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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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2-09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ooey님, 님의 <밑줄 긋기> 잘 보았어요. 마치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를 읽는 듯 하네요. 그래서 10년 전쯤 읽었던 그 책을 꺼내 보게 되었어요. 그때의 기억도 다시 되새기게 되어 기쁘고 고마워요.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훔처갑니다. 행복하세요.

zooey 2004-02-1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흔님. 고맙습니다. 요새는 통 서재 업뎃을 못하고 있어 민망한데; 이렇게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님도 행복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