘 모르는 곳에서는 데이트하지 말 것, 여섯째 상대를 잘 모르면 상대의 차를 이용하지 말 것, 일곱째 데이트를 할 때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고, 자신의 술은 스스로 따라 마실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본 데이트 강간의 정의 중 데이트강간을 피하는 지침.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왜 도망치지 않는지 생각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녀의 의문은 작품 속에서 캐시가 읊조린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지?' 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그녀들이 하던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다음 자신도 말한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고. 의사를 표현했지만 술을 마신 후 리를 막을 수가 없었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에 빠졌으므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낯선 곳으로 가지 않았다. 이미 깊이 사귄 후 차를 타고 함께 나갔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에 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녀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친구와 연락을 하는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느 순간 그녀의 방탕함,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켰다는 책망이 될 때, 즉, 도덕적 기제가 다른 의미로 적용될 때 그녀는 길을 잃는다. 그녀는 'then'과 'now' 사이에 있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롯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주목하게 한다. 즉, 소설의 핵심 중 하나-궁금하게 만들기-를 다른 구조-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독자는 그녀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무엇을 가졌는지도 알게 된다. 그 둘 사이의 간극.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가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그녀가 현관문을, 창문을 몇 시간 동안 점검하고 살갗이 벗겨져 나갈 때까지 샤워도 아닌 샤워를 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은 관찰력의 힘이다. 관찰이라 함은 곧 대상을 들여다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 즉 이 모든 것은 허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 있는 일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는 일. 혹은 일어났음에도 부정하는 일.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여 머릿속을 장악하고 행동을 지배하는 일. 어쩌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남자와 여자는 일종의 폭력을 데이트 상대에게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려와 존중이 어떤 식으로 이해되는지를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한 엘리자베스 헤인즈의 묘사. 상대방이 없는 빈집에 들어가는 일.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 일. 상대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일. 그것이 도를 넘는 일. 이것은 상대의 기분에 달린 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그에게, 그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부당한 일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한다고 하여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

 

 

 

 '어두운 기억 속으로'의 캐시가 한 일은 무엇일까? '리'를 만났다. 무언가 조금씩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움을 요청하고 거부하고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의사를 다시 표현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모든 것을 '다시' 하려고 했을 때 다른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네가 틀렸어, 그 사람의 세계는 단지 저 안에서만 존재해. 데이트 폭력이 데이트 강간으로. 만약, 생각해 본다. 그녀가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저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조금 조심하는 것 뿐이라고, 형용사와 부사가 가득한 비난 혹은 반대의 말을 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데이트 폭력을 겪는 여자는 폭행을 당하지 않고서는 주위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을까. 길가다가 수시로 뒤돌아보고 현관문을 몇번이고 점검하고 전화번호를 바꾸어도 신체상의 손상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그저 기분의 문제에 그칠 수도 있지 않은가. 저문 날의 오후에서 박완서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서야 남편의 의처증에서 헤어난 여자의 이야기를 썼다. 십여년 전 한국의 고등법원에서는 평생 남편의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 남편을 고소한 여자에게 '백년해로 하시라'며 기각을 했다.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같은가. 이 폭력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허물어지고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나 모든 여자가 착각하게 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캐시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역사-그녀에게 집중하지 않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에서 비롯된 정반합의 과정에서 리를 만났다면, 그 결말은 곧 스튜어트가 된다.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그 요약하지 않은 그 부분을 보면 리와 스튜어트, 곧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와 미친 것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신과 의사 스튜어트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의 그 어느 부분도 나는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일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놀라운 묘사. 현실을 뛰어넘지 않는 객관화.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배려심. 가해자의 히스토리가 간과된 것이 아쉽지만(단순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의 논리를 조금씩 독자를 애태우며 보여주는 필체. 새로운 주제의 새로운 접근과 관찰이 눈부시다.

 

 

http://www.womensaid.org.uk/messages.asp?topicid=61635§ion=00010001000800210001

-Women's aid의 'into the darkest corner'관련 포스팅

 

 

Elias String Quartet live in Montpellier, France, 19th July 2010
Mendelssohn String Quartet op80, firs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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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10-1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책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다..라는 것이 더 끔찍하죠.

Jeanne_Hebuterne 2012-10-19 09:1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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