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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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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광풍처럼 휘몰아치던 복고의 물결도 어느 정도 사그러들어 이것 역시 과거의 일이 되는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 노래까지 점령했던 과거의 모습은 분명 어느 정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10대를 갓 지나 20대가 된 사람들에게 복고는 아직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어느덧 30대를 넘긴 사람들에게는 과거는 추억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무뎌지고 아픈 기억도 추억으로 남긴다.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은 삶의 흔적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과연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일까. 파트릭 모디아노는 잃어버린 과거, 삶의 지난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주인공은 과거를 잃은 자신을 탐색한다. 모디아노의 “기억의 예술”은 『지평L‘horizon』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시위 현장의 어수선한 거리에서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던 보스망스는 시위대에 밀려 트렌치 코트 차림의 젊은 여자를 붙잡고 벽에 부딪힌다. 눈두덩에 피를 흘리는 여자와 약국에 가서 반창고를 붙이고 고요한 거리를 함께 걸었다. 마르가레트 르 코즈. 반창고를 떼어 주고 대화를 나누었다. 마르가레트는 자신을 만나러 회사로 오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부터는 자연스레 그리되는 것 아니냐는 듯. 보스망스는 어디에선가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가벼운 상처처럼 두 사람에게 남아 그들을 고독과 무감각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말을 읽은 것을 기억해 냈다. 둘은 닮았다. 보스망스에게는 돈을 요구하며 자신의 삶을 짓밟는 어머니가, 마르가레트에게는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인 부아야발에게 쫒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약한 부분을 보듬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마르가레트도 안정되었고 둘의 사이도 편안해지는 듯 보였으나 이별은 한순간에 다가왔다. 마르가레트를 고용했던 부부가 경찰에 체포되고 그녀도 출두를 요구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독일로 잠깐 피신하겠다고 보스망스에게 이야기하고 밤기차로 떠났다. 이마르가레트의 얼굴도 기차의 유리창 속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던 모습처럼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후 그녀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40년이 흘렀다. 보스망스는 글을 쓰게 되었고 기억을 더듬어 마르가레트를 찾기 시작한다.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머리가 하얗게 샌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자의 폭력에도 웃어 넘겼으며 마르가레트가 두려움에 떨었던 부아야발은 그저 늙은 부동산 업자로 변해 있었다.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마지막 일자리에서 질문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미래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하지만 둘은 한 번도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영원히 현재 속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래, 40년 후의 베를린. 보스망스가 태어난 해에 다시 재건되기 시작한 도시, 마르가레트 르 코즈의 고향. 현재의 보스망스는 베를린의 한 서점 앞에 있다. 마르가레트는 거기 있을 것이다. 장 보스망스는 그녀에게 향한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지평이란 현재와 미래가 포개져 혼재하는 시공간”이라 밝혔다. 과거를 탐색하지만 그 과거로 인해 현재의 정체성까지 모호해지는 이야기를 즐겼던 모디아노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는 조금 다르게 드러난다. 『지평』의 등장인물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라도 미래를 보고 있다. 이제는 어둡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그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P.184)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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