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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난감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
벳시 브라운 브라운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아이 있는 엄마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자녀교육서들을 훑어보다 보면 참 아쉬울 때가 많다. 대개는 아이를 닦달하여 남들보다 똑똑하게 만들거나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이 최고라고 엄마들의 생각을 조련하는 무서운 책들이 주류를 이루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소위 ‘극성 엄마’라 불리는 친구는 말한다. 자식이 없는 너는 부모의 마음을 알 리 없다고, 내 자식이 최소한 남들만큼 누리고 남들보다 돋보이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남들’을 의식하는 마음이 부모의 왜곡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되는 일 없이 아이는 홀로 자신의 꿋꿋한 줏대대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의 기(氣)는 남들 다 다니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남들 다 배우는 악기를 배우지 않는다고, 남들 다 가진 장난감을 가지지 못한다고, 남들 다 한다는 각종 학원의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것들로 인해 아이가 풀이 죽는다면 그건 어른의 때 묻은 시선을 아이에게 주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신만의 바른 가치관을 확고하게 형성하고, 자신이 믿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여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편견을 품지 않도록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이 길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자녀교육서를 찾기가 쉽지 않은 데 대해 언제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고맙고 반갑게도 내가 열렬히 감상을 남기고 있는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벳시 브라운 브라운의 『아이의 난감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육아의 모든 상황에서(다소 시시콜콜하다 싶은 부분까지 모두!)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 줘야 아이가 정서적, 지적으로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부모가 반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 아이의 모습은 그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무의식적인 학습을 통해 아이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론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이런 책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읽지 않다가 선물할 일이 있을 때 조금은 의무감으로 하품을 하며 먼저 읽어보는 책인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책장을 넘겼다. 세쌍둥이를 키웠고 오랫동안 육아 상담도 해온 베테랑 작가답게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예기치 않은 아이의 말과 행동들 때문에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게 마련인 당황스러운 육아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아이와의 대화’가 가장 기본이라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대체로 큰마음 먹은 후 아이를 앉혀두고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도 끝내는 부모의 일방적인 잔소리나 훈계가 되기 쉽다. 벳시는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와 대화하는 요령에 대해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 내용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을 치우라는 것이다. 벳시는 이렇게 묻고 대답한다. “상사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 당신과 꾸짖는 사람 사이에 늘 책상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적이 있나요? 그 장애물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즉 친밀감과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완충지대인 셈이죠.” 커피 탁자나 식탁, 화장실 문뿐만 아니라 전화 통화나 설거지, 빨래 개키기, TV 소음도 모두 아이와의 진지한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나도 맏이로 자라서 더더욱 고마웠던 것은 “큰아이를 옹호하라”고 조언해 준 부분이다. 동생이 태어나면 맏이는 자신이 가장 바라는 부모의 관심을 어쩔 수 없이 빼앗기고, 점점 엄마와 아빠를 차지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든다. 그래서 벳시는 이렇게 조언한다. “맏이들은 동생들보다 책임질 일이 많습니다. 그런 책임감을 상쇄할 특권을 주세요. (…) 너는 맏이니까 그 정도는 알아야지!”라고 말하지 마세요. 대체로 맏이가 더 잘 알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많은 걸 참아야 합니다. (…) “동생은 아기니까 어쩔 수 없잖니. 아기가 뭘 알겠어?”라며 동생을 변호하지 마세요. 설사 그렇더라도 이렇게 말하면 동생 편만 들고 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 항상 동생을 데리고 놀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때로는 맏이가 자기 또래하고만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 내가 언제나 속상했던 점을 이렇게 콕 짚어주다니! 그건 어른이 된 지금도 작은 상처로 지속되고 있다. “나는 누나니까……”라는 말이 늘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누른다.

또 아이에게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부분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까지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강력하다고 믿습니다. 사과만 하면 잘못을 면하고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앞세운다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게 아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그 참뜻을 이해합니다. ‘미안합니다’는 마음 깊이 후회하고 뉘우쳤을 때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모는 대개 친구나 형제와 싸우면 화해시키려고 “미안해”라고 말하라고 강요하는데, 벳시는 그래서 더욱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이더러 억지로 미안하다고 말하게 하는 건 사실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억지로 사과하게 만들면 아이는 남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아이의 떼쓰기, 말대꾸, 고자질, 거짓말, 편식, 욕, 코 파기, 자위행위 등에 대해 실제로 적용해 볼 만한 지침들을 제시해 준다. 또한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죽었을 때 아이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히 대답하는 요령이나, 부모의 이혼은 무조건 상처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덜 상처받도록 도와주는 방법까지 조언한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건강하고 바른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아이가 자신만의 바르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형성하여,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예의 바르게 자라고, 자기 가치관에 따라 남에게 휘둘리는 일 없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행동하고 또한 자기 행동을 책임질 줄 알게 된다면 이보다 더 빛나고 찬란한 성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코웃음 칠 것인가? 그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결국은 우리 아이들을 살게 하는 것은, ‘낙오자’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낙인찍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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