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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 단편집까지 겨우 세 편만 읽고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영 내키지 않지만, 오가와 요코는 고요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화풍 이야기에서 따뜻한 감동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는 강박을 얼마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나를 완전하게 감싸던 감동의 자연스러움은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에서 재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과도한 설정으로 억지 감동을 자아내려는 부자연스러움만 다소 거북하게 아쉬움을 남겼다. 『바다』에 이르러서는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가 충분히 매혹적인 소설인데도 읽는 내내 알게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특히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바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악기 ‘명린금’의 신기한 이미지로 만들어낸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만 있다. 명린금(울 鳴, 비늘 鱗, 거문고 琴)은 혹등고래의 부레 안에는 날치 가슴지느러미 현을 넣고 겉에는 물고기 비늘을 빽빽하여 붙인 상상의 악기이다. (명린금의 기본 재료로 왜 하필 ‘혹등고래’를 선택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혹등고래는 고래들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노래로 암컷에게 구애한다고 한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딱 한 사람, 이 악기를 발명한 ‘꼬마 동생’이 유일하다. 해변에서만, 그것도 바닷바람이 불어야 명린금이 소리를 낸다. 번역본 표지의 환상적인 그림은 명린금을 부는 소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일 게다.
명린금의 존재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 단편에서 아쉬운 것은 명린금이 아니다. 작가 인터뷰에서 오가와 요코도 꼬마 동생과 명린금의 생생한 이미지가 떠올라 이 단편을 썼다고 말했다. 단지 명린금이라는 특별한 장치를 마련했다면 다른 인물이나 배경은 과도한 설정 없이 좀더 일상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슨 사연인지 결혼을 약속하기까지 좀처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즈미 씨, 완벽하지만 수상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어색하게 환영하는 이즈미 씨 가족과의 인사 자리, “독이 있을지 모르니까 주의하시구려” 하고 의미심장한 귓속말을 건네는 치매 할머니, 거대한 몸집으로 사이다를 마시는 꼬마 동생의 존재(왜 하필 ‘사이다’일까도 곰곰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등 애매한 미스터리만 뭉게뭉게 피워 올리고는 이야기는 뜬금없이 꼬마 동생의 명린금 연주로 끝나버린다. 아무에게나 들리지 않는다는, 순수하게 믿는 자에게만 들린다는, 너무나 모호하고 감상적이고 황급한 결말로 말이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은 「바다」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단편이지만 생의 아이러니로 마련해 놓은 반전이 제법 익숙하여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열아홉에 오스트리아 남자와 사랑한 고토코 씨는 꼭 돌아오겠노라던 약속을 믿었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대개 그렇듯이 그는 제 나라의 가정을 지키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나, 앳되고 어여뻤을 소녀는 예순넷의 뚱뚱한 미망인이 되고, “황색 사탕처럼 맑은 눈동자와 민들레 솜털처럼 부드러운 금발”을 가졌던 남자는 양로원 병상에서 앙상하게 죽어가는 노인이 되었다. 사랑한 사람들은 청춘의 생기로 찬란했으나, 재회한 사람들은 세월에 볼품없이 사그라져간다.
자신에게 등 돌리고 45년 동안 소식 한 번 없었던 남자가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니고 양로원 직원의 형식적인 연락에, 알파벳도 모르는 어수룩한 아줌마가 결연하게 낯선 나라행을 결심하고 한달음에 노쇠한 남자의 머리맡으로 달려온 것은, 그를 잊지 못해 미치도록 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45년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대단하게 사랑했어도 그 강도와 밀도 그대로 사랑을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길고 거세고 모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기적이거나, 대상이 변질되어 그렇게 사랑하는 모습의 자신을, 혹은 영원한 사랑을 사랑하고 있을 뿐일지 모른다. 고토코 씨도 세속적인 시간이 파괴하는 첫사랑의 환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첫사랑과 확실하게 결별하지 못했다. 다른 남자의 아내로 40여 년을 살았어도, 돌아오겠다는 언약은 했지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파약은 없었던 사랑의 약속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한 미련한 마음이 여자에게는 아직도 미진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고토코 씨는, 자신이 사랑했던 “황색 사탕처럼 맑은 눈동자”는 눈꺼풀 아래 숨기고 “민들레 솜털처럼 부드러운 금발”마저 다 잃어버리고서 부스럼투성이 두피만 드러난 노인을 애잔하게 지켜보며 영원히 이별한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부여잡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첫사랑의 감정 자체와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터. 그러니 병상의 노인이 누구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이드」에는 기억에 제목을 달아주는 초로의 신사와 어린 가이드 소년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오가와 요코는 어른과 아이가 순수하게 교감하는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는 수학자와 가정부의 아들 루트,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에서는 거구의 체스 마스터와 소년이었던 리틀 알레힌, 『바다』에서는 「바다」의 이즈미 씨 애인인 ‘나’와 명린금 연주자 꼬마 동생, 「병아리 트럭」의 호텔 도어맨과 실어증 소녀. 지금 읽고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읽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것은 오가와 요코의 ‘카펫 무늬(예술가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다루어지는 주제나 특징)’쯤 되려나.
하지만 정작 이 단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대를 초월한 교감과 신뢰와 우정보다, 구상의 언어로 추상의 기억을 여닫는 열쇠를 만드는, 전직 ‘시인’이자 현직 ‘제목 상점 주인’인 신사의 작업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잊고 싶지 않은, 잊어서는 안 되는, 그리하여 영원히 간직해야 할 기억에 제목을 붙이면 그 기억을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마음속에 확보해 놓는 셈이다. 아무리 오래전일지라도, 복잡할지라도, 길지라도 열쇠말만 떠올리면 그 기억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괜히 거창하게 꾸미거나 거드름 피우지 않는 거란다. 평범한 말에 진심이 깃들어 있거든.”
이사벨 아옌데의 사랑스러운 단편 「두 마디 말」에서는 벨리사가 말(言)을 판다. 그녀가 말을 파는 데도 원칙이 있는데 신사의 그 말과 통한다. 판에 박힌 말, 포장된 말, 가식적인 말, 위선적인 말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말, 진심이 담긴 말, 그리하여 “세상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을 자신만의 말”만 판다. 진심 없이 진심인 양 가장하는 말 혹은 언어는 세상의 모든 미사여구를 다 늘어놓아도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미사여구를 덧댈수록 힘을 점점 잃어갈 뿐이다. 평범해도 진심에 명징하게 가닿는 말만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기억도 끌어올릴 수 있는 법이다. 이런 말은 과장된 몸짓과 소리로 웅변하지 않고 그저 귓가에 가만히 속삭이기만 해도 마음속에 또렷하게 각인된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신사는 고독한 여행에 자신만의 관광 가이드로 동행해 준 소년을 위해 그날 하루의 기억을 담은 제목을 선사한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 힘이 스르륵 빠졌다. 그때껏 「가이드」를 읽으면서 내 멋대로 키워온 기대에 배신당한 기분이랄까. 물론 영혼이 있는 생물이라면 누구나 추억 하나쯤은 있다. 그 문장은 신사와 소년이 서로에게 공명했던 그날의 기억을 불러내는 열쇠말이 될 수 없다. 일반론이랄까, 그 문장은 “시인은 왜 그만두셨어요?”라고 묻는 소년의 말에 신사가 답한 말이기 때문이다. “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주 많지만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거든.” 신사의 대답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제목 상점을 열긴 했지만 그 자체가 사람들의 기억 혹은 추억을 소재로 시를 짓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사람에게는 반드시 시가 필요하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이다. 중학생 시절에 타자기를 구경했다. 언니가 상고에 다녔던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실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도 타자기를 떠올리면 아련한 향수와 작가의 낭만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다. 올림피아 타자기를 예찬한 폴 오스터(『타자기를 치켜세움』)도 그렇지만, 미스터리 드라마 <제시카의 추리 극장>에서 추리소설 작가이자 탐정의 역할을 했던 제시카 할머니가 창가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 기억 속의 타자기는 그리 커다랗지 않았다. 앉은뱅이 찻상 위에 충분히 올라갈 크기였다. 활자 키의 배열도 지금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단편과 별 상관이 없는데도 특별할 것 없는 추억까지 잡다하게 뒤진 것은 일본식 타자기의 모양과 크기가 꽤 달랐던 듯해서이다.
오가와 요코는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일본에서 사용되던 타자기를 자세히 묘사했다. “책상 위에 설치된 일본어 타이프 기계는 너비가 1미터쯤 되고 철제 판에 활자가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중심부에 사용 빈도가 높은 활자, 예컨대 히라가나나 숫자, 의학 용어에 자주 등장하는 한자 등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글 자모 24자와 알파벳 26자에 비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합쳐 92자에다가 한자까지 병기하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일본식 타자기는 찻상으로 어림없을 만도 하다. 어쩌면 이 단편에 등장하는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가 의대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특수하게 취급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의학 분야에 따라 자주 쓰이는 용어가 있고, 그 용어를 만들기 위한 활자는 그만큼 닳고 깨져서 망가지기 쉽다. 게다가 ‘나’는 타이프 사무소의 타자기에 아직 숙련되지 않은 초보 타이피스트이다.
이로써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에는 하루 종일 타이프 치는 소리와, 간혹 교정을 위해 타이프 원고를 낭독하는 타이피스트의 목소리, 그리고 망가진 활자를 3층 활자 관리인에게 조용히 교환하는 속삭임만 단조롭게 울리는데도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으로 숨 막히도록 부풀어 올라 팽팽하게 긴장될 준비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누구에게도 신체적인 접촉은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꽃 속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꿀 한 방울을 빨아올리기 위해 꽃잎을 흔들며 암술 속에 더듬이를 뻗고 날개를 바들바들 떠는 나비”처럼 활자판에서 글자를 찾는 타이피스트들의 부드럽지만 강력한 손길, “젖빛 유리 저편에서 하늘색 셔츠와 섬세한 납빛 손가락”만 보이는 활자 관리인, 망가진 활자 ‘자궁 질부 미란(糜爛)의 미(糜), 고환(睾丸)의 고(睾), 새살 돋을 질(膣)’을 활자 관리인에게 건네는 나, 그 활자들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 숨을 불고, 입술로 덥히고 혀로 핥으며” 고치는 활자 관리인이 있을 뿐이다. 특히 이 단편에서는 수(數)와 체스의 세계에서 매혹적인 의미를 찾아냈던 오가와 요코만의 재능을 한껏 발휘해서 활자에 숨은 에로스로 독자를 미혹시킨다.
「은색 코바늘」, 「깡통 사탕」, 「병아리 트럭」에 대해서는 별로 남겨둘 말이 없다.