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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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리와 스릴러물이 환상적 리얼리즘과 만난다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드거 앨런 포, 스티븐 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뒤섞인 듯하다는 책 추천사는 크게 틀리지 않다. 내전 이전의 혼란스럽고 암울한 상황이던 20세기 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주인공 다비드 마르틴과 그가 써야만 하는 ‘종교와 같은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비드 마르틴은 참전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이런 다비드를 위로해 준 것은 책이었다. 가난으로 책을 사지 못하는 다비드 마르틴에게 '셈페레와 아들' 서점의 주인 샘 페레는 책을 싸게 팔고 마음껏 읽게 해 주는 영혼의 친구였다. 아버지가 괴한에게 죽고 혼자가 된 다비드 마르틴은 신문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눈여겨 본 부호 페드로 비달은 다비드 마르틴에게 글을 써 볼 것을 권유하고 그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신문에 글을 연재해 인기를 끌지만 동료들의 질시로 회사에서 쫓겨 난다. 다비드 마르틴은 본격적으로 작가의 삶을 살기 위해 평소 눈여겨 두었던 ‘탑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책은 인기가 없다.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며 살던 중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다비드 마르틴은 샘 페레를 찾아가고 샘 페레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다비드 마르틴을 데려 가고 그는 한 권의 책을 손에 넣는다. 이 때 비밀에 쌓인 안드레아스 코렐리라는 사람에게 ‘모든 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어 놓을 힘을 지닌 책’을 써 달라는 부탁과 뇌종양의 치료라는 교환 조건을 제시한 그의 요구를 수락한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코렐리를 조사하던 다비드 마르틴은 자신 말고도 그런 책을 쓰던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추리와 스릴러적인 요소 덕분에 읽는 재미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스페인의 상황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종교에 대한 토론과 책 자체에 대한 진지한 해석은 이 책을 마냥 쉽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천사의 게임』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기획한 책을 위한 4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전작 『바람의 그림자』가 책 자체와 책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천사의 게임』은 영원의 책을 쓰고 싶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대한 문학을 완성하고 싶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일지 몹시 기대가 된다. ‘잊혀진 책들의 묘지’와 ‘샘 페레와 아들’ 서점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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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지혜>를 리뷰해주세요.
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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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앤디 메리필드의 『당나귀의 지혜』에 처음부터 매혹됐던 것은 아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서랍장 위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던 이 책에 문득 눈길이 멈춘 것은, 당나귀 그리부예와 함께 길을 나선 앤디 메리필드의 여행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당나귀 모데스틴과 떠난 세벤느 여행 기록인 『당나귀와 떠난 여행』에서 얼만큼 기인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의 『당나귀와 떠난 여행』은 그의 애인 패니 오스본을 미국의 남편 곁으로 떠나보낸 후에 밀려드는 상실감을 고스란히 안고서 구교와 신교의 종교 분쟁 중심지였던 프랑스 남부 세벤느 지역을 여행한 기록이다. 이 여행의 믿음직한 동행으로 그는 홀로 세벤느의 자연을 여행하기 위해 꼼꼼히 준비한 행장을 대신 져줄 암탕나귀 모데스틴을 선택한다. 스티븐슨의 여행에서 당나귀는 길벗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의 주체인 스티븐슨의 객체였다.

그러나 ‘그리부예’라는 정다운 이름을 붙여준 당나귀와 함께한 메리필드의 여행에서는 당나귀가 줄곧 예찬의 대상이다. 이 여행은 그리부예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못한다. 이 여행길에서 당나귀 그리부예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과 한 쌍을 이루는 동물이 하나씩 있다는” 메리필드의 “동물 자아”로 기꺼이 영혼의 짝꿍이 되어준다. 그 신비로운 침묵과 깊은 눈길로.

메리필드가 진정한 자아를 찾아 푸른 풍경 속을 그리부예와 더없이 순수하게 걷기 전에 그는 뉴욕의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공적인 소음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게 인파에 치이며 일터를 향해 종종걸음 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터에서는 물질적 부를 보장해 주고 타인의 위에 설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쟁탈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고, 그로 인해 쇠잔해진 기력과 신경을 견디지 못하고 녹초가 된 몸을 잠자리에 뉘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이런 일상의 반복. 나의 내면에서 움트는 완전한 행복을 찾기보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의지해 말초적인 기쁨을 이끌어내는 일에 골몰한다.

언제 남에게 빼앗길지 모르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자리와 그 덕분에 누리는 욕망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내 시선을 끊임없이 외부로 향해야 한다. 그 자리의 내 정체성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까지 타인의 우호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민하게 반응한다. 때로는 가식적인 행동으로. 이를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따라 개인의 사회성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까.

『당나귀의 지혜』를 읽을 즈음 내 말들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들었다. 또 저렇게 듣는 타인의 시선에 날카로워지는 내 신경이 못마땅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말과 말이 조응하지 못한 채 서걱이다가 낱낱이 흩어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황망한 눈빛, 엇갈리는 마음,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이는 어떻게 들을까, 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인데도 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럴 때 나는 ‘말을 줄일 것!’이라고 자동 경보를 울린다. 지금은 침묵해야 할 때라고. 이 방법은 대개 주효했지만, 언제 어느 때고 불시에 외로움이 깃든다.

메리필드와 당나귀 그리부예가 침묵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푸른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침묵에 공명하는 자연의 소리는 예민한 신경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고요한 평온함을 조금도 해치지 않는다. 내 말을 해석하는 타인의 말이 난무하지 않아도 외로움이 스며들 여지는 없다. 내 말을 신비로운 침묵으로 감싸 무슨 말이든 깊은 눈길로 온전히 이해해 주는 당나귀는 평화를 선사한다. 그렇다, 나도 이곳을 벗어나 당나귀와 푸른 풍경 속을 걸어가고 싶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내 의도와 다르게 전해질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안심시키는 당나귀의 침묵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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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딸에게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2
펄 벅 지음, 하지연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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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한 부분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자기계발서들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10대,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 부유하게 노후를 보내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들은 최후의 목적이 ‘자신의 성공과 안락’에 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책을 읽는 독자-게다가 젊은 독자들이 대부분이다-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그 내용은 직접적이며 현실적이고 유행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서의 작가들은 대담하게도 ‘성공하고 싶으면 나(혹은 유명인)처럼 살아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펄벅의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의 경우에는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으로 한정짓기에는 책이 주는 느낌이 각별하다. 그것이 1967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고전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작가 때문이다. 『대지』의 작가로 잘 알려진 펄벅이지만 작가 이전에 정신지체아인 큰 딸을 포함해 아홉 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운 말 그대로의 어머니였다. 펄벅은 자신이 경험한 어머니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미래에 엄마가 될 딸들에게 그리고 현재 아이를 가진 어머니에게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결혼이 여자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무덤, 삶의 도피처라는 생각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새로울 것도 없는 요즈음이지만 과거나 현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해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듯 자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정 안에서 조용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현대의 여성들에게는 진부하고 고루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차별은 여전하지만 펄벅은 여자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것에 안주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 부당함에 맞서거나 싸우지 않는 한 여성은 계속 약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재도 약자이며 앞으로도 약자로 살아야겠지만 여성들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그 권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할 때,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을 때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60년대의 여성들보다 현대 여성의 권리가 나아진 데는 그렇게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어머니가 딸에게 혹은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하며 인생의 근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펄벅이 이처럼 어머니와 가정의 삶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자의 상대방이며 아이들의 생명의 근원이고 인생의 선배이며 미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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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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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이름만으로도 저릿저릿한 기대감을 품게 하는 작가들. 닉 혼비. 켈리 링크. 닐 게이먼. 조너선 사프란 포어. 이들은 『픽션』에 그 대단한 이름을 실은 작가들 중 일단 읽었고 만족스러웠으며 그의 새로운 책을 발견하면 무턱대고 눈을 반짝거리게 되는(누가 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수 있다. 이럴 때 내 눈빛이 어떻게 만화처럼 변하는지.) 작가들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반짝이는 재능을 빛내는 이들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까.  

『픽션』의 원제는 길기도 하다. “Noisy Outlaws, Unfriendly Blobs, and Some Other Things That Aren’t as Scary, Maybe, Depending on How You Feel About Lost Lands, Stray Cellphones, So Maybe You Could Help Us Out”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자의 성향을 감안하여 이토록 길게 책 제목을 파격적으로 내세우지 못했지만, “픽션”이라는 짧고 강렬한 제목 아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라는 낯선 길이의 부제로 원제의 개성을 살렸다. 하나같이 쟁쟁한 작가들의, 다른 색깔과 도저히 헷갈릴 수 없는 원색적인 작품들로 우열을 가릴 수 없으니, 어느 누구의 작품을 표제작으로 내세우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더없이 서운하여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든 작품들을 제목으로 올린 것이다. 이것만 봐도 이 단편집의 화려한 색채가 과히 짐작된다. 

그래서 어떤 색깔과도 섞이지 않고 구별되는 각자 자신만의 색채로 무장한 레모니 스니켓의 서문과 모두 열한 개의 단편을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레모니 스니켓은 “이 책에는 여러분 맘에 들든 안 들든 지루한 이야기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지루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지루한 쾌락”을 위해서도 몇 가지 문장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쩌지, 그 문장들이 귀엽고 웃기잖아. 뭐가 지루한지 찾는 것도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더라니까. 쏘리. 

『피버 피치』라는 축구+성장 에세이로 ‘축구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아스날 광팬임을 드러낸 닉 혼비. 그는 「작은 나라」에서 누구도 욕심내지 않는 나라의 엉망진창 축구를 소재로 깜찍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게 참 ‘닉 혼비’답다. 제법 지난 내 기억에 따르면, 직접 공을 차며 축구를 하는 것은 그리 즐기지 않지만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열광적인. ‘스테판’에게 그가 비쳐 보이는 것은. 그리고 요즘만 같아서는 코딱지만 한 나라라도 욕심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제 잇속 채우자고 욕심이 더덕더덕한 얼굴로 요리조리 말 바꾸며 꼴사납게 드잡이해 대는 꼴들, 더는 못 봐주겠다. 

조지 손더스의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까 봐 “겁나 소심하게” 전전긍긍하는 라스 파프의 강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 어디서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두렵다, 너무나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한 라스 파프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우스꽝스러운 망상으로 부풀다가 뻥 터져버린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서야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 그러나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도 함께 커진다. 때론 그 두려움에 압도되어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잃지 않기 위해’서 ‘지키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켈리 링크는 「괴물」에서 “캠핑 가고 싶은 애는 아무도 없”지만 방학만 되면 으레 캠프로 보내지는 아이들의 환상에 ‘괴물’을 들여보낸다. 괴물은 아이들에게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왕따를 당하는 제임스에게는 더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마치 위로하듯이 농담을 한다. 어쩌면 괴물은 우리가 키우는 ‘어두운 마음’이 아닐까. 한 줄기 빛마저 잃지는 않은. 괴물은 장난스럽지만 온 힘을 다해야 할 기회를 준다. “하나, 둘, 셋, 넷. 뛰어, 제임스! 잡을 거야! 잡으면 먹을 테다! 다섯, 여섯. 어서, 제임스, 뛰어!” 

리처드 케네디의 「카울릭에서 벌어진 시합」은 현명한 기지로 마을에 쳐들어온 도적, 돼지뼈 일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얼개 자체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돼지뼈”나 “시끄!”, “헐, 헐, 헐” 같은 표현들이 주는 작은 재미가 있다. 

샘 스워프의 「시무어의 마지막 소원」도 요정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고전적인 얼개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사뭇 비극적이다. 자기 아들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아이의 가엾은 분투와 마지막 선택은 결코 해피엔드라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엄마가 괴물로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아이가 아들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사랑을 쏟아주기는커녕 질색하는 엄마라니. 

클레멘트 프로이트의 「그림블」에 나오는 그림블의 부모와 다른 어른들은 더하다. 이 부모는 쪽지와 아이만 남겨두고 페루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여기 어른들은 그림블에게 쪽지만 무수히 남겼을 뿐 단 한 명도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을 쪽지에 남기지만 진정 사랑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어른들은 그림블이 부모 없이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데 쪽지로 남겨진 매뉴얼일 뿐이다. 

제임스 코찰카의 「전장의 용사들」은 만화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 하나. 스푸니 E처럼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어 생색내는 사람이 어디든 꼭 있지! 그럴 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스팬디 3처럼 “됐거든!” 

닐 게이먼의 「태양새」는 벌레부터 멸종 생물, 심지어 인육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본 미식가들의 욕망은 급기야 ‘불새’에 이른다. 그들의 욕망은 자신까지 태우며 먹어치운다. 그 장면은 너무나 환상적이고 아찔한데 가령 다음 같은 부분. 

   
 

“헬리오폴리스의 불새.” 제베디아 T. 크로크러슬이 말했다. “대대손손 재와 불꽃 속에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새지. 베누 새. 세상이 어두워지면 바다를 횡단하는 새. 때가 되면 나무와 양념과 허브의 불 속에서 다 타버리고 그 재속에서 부활한다네. 세대를 거듭해, 끝도 없이.”
“불이야!” 만달레이 교수가 소리쳤다. “내 뱃속이 타오르는 것 같아요!” 그는 물을 찔끔찔끔 마셨으나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내 손가락.” 버지니아 부트가 외쳤다. “내 손가락을 봐요.” 그녀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마치 불꽃을 품고 빛나는 것처럼 손가락에 불꽃이 일고 있었다.

 
   

조지 손더스의 「이상한 전화」는 고통스러운 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진원지를 찾아갈 수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개들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착한 이야기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여섯 번째 마을」은 뉴욕의 사라진 6구 지역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인데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는 마지막 부분은 압권이다. 특히 이런 부분. 

   
 

중년 부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생의 도중에 얼어붙었다. 땅 위에는 갓 태어난 아기의 첫 번째 숨이,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숨이 얼어붙어 있다. 얼어붙은 판사의 법봉은 유죄와 무죄 사이에 얼어붙어 있다.

 
   

아, 이렇게까지 내 말이 길어질 줄 몰랐다. 지루한 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버린 책에 지루하게 늘어지는 감상이라니.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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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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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신분을 벗어나 돈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책 사는 데 아낌없이 소비했으므로 내가 물리적으로 도서관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때는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때 도서관은 풍성한 책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저 초등학교 교실 하나에 책꽂이를 장만하여 책들을 꽂아두었는데, 정말 책과, 책을 가져가고 그 자리에 꽂아두는 도서 카드만 있었다. 담당 교사는 있었을지 몰라도 사서는 없었다. ‘사서’라는 직업의 사람을 언제 처음 인식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사서’라는 존재가 절실하게 와 닿았던 때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책(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직업을 구했는데 내 직업에 환멸을 느끼면서부터다. ‘책’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내가 싫어할 만한 책들이 더 많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그래도 사서라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 좀더 가까운 거리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더 긴 시간 동안 눈치 보지 않고.

‘사서’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직업적인 사명감과 그 직업에 대한 뚜렷한 성찰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 데다가 이 직업 역시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실상이 어떨지는 실제로 그 일로 돈벌이를 해봐야 알 것이다. 그저 ‘책’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사람’을 알려준 것은 진짜 도서관 사서, 스콧 더글러스다. 『쉿, 조용히!』는 ‘책’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한다. 도서관을 이루는 것은 ‘책’만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도서관은 그저 책 창고 내지는 책들의 무덤으로 전락한다.

스콧 더글러스가 도서관에서 부대낀 사람들은 물론 동료 사서들은 빼놓을 수 없고 그 외에 동화 구연을 들으러 오는 꼬마들과 십 대 아이들과 노인들과 부랑자들과 지적 장애인들도 있다. 그가 꽤 냉소적인 유머를 섞어 시니컬한 어투를 유지하면서도 제법 정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해 주는 사서들은 토머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도 모른다. ‘핑콩’, 심지어 ‘줄리아 로버츠의 애인’을 들먹이기도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사서의 이미지는 산산이 부서진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대신 아이들의 동화 낭독 스타이길 자처하기도 하고 불만 가득한 노인의 불평에 함께 동조해 주는 사서가 있다. 분명 과장되어 있겠지만, 사서도 사람이라 모난 구석을 드러내면서도 도서관에서 자신에게만 맞는 자리를 찾아간다. 외부인의 머릿속에 정형화되어 있는 이미지의 사서들이 아니라,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어도 유쾌하기만 하다.

스콧 더글러스가 일하는 도서관이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말쑥하게 다녀가지 않았으랴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함께하기에 특별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그들은 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쳐 여과된, 어떤 이유로든 도서관을 드나드는 이상한 별별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은 웃음이, 그것도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연민이 깃든 따뜻한 웃음이 킥킥, 터져 나오게 한다. 게다가 작가는 고맙게도 정말 웃기고 불량한 이야기를 하면서 건전한 생각도 살짝 불러일으키고 조금쯤은 감동을 주는 끝맺음을 하여 진지한 사색을 하게 한다. 그가 들려준 도서관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팻’이었다. 그녀는 날마다 스콧 더글러스를 찾아와 귀여운 거짓말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또 다른 귀여운 거짓말들을 이야기한다. 귀여운 거짓말을 진짜처럼 하는 정말 귀여운 사람 ‘팻’도 다른 지적 장애인들처럼 어느 날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실 『쉿, 조용히!』는 작가인 스콧 더글러스가 “책을 좋아하십니까?”라는 구직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처음 도서관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서’가 되어가는 자신의 성장 이야기다. 어쩌면 그는 지금도 진정한 사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겠지. 그 성장은 잘난 척하려 했던 ‘책’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책을 좋아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사람을 좋아하십니까?”가 되어야 하고, 딱히 사람을 유별나게 좋아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요?”라고 물어줘야 하지 않을까. ‘책’은 언제든 읽으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스콧 더글러스가 천생 책을 좋아하는 사서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이런 부분.

(도서관에 오는 별별 사람들 중에 사서인 작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작가는 몸에 문신을 새기는 소박한 저항법을 고민한다.)

   
 

나는 어떤 문양을 몸의 어떤 부분에 새기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팔꿈치 안쪽에 책을 새기면 팔을 들었다 올릴 때 책이 펼쳐졌다 닫히는 것처럼 보여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울해졌다. 터프해 보일 것 같은 문신은커녕 책이라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더 약해 빠지게 책 제목으로 『작은 아씨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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